[단적비연수 - 은행나무침대2] 한국형 대작영화의 전형? (박제현 감독 Gingko Bed 2, 2000)

2019. 8. 31. 06:51한국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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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환 2000.11.12.) <단적비연수>의 극장개봉을 앞둔 지난 2, 서울 시네코아에서는 지방배급업자들이 대거 참석한 가운데 첫 시사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는 이른바 흥행업자들 외에 영화관계자, 기자들도 다수 참석하여 지난 1년 동안 그들이 가장 기대하고 흥분해마지 않았던 강제규필름의 <단적비연수>를 관람하였다. 녹음과 편집, 그리고 컴퓨터그래픽 작업 등 후반작업이 완전히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공개된 이 영화는 평론가들로부터 거의 실망에 가까운 평을 받아야했다. 그런데, 배급업자들은 '감각적으로' 흥행요소를 찾아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 영화가 서울에서만 60, 전국에서 140개 스크린에 내걸리는 선택을 하였다. 이른바 <비천무2>라는 말은 <비천무>의 작품성을 희화적으로 나타내는 표현이기도 하지만 흥행업자에겐 '그래도' 돈은 된다는 희망의 소리이기도한 것이다. <와호장룡>에 쏟아지는 찬사와 관람객 수가 비례하는 것이 아니듯이 이 영화 또한 그러한 전철을 밟을 것 같다.

강제규필름측은 이 영화 시사회 이후 쏟아진 부정적 평가들을 단시간에 해결해야하는 입장에 놓이게 되었다. 주로 쏟아진 내용은 장대한 드라마 구도에 많은 인물이 나오는 대작임에도 불구하고, 기본 이야기를 따라가기에도 힘든 내레이터와 깊이가 부족한 신화이야기, 그리고, <비천무>가 영상에 집착했다면, 이 영화는 음향효과적 측면에 과도한 힘을 쏟는 바람에 배우들의 대사마저 제대로 캐치할 수 없다는 기술적 결함까지 거론되었다.

어제 개봉 후, 1회 상영분을 다시 보니 시사회 버전과는 그다지 달라진 것이 없었다. 강제규 필름측은 어린 시절을 다룬 부분을 30% 정도 드러내었다고 했지만 원래부터 그렇게 길지도 않았었다. 대신, 영화시작 전, 매족의 제물의식을 다루기 직전에 관객들에게 상황설명을 할 수 있는 수(이미숙)과 한(조원희)의 관계를 첨가했다는 것이다. 사실, 이 부분은 전체 이야기 진행에 있어 커다란 도움을 주었다. 이미숙이 이끄는 매족은 화산족의 500년 한을 해소하기 위해선 화산족 왕족이 제물로 필요했고, 그것이 바로 비(최진실)였던 것이다. 이 얼마나 매혹적인 설화인가. 원쑤의 씨를 받아 제물로 바치겠다니. 그리고 그 ''를 둘러싸고 화산족의 두 용사 단(김석훈)과 적(설경구)이 연적(戀敵)이 되어버리니 말이다.

그러나, 짐작하겠지만, 이런 영화는 '이안'이 비흥행성을 목적으로 만들지 않는 이상은 줄거리 압축의 순정멜로드라마 이상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박하사탕>에서 그렇게도 한국영화팬을 매료시켰던 설경구는 거의 광기에 사로잡혀 ''에 매달리는 것이다. 이룰 수 없는 사랑을 나타내기엔 부족의 우두머리를 포기하는 것이 극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씨족사회 차원에 머무르는 화산족 내부에서 친구의 애인을 차지하려는 한 남자의 애처로운 사랑싸움으로 주저앉고 만다. 아무리 뛰고, 달리고, 칼을 휘둘려도 결국 남는 것은 신산의 노여움이라는 한계에 직면한다. 그래서, 그 시절 그 수준에 맞는 인과응보, 혹은 천년은 족히 전해질 '만화적' 인연을 다루는 것이다. 그런 멜로 드라마 구조면에서 보자면 최진실이 비록 나이는 있지만, 충분히 히로인 역할을 완수한 셈이다. '이미숙'에게 쏟아지는 용사로서의 찬사가 너무 크서 탈이지만 말이다.

물론, 이미숙이 마지막에 칼을 전하는 것이나, 은행나무 앞에서 아주 길게 사랑타령을 하는 것은 <은행나무침대>와 연결고리를 위한 고육책이지만, 이 영화의 신화적 요소로서의 강점을 일거에 무너뜨린다. 바퀴살 무늬의 무대장치나 '엑스칼리버'에 버금가는 천검의 존재는 이 영화를 '신화시대'의 이야기로서 더욱 풍요롭게 할 수도 있는 장치가 되었지만, 모든 것이 멜로드라마의 장식품에 지나지 않는 가벼움이 되고 말았다. 그것은 주인공들의 손에서 손으로 전달되는 사랑의 징표에서처럼 구시대적 '팬시'이상의 감동을 전달해주지 못한 것이다. 벽화도 그렇다. <잉글리쉬 페이션트>에서 동굴 속 벽화가 환상적이었다거나 매혹적이었다면, <단적비연수>에 나오는 벽화는 전혀 신비롭지도 중의적이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이 영화는 어쩌면 더 잘 만들 수도 있었을 장대한 시나리오를 평면적으로 해석하거나, 도식적으로 영상화하기에 급급했던 감독의 부족한 역량이나, 한국 영화기술의 한계인지도 모른다. 물론, 충분한 흥행저력과 고만고만한 공감을 불려일으킬 수야 있겠지만, 한국 최고의 영화사에서 최고의 역량을 투입하여 만들어내었다는 작품치고는 너무나 유아적인 분위기라는 것을 부인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렇게 많은 돈으로, 그렇게 먼 시절의 이야기를 찍는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일까. (박재환 2000/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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