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를 보았다] 뷁~ 언퍼니 게임 (김지운 감독 I Saw The Devil, 2010)

2019. 8. 31. 06:42한국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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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환 2010.8.12)  김지운 감독은 <조용한 집>, <반칙왕>, <장화, 홍련>, <달콤한 인생>,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감독이다. 그가 이병헌과 최민식이라는 당대 한국 최고의 배우를 캐스팅하여 만든 영화 <악마를 보았다>가 언론매체의 관심을 받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할 것이다. 이미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두 차례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은 터라 제작사나 감독 입장에서는 ‘울며 겨자 먹기’로 문제 장면을 삭제하여 겨우 심의를 통과할 수 있었다. 그리고 어제 오후 늦게 서울 동대문 메가박스에서 기자시사회가 열렸다. 일반적으로는 기자시사회는 영화 개봉을 열흘 정도 앞두고 열린다. 그래야 충분히 기사화되어 홍보효과를 얻을 수 있으니 말이다. 또한 개봉을 앞두고 네티즌 시사회를 잇달아 열어 인터넷에 붐을 조성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런 숙성기간 없이 오늘 바로 개봉된다. 어제 이 영화에 대한 언론매체의 관심은 대단했다. 2년 전 <놈놈놈> 기자시사회 때는 몰려든 일본 아줌마부대 때문에 시사회가 파행을 겪었기에 이번에는 ‘기자시사 사전등록’ 등 준비도 철저했다. 어쨌든 필름은 돌아갔고, 잔뜩 영화를 기대한 기자나 영화저널 사람들은 ‘일반 영화팬’보다 하루 먼저 보는 호사를 누린 셈이다. 그게 다다.

살인마에게 약혼녀를 잃은 남자, 잔인한 복수에 나서다

눈 내리는 한적한 시골길. 차량 고장으로 견인차를 기다리는 여자 주연(오산하)의 차 옆으로 노란 승합차가 다가선다. 타이어를 손봐주겠다던 이 남자, 돌연 차 유리창을 깨뜨리고는 주연을 끌고 사라진다. 주연의 약혼남 수현(이병헌)은 국정원 소속의 베테랑 요인 경호요원이다. 휴대폰으로 약혼녀에게 “얼른 일 마치고 보자”고 말한 상태였다. 그런데 끌려간 여자는 잔혹하게 살해당하고 사체는 절단된 채 유기된다. 훼손된 사체의 일부가 발견되고 오열하는 수현. 수현은 고통 속에 죽어간 약혼녀를 떠올리면 자다가도 깨어나는 악몽에 시달린다. 수현은 사적인 복수를 꿈꾼다. 용의선상에 오른 놈들을 하나씩 찾아 나서고 마침내 살인마 경철(최민식)을 찾아낸다. 수현은 경철을 법 집행기관에 넘기거나, 그 자신이 직접 간단히 처단하지 않는다. 그 놈에게 조금씩 복수를 하기 시작한다. 약혼녀 주연이 당했을 끔찍한 고통을 안겨주기 위해서. 그런데, 살인마 경철도 만만찮다. 그런 수현을 더욱 고통스럽게 만드는 더욱 끔찍한 보복에 나선다.

할 말을 잃게 만드는 잔인함

어제 시사회는 8개 스크린에서 동시에 상영되었다. 영화상영이 끝나고 M관에서는 기자간담회가 마련되었다. 어제 시사회를 통해 완성된 영화를 처음 본 두 배우, 이병헌과 최민식은 상영이 끝난 뒤 휴게실에서 감독과 잠시 머물다 기자회견장에 나왔다. 15분 정도. 세 사람은 말이 없었단다. 감독은 감독대로 만감이 교차했을 테고, 두 배우들은 자신들이 찍은 장면이 이렇게까지 나오리라고는 예상을 못한 모양이었다. 서먹서먹한 분위기.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고 배우들은 그제야 자신들의 끔찍한 출연작 홍보에 나선다. 고생하고 만든 최선의 작품이라고.

이 영화가 두 차례나 심의에서 퇴짜를 맞은 것은 표현수위의 잔혹함 때문이었다. 언론에 보도되기로는 이런 장면이 문제가 되었단다. ‘극중 시신의 일부를 바구니에 던지는 장면과 인육을 먹는 장면, 절단된 신체를 냉장고에 넣는 장면 등이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현저히 훼손한다’는 이유였단다. 김지운 감독은 결국 ‘1분 30초’를 드러냈다고 밝혔다. 1분 30초만 드러내면 인간의 존엄과 가치가 조금이나마 나아지는지는 의문이지만 말이다. 김 감독은 이 영화 말고도 널리 알려진 기존 영화들에서도 이런저런 유사한 장면은 다 있었다면서 ‘극도의’ 아쉬움을 표했다. 기자회견장에서 한 명이 감독에게 물었다. (편집에서 살아난 장면을 거론하며...) “인육 아니었나? 충분히 연상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감독의 대답은 이랬다. “그게 6개월 전에는 인육이었는데 1주일 전에 쇠고기로 바뀌었다.”

여기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지키자는 영상물등급심의위의 경직된 심의규칙을 문제 삼거나, 기어코 잔혹한 장면을 보여주어야만 작품성이 완성될 것이라 믿는 영화감독을 비난하자는 것은 아니다. 결국 영화팬들이 보고 각자 판단할 문제이니 말이다. 그러나 인육이 쇠고기로 보이는 것은 분명 난센스다.

김지운 감독, 왜 이 영화를 만들었을까

영화를 보고 난 뒤 든 첫 번째 생각은 김지운 감독이 왜 이 영화를 만들었을까라는 의문이다. 김지운 감독의 데뷔작 <조용한 가족>도 코미디이긴 하지만 잔인한 상황설정의 부조리극이었다. 그의 작품은 기이하게도 코믹 드라마 아니면 잔혹 드라마이다. ‘웃기거나 잔인하거나’라니. 이 영화에서도 잔인한 장면에서 웃음이 터질 수밖에 없는 기이한 설정이 몇 군데 등장한다. 감독은 영화를 그렇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는 답이 없다.

아마도 신문 사회면에 끊임없이 등장하는 강력범죄에서 ‘나 홀로 영웅’을 꿈꾸었는지도 모른다. 생각하기조차 끔찍한 성범죄, 연쇄살인, 인간말종의 범죄를 저지른 자들에 대한 이야기는 알잖은가. 피해자가 입었을 끔찍한 마지막 고통의 순간들, 그리고 남겨진 가족들이 평생 안고 살아야할 비정상적 삶의 고통, 범인을 찾기 위해 수많은 날을 집에도 못 들어가고 고생할 형사들. 하지만, 범인을 잡더라고 나오는 이야기들. “살인범에게도 인권이 있다” 류의 휴머니즘, “경찰은 뭐 했나”라는 책임추궁, “그래봤자 몇 년 살다 풀려나서 똑같은 짓 또 저지를 것인데...”라는 형 집행의 문제. 주인공 수현은 그래서, 그런 정상적인 사법절차 대신 응징에 나설 것이다. 단지 범죄자의 목숨을 끊어놓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고통을 겪게 하고, 충분히 반성하도록.

최민식, 이 영화에 왜 출연했을까

경철(최민식)은 과연 자신의 목이 떨어지는 순간이 되었더라도 자신의 삶에 대한 진솔한 반성을 했을까? 이 이야기는 사형수들이 자신의 목에 올가미를 씌워지는 순간 과연 피해자(와 그 가족)에 대해 진정한 눈물의 참회를 할까와 같은 말일 것이다. 이미 <밀양>을 통해 가해자와 피해자의 결코 이룰 수 없는 간극을 경험했다. 아무리 숭고한 종교적 의미라도 말이다. 최민식은 어제 기자회견을 통해 “이렇게 악질적인 연기를 해놓고서 어느 여배우랑 드라마를 찍을 수 있겠나?”고 한탄하기도 했다. 우리가 익히 보아온 헐리우드 사이코패스나 연쇄살인범은 특정 기술을 가지거나 설명가능한 배경이 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에게 성적학대를 당했다거나, 벌레 유충에 대한 지식이 뛰어나다거나, 해부학에 조예가 깊다거나 하는....) 그런데 이번 영화의 경철은 캐릭터 설정에서부터 실패한 감이 있다. 완전범죄를 저지를 만큼 지능범도 아니고, 어디 특수부대 출신이라는 말도 없다. 그렇다고 정말 예측불능의 사이코인 것도 아니다. 예의 그 최민식의 쏟아 붓는 열정적 연기는 보아줄만하지만, 그런 캐릭터에 대한 동의는 결코 할 수 없다. 잔인해서라기보다는 공감이 안 가는 캐릭터인 것이다.

이병헌, 멋지지만 공허한 눈빛

이병헌이 연기하는 수현의 캐릭터도 마찬가지이다. 이병헌의 눈빛 연기는 정말 아름답다. 금세 눈동자가 불거지고 눈물이 흐르는 장면들. 자신의 약혼녀가 저런 야수 같은 살인마에게 끔찍하게 살해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복수할 능력과 자질이 있는 남자라면 이병헌같은 행동을 취할 것이다. 하지만, 그 살인마와 매한가지로 이해할 수 없는 복수극을 펼친다. 국정원 요원이라고 보기 힘들만큼 허술하거나 깔끔하지 못하다. 만약 정말 복수에 불타는 냉혈한이라면 이 영화의 라스트는 참으로 허탈하다. (감독은 두세 가지 라스트를 찍었단다. 어느 게 적절한지는 상상에 맡길 수밖에). 적어도 이 영화는 김기영의 상상력과 김기덕의 창의력은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캐릭터 설정의 빈곤함은 산장에 등장하는 동료 살인마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유의 영화에서 너무 많은 캐릭터의 특성만을 빌려 오다보니 정작 섞어놓으니 구토감만 증대한다. 배우들은 정말 불쌍할 정도로 열연하였지만 말이다.

사적 복수의 한계는

연인이, 가족이 저렇게 죽었다면 경찰을 믿기 보다는 자신의 복수의 칼날을 더 믿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일 것이다. 그런 복수의 과정을 통해 인간적인 결함이나, 사회적 현상을 고발하거나 했다면 분명 걸작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애초부터 그런 드라마보다는 게임의 강도에 치중했다. ‘사악한 범죄자와 더 사악한 복수자의 대결구도’에서 건져낸 것은 사체절단과 과잉복수의 핏빛 앙금일 뿐이다. 그렇다고 복수심의 점증효과가 공포감의 증대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영화를 보고나서 비주얼한 칼질과 망치질만이 남는다면 문제가 있는 것이다. 올리버 스톤의 <내츄럴 본 킬러>도 그랬듯이 이런 영화는 모방범죄의 우려가 있다. 아무리 감독이 “그런 범죄를 따라할 놈이라면 애초 그런 죄를 지을 놈이다.”고 강변하더라도 말이다. 제발 이런 영화는 제한된 관객이 단순히 영화로만 받아들였음 한다. 이런 영화가 인기를 끄는 사회도 사실 결코 좋은 사회는 아닐 터이니 말이다.  이런 영화를 다른 영화감독이 만들었다면 모르겠지만 그래도 한국 최고 감독의 한 사람으로 기대했던 김지운 감독이 만들었다니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뷁~!  (박재환 201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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