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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리뷰

[주유소습격사건] 공짜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by 내이름은★박재환 2008. 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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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ed by 박재환 1999-11-15]  * 영화에서 노래부르던 아이들과 트렁크에 갇힌 남녀의 결과가 처리되지 않았다. 이유는 무엇인가. ▷ 김상진 감독: 그들의 결과까지 넣어 편집을 해보니 러닝타임이 2시간 20분이 나왔다. 극장의 흥행으로 볼때 상영시간을 1시간 40분∼50분대에 맞춰줘야 하기 때문에 두 장면을 하는 수 없이 잘라서 편집했다. 참고로 노래하는 아이들은 매니저에게 픽업되어 가수가 되고 남녀는 눈이 맞아 결혼을 한다. (시네마조선인터뷰에서)

  올해 대한민국 출판계에 최고의 화제를 몰고온 책은 상명대 중문과 김경일교수의 작품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라는 책이다. 물론, 탤런트 서갑숙의 자전적 에세이 책이 더 화제거리일수도 있지만, 우리나라 전체의 문화인식과 사회체제의 변화의지 측면에서 보자면 이 '공자죽이기' 책이 더 중요할 것이다. 이 책은 오늘날 우리나라가 이런 형편이 되어버린 것은 맨날 공자가 어쩌고하는 주입식 교육과, 위선과 비도덕으로 똘똘 뭉친 어줍짢은 어른들 때문이라는 것이다. 오해의 소지를 줄이기 위해 그 사람의 주장을 좀더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그 결과 현락한 수식어에도 불구하고, 공자의 도덕은 '사람'을 위한 도덕이 아닌 '정치'를 위한 도덕이었고, '남성'을 위한 도덕이었고, '어른'을 위한 도덕이었고, '기득권자'를 위한 도덕이었고, 심지어 '주검'을 위한 도덕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사농공상으로 대표되는 신분사회, 토론 부재를 낳은 가부장 의식, 위선을 부추기는 군자의 논리, 끼리끼리의 협잡을 부르는 혈연적 폐쇄성과 그로 인한 분열 본질, 여성 차별을 부른 남성 우월 의식, 스승의 권위 강조와 인한 창의성말살 교육의 문제점들을 오늘날까지 지속시키고 있다. 이것들은 오늘날 우리들삶의 공간에 필요한 투명성과 평등, 번득이는 창의력, 맑은 생명들과는 너무도동떨어진 것들이다. 유교의 유효 기간은 이제 끝났다... (작자의 서문에서)

물론 이 책이 나온 후 TV 토론시간에서 격론이 벌어지기도 했고, 유교론자의 반론서적이 나오기까지 했었다.

자 , 그럼, 이러한 책이 나온 것이 뜻밖의 일인가? 절대 아니다. 전 세계가 기존 질서의 전복을 꾸준히 꿈꾸어 왔고, 그러한 혁명적 발상이 성공은 아니더라도 견고한 기존 세력과의 투쟁속에서 많은 변화를 획득하기까지 했다. 그것은 토니 블레어 영국수상의 당선이나, 클린턴같이 새파란 정치신인(?)이 대통령으로 당선되는 것처럼 정치일선의 변화일 수도 있고, 유럽의 스킨해드 족들처럼, 급진적 사고로 전염병을 앓는 것일수도 있다. 우리나라야 아직은 노인정치가 파워를 유지하고, 아직은 공자가 큰 소리치고 있지만, 전혀 뜻밖의 사태에서는 아노미 현상을 겪기도 한다. 그것은 몇몇 영화에 대한 보지도 않은 자들의 불같은 분노에서도 느낄수 있고, 아무 것도 아닌 서갑숙 책이 장안의 화제를 몰고 있다는 것에서 무언가 심상찮은 변화의 물결을 느낄 수 있다. <쇼킹 아시아>같은 영화나 <거짓말>같은 영화가 필요 이상으로 화제에 오르는 것은 분명 기존질서에 대한 반항, 혹은 반역, 혹은 혁명의 씨앗이 뿌려져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에서 만연하고 있는 혁명의 열기나 체제 변화의 물결, 혹은 그러한 의미를 극소화 시켜서 '좀 튀어보려는 영화'를 만들어보려는 충무로 사람이 이제야 등장했다는 것은 좀 의아스런 면이 있다. 김상진 감독이 새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을 들고 나온다고 했을때 별로 기대할 이유가 없었다. 그것은 <투캅스3>에서 보여준 자기 복제적 성향의 '홍콩영화'같은 이미지의 감독이라는 인식을 심어주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시네마서비스 (<인정사정 볼것없다>, <텔미 섬딩>의 배급사)가 관련하고, 이성재-유오성-유지태-강성진 등 범상치 않는 패거리가 등장한다니, 이 영화는 분명 21세기를 눈 앞에 둔 공자타도의 전사가 될 수 있을 것은 분명했다.

실제로 영화는 공자타도의 의지를 명확히 드러낸다. 그들에겐 '위대한 보통사람의 시대', '신한국 건설', '제2의 건국' 등이 빌어먹은 개뼈다귀같은 거짓말의 상징이고, "너네는 아버지도 없냐." 라는 말이 참으로 밥맛 떨어지는 어른들의 잔소리이니 말이다. 그러니, 교통순경, 혹은 국가의 공권력이 마음에 들리가 없다. 그들 눈에는 떡값이나 받아가고, 기름값이나 떼먹는 파리떼에 불과한 존재이니 말이다. 그래서 그들이 집어던지는 전화기는 하나의 대상이 아니라, 기존 질서에 대한 파괴본능이다. 그리고 그것을 고쳐놓으라고 윽박지르는 것은 그동안 그렇게 교육받은 것에 대한 반박이다. 콩 심은데 콩 난다. 비록, 이런 경우 불량 콩일 확률이 높지만 말이다.

그럼, 이들은 공자를 몰아내고 새로운 조국을 건설하기 위한 획기적인 대안을 제시하는가? 아나키스트? 자유와 희망이 강물처럼 흐르는 21세기? 물론 아니다. 그들은 컵라면 먹다말고 "기냥" 혹은 "그냥" 뒤집어 보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러니 적어도 386세대에게 있어선 이 영화가 찰라적 감각의 설익은 영화, 오토바이 타고 돌아다니는 중국집 배달부의 멋 이상의 의미를 찾기엔 한참이나 뒤떨어진 작품인 것이다.

영화는 처음엔 아주 강하게, 나쁘게, 기존 가치질서를 뒤집어 볼려고 생떼를 쓴다. 그래서 부수고, 깨고, 반말하고, "대가리 박아!"를 시키지만, 이들은 결코 미국식 흉악범은 되지 못한다. 적어도 기존 세력을 뒤집을 세력이라면 아마도 '막가파'나 '영웅파'정도는 되어야하지 않을까. 그래서 인질을 하나씩 '사시미질'하고 주유소를 폭발시키고, 피의 축제를 해야하지 않을까? 그러나 물론 그러지 못한다. 왜냐? 한국인은 심성이 너무 착해서 결코 그러질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픈 어머니 약 드려야한다는 '범생이'를 풀어주고, 주유소에서 라이터 불만 켜지 던지지는 못하는 것이다. 이 영화는 지극히 한국적인 영화이다. 제까지것들이 백날 "이 새끼 저 새끼 아찌 대가리 박아. 뻉끼 쓰지마.."해대어도, 결국은 '장유유서'이고, 결국은 '우리나라 좋은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는 기존의 3류 인생의 문턱에 들어선 젊은이들이 혁명과 변혁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 그래도 살만한 대한민국에서 적당히 멍청한 경찰과 함께 신나게 웃다가 나오면 된다. 그리고 그 주유소가 모 정유회사의 간판을 달았다는 것과, 무슨 신용카드가 좋았다는 것. 그리고, 태극마크가 아주 자랑스럽다는 것 등의 우스개만 기억하면 된다. 왜냐, 적어도 그들 광고주들은 이 영화가 체제변혁의 메아리는 겉포장이고, 그 속에서 치밀하게 기획된 상업적 의도와 이데올로기를 찾아내었기 때문이다. 다음엔 대검찰청을 틀 차례이다. 물론, 한국식으로 현관 유리창만 박살내고 말겠지만 말이다. (박재환 1999/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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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유소 습격사건 (1999)
감독: 김상진
주연: 박영규, 이요원, 김수로, 이성재, 유오성, 유지태, 강성진, 정준 
한국개봉: 1999년 10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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