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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금련] 김기영 그 감독, 진짜 기이하다

한국영화리뷰

by 내이름은★박재환 2008. 7. 4.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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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젊은 영화팬들은 김기덕 감독의 일련의 영화에 대해 ‘엽기’나 ‘비주류’, 혹은 ‘독창적’, ‘전위적’이라는 표현을 쓴다. 그런데 김기덕 감독 훨씬 이전에 그러한 평가를 받았던 충무로 기인 감독이 있었다. 바로 김기영 감독이다. 김기영 감독은 1919년생이다. 당시로서는 보기 드물게 경성의전(서울의대 전신) 출신이다. 그는 모두 32편의 영화를 만들었는데 현재 남아 있는 영화는 23편이다. 그가 만든 작품 중에는 흥행성공작도 있고, 참패작도 있다. 그가 활동하던 시절은 박통시절이었고 적어도 영화계 현실로 보자면 암흑기에 해당한다. 영화저널리즘이란 것도 제대로 존재하지 않았고 말이다. 그의 작품들은 거의 검열과 편집에 의해 걸레짝이 되어 너덜거리는 상태로 전해졌다. 그가 찍었던 오리지널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상상도 가지 않는 비디오로 일부 매니아에게 전해지더니 최근 몇 년 간 한국영상자료원에서는 필름 발굴 및 복원작업이 진행되었다. 그의 필름이 국내외 영화제를 통해 재상영되면서 현재의 시점에서 그의 영화가 다시 재평가 받게 된 것이다. 지난 주 서울 상암동에 위치한 한국영상자료원에서는 [그 남자, 기이하다]라는 타이틀로 김기영 감독 10주기 기념 전작전 행사가 있었다. 그의 작품 32편 중 필름이 남아있는 23편 전편이 상영되었다. 영화 상영과 함께 김기영 감독 작품에 출연했던 배우들이 무대에 나와 정말 오래된 이야기를 펼쳐놓았다.
 
  지난 달 28일 밤늦게 진행된 김기영 감독의 작품 [반금련] 상영에는 출연배우 이화시가 참석했다. 김기영 감독의 위명을 잘 아는 팬들은 야심한 시간까지 남아 김기영 감독을 추모하며 영화에 대한 열정을 공유하였다.
 
  [반금련]은 이른바 중국 4대기서의 하나로 꼽히는 [금병매]를 김기영 감독식으로 재해석한 통속사극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조금 시대착오적인 역사해석이 나온다. 한(漢)족이 지배하던 송나라가 망하고 몽고 오랑캐의 원나라가 들어선다. ‘원’은 나쁜 편이라는 전제하에, 반외세 의식을 약화시키기 위해 축첩제를 허용했다는 ‘친절한’ 내레이션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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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청에서 펼쳐지는 마작 게임은 전재산, 소금전매권, 그리고 처와 첩들을 동시에 손에 쥐게 되는 거대한 이권놀음이다. 서문경은 현감의 도움으로 이 지역의 실력자가 된다. 서문경은 이제 마누라가 10명이 넘는 거대한 처첩에 둘러싸여 살게 된다. 영화에서 묘사되는 장면은 당시 중국의 처첩제도의 특이성을 먼저 이해해야한다. 남편은 정실부인과 첩을 능력껏 둘 수 있다. 훌륭한 남편이란 그 많은 처첩들이 서로 질투하거나 싸우지 않도록 공평하게 다룰 줄 알아야한다는 것이다. 물론 잠자리까지. 그 많은 처첩의 규율관리는 당연히 나이가 제일 많은-그래서 밤일에서는 열외 당한- 본처가 맡는다. 서문경은 현감의 도움으로 다른 집안을 풍비박산내고 남의 아내를 첩으로 받아들인다. 그중에는 병아도 있고, 반금련도 있다. 서문경의 뜻과는 상관없이 그 많은 여자들은 서로 질투하고 헐뜯는다. 서문경에 의해 재산과 아내까지 빼앗긴 한 남자는 복수를 꿈꾼다. 게다가 오랑캐 현감의 처에 대한 살인사건이 일어나며 영화는 클라이맥스로 마구 달린다.
 
  영화 [반금련]은 소설 [금병매]의 기본 뼈대를 가져다 썼지만 많은 변용을 보여준다. 한족과 외족의 대결 같은 ‘민족주의적 의식’은 소설에서는 애당초 없다. 소설에서는 축첩제도의 불합리성이나 정조관념의 도덕적 질타를 다루지는 않는다. 대신 풍성한 묘사와 사실적 문체로 그 시절의 사회풍속도를 세밀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런 묘사 때문에 [금병매]는 중국최고의 음서(淫書)로 대접받아왔다. 김기영 감독도 그런 ‘음란성’으로 이 영화를 꾸며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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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의 결말도 다소 황당하다. 서문경은 영화 초입부와 같이 또 다른 한족 남자와 마작을 하게 된다. 게임에 지고는 모든 재산과 처첩을 넘겨준다. 서문경도 죽고 처첩들도 죽어나간다. 서문경의 관이 지하묘당에 안치되자 그와 함께 묻힐 열녀로 반금련이 ‘선택’된다. 묘당은 벽돌로 봉쇄된다. 가장 널리 알려진 김기영 감독의 [이어도]처럼 이 영화에도 시간(屍姦,시체와의 교접) 장면이 등장한다. 당시의 검열을 피해, 그리고 김기영式 상징수법은 유감없이 발휘된다. 붉은 강물이 용암같이 전체 화면을 뒤덮는다거나 느닷없이 보여주는 촛불은 남성기의 상징이다. 그리고 영화는 마치 꿈의 한 장면처럼 몽환적으로 끝난다. 반금련과 서문경이 들판을 뛰어가며 “나 잡아 봐라~”고 하는 호접지몽이다.
 
  영화 상영 뒤 이루어진 배우 이화시의 발언은 좀 놀랍다. 이화시는 이 영화를 27년 만에 다시 보았다며 당시 감독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고 털어놓았다. 실제 찍은 영화에서는 마지막 장면은 분명 달랐다고 한다. 서문경과 첫 번째 아내가 숨겨놓은 돈을 챙겨서는 유유히 사라진다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영화에서는 모두 죽고 이런 식으로 처리되었다는 것이다. 외세에 휘둘리며 불합리한 축첩제도의 피해자로 모두들 죽는다는 것과 세상을 농락하며 맘껏 즐기다가 마지막엔 정실 처와 함께 평화를 찾아 떠난다는 것은 분명 다른 시각이며 철학일 것이다.
 
  이 영화는 1974년에 제작에 들어가서 검열당국과 오랜 씨름을 해야 했다. 그러고도 창고에 처박혀 있다가 1981년에야 겨우 극장에 내걸릴 수가 있었다. 상영시간은 90분이었다. 김기영 감독의 조감독이었던 유지형씨가 쓴 책에는 김기영 감독이 이 영화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제작자에게 포기각서까지 써줬다고..” 이후 아마도 김기영 감독이 찍은 필름은 다른 사람에 의해 편집되어 이런 형태를 띤 모양이다. [이어도]와는 달리 이 영화에 대한 원판 필름이 있다거나, 잘린 필름이 따로 보관되어 있다는 소리도 없다. 실제 김기영 감독이 어떻게 찍었고 어떤 편집본을 염두에 두었는지는 알 수 없다.
 
  단지 (아마도 다른 누군가의 손에 의해 편집되었을) 90분짜리 김기영 [반금련]을 보면 그나마 독특한 영상미학을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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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이화시라는 여배우. 대학생 때 우연히 캐스팅된 이화시는 [반금련]으로 김기영 영화에 데뷔한다. 물론 개봉이 미루어지면서 김기영 감독의 또다른 작품 [파계]가 먼저 개봉된다. 이화시는 김기영 영화에만 대여섯 편, 그리고 김기영 감독이 제작을 맡았던 다른 감독 작품에 한 두편 출연하고는 채 열편도 안되는 필모그래피만 남기고 영화판을 떠난다. 그리고 캐나다로 이민 가서는 영화팬들 사이에 완전히 잊힌 배우가 되었다. 최근 몇 년간 가끔 한국으로 돌아와서 김기영 재평가 열풍에 일조를 하고 있다. 이화시는 자신의 본명이 이경덕이라며 자신의 삶이 김기영의 영화로 화인(火印)이 찍혔다고 말한다. 이화시라는 예명도 김기영 감독이 지어준 것이란다. 독특한 이름이다. 중국 춘추시대에 항상 눈썹을 찡그리고 다녔던 미녀 서시((西施). 그래서 못난 여자들까지 그녀를 따라 얼굴인상을 쓰게 만들었다는 그 서시에서 이름을 따서 화시라고 지었단다. 그녀의 데뷔작 [반금련]에서는 이화시가 두 손을 독특하게 교차시키거나 한 손을 머리에 대며 (마치 편두통환자처럼) 독특하게 인상을 쓰는 장면이 많다. 바로 서시 따라 하기였던 셈이다.
 
  한량이자 카사노바 역인 서문경 역은 당대의 인기배우 신성일이 출연한다. 정부인, 즉 첫째 부인 역은 박정자가 맡았다. 박정자는 김기영 감독의 [이어도]에서 정말 신들린 무당 연기를 보여준다. 반금련의 계략에 눈이 멀게 되는 둘째부인 역을 맡은 배우는 놀랍게도 김영애이다. 당시 [영자의 전성시대]로 스타덤에 오른 염복순도 출연한다.
 
  김기영 감독은 1998년 2월 5일 새벽 혜화동 저택에서 일어난 화재사고로 아내와 함께 불귀의 객이 되고 만다. 지금 그 자리에는 주차장이 들어서있다. 해마다 2월 5일이 되면 김기영 매니아들이 주차장을 찾는다. (리뷰 박재환 2008-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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