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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사랑이 우물에 빠진 날 (강이관 감독, 2005)

한국영화리뷰

by 내이름은★박재환 2008. 10. 20.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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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주 극장에서 개봉된 강이관 감독의 [사과]는 푸릇푸릇한 ‘신작’이 아니다. 지난 2004년에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관객에게 선을 보였던 ‘구작’이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창고에서 4년을 썩히더니 이제야 개봉된 것이다. 지난 몇 해 동안 한국영화는 외형적으로 초호황을 누린다고 생각했었다. 해마다 한국영화가 100편 이상씩 제작되었지만 극장에서 개봉을 못한 영화가 꽤 된다. 그러다가 올해 들어 한국영화 위기를 맞으며 제작편수가 ‘확~’ 줄어들면서 그동안 운 나쁘게 극장에 내걸리지 못한 영화들이 빛을 발하는 아이러니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우후죽순처럼 멀티플렉스가 들어선 이 땅에서 말이다.

 

연애와 결혼, 그리고 이혼

   영화는 결혼적령기에 충분히 접어든 여인의 연애담, 혹은 이혼담이다. 괜찮은 회사에 다니는 괜찮은 여자 현정(문소리)에게는 오래된 남친 민석(이선균)이 있다. 명퇴 위기의 아버지를 위로할 겸 가족여행을 떠나자는 엄마의 말에 회사에서 워크샵 간다고 속이고는 둘이서 제주도로 밀월여행을 떠날 정도이다. 그런데 그렇게 떠난 제주도에서 현정은 민석에게서 뜻밖의 소리를 듣는다. “우리 헤어지자”. 예상치 못한 곳에서 준비되지 못한 결별을 통보받는다. 헤어진 여자는 한동안 방문을 걸어 잠그고 눈물을 흘릴 것이며, 애꿎은 핸드폰만 쳐다보며 몇 달을 외롭게 보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느새 그 빈 공간은 딴 남자로 채워진다. 같은 회사 건물에 있는 상훈(김태우)이 오랫동안 현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 남자의 뜬금없는 대시에 “저 남자친구 있어요.”라고 말하지만 상훈의 반응은 준비되어있다. “헤어졌다면서요..”.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난감한 현정. “제가 어디가 좋아요?” 상훈의 대답 “이 건물에서 현정씨가 제일 예쁘잖아요.” 사랑은 그렇게 가고 사랑은 그렇게 온다.

   하지만 현정의 마냥 행복해 보이는 가족이 100% 행복한 것이 아니듯, 순정파 청년으로만 보이던 상훈이 그렇게 로맨티스트가 아니란 것은 결혼과 함께 드러난다. 이른바 삶과 결혼생활은 장밋빛도 아니며 모노드라마가 아닌 것이다. 대한민국 중산층 집안에서 장녀로 ‘행복하게’ 자랐을 직장여성 현정은 분명 자신과는 다른 환경에서 자랐을 상훈과의 허니문을 행복하게 지내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은 것이다. 애를 낳으면 나아질지도, 남편을 따라 구미에 내려가면 새로운 전기가 생길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민석이 다시 등장할 만큼 파경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다.

연애와 이혼에 대한 잔인한 리포트

   사랑, 아니 연애와 결혼, 그리고 그 결혼의 위기는 누구에게나 일어나는 일이다. 불꽃같은 사랑을 했든 권태로운 연애 끝에 정략적 결혼으로 이어졌든 두 사람의 이야기는 긴장된 측면이 있기 마련이다. 그것을 다루는 방식은 홍상수처럼 징그러울 수도 있고 김기덕처럼 극단적일 수도 있다. 가족의 결속이란 측면에서 보자면 이창동처럼 잔인한 경우도 있다. 여기서 강이관 감독은 평범한 커플의 일상적인 이야기를 재주껏 보여준다. 너무나 일상적이어서 사실적이고, 너무나 평범해서 소름이 끼칠 지경이다.

   영화는 일단 신예감독의 출중한 연출력에 관객의 공감을 이끈다. 아름다운 연애와 무거운 삶의 굴레를 마디마디 긴장과 잔재미로 엮어나간다. 문소리라는 배우가 그동안 얼마나 성장했는지 확인할 수 있고 어떻게 그렇게 딱 맞게 캐스팅했는지 김태우와 이선균의 맞춤형 캐릭터에 감탄할 수밖에. 리얼리티 가득한 현정네 패밀리(엄마 최형인, 아빠 주진모, 여동생 강래연!)의 이야기도 긴장된 영화 곳곳에서 소중한 ‘삶의 여유’를 안겨준다.

  그 나이대 여성의 자아성찰이라는 점에서 이 영화를 보아도 이 영화는 오랫동안 언급될 작품일 것이다. 중산층 가정의 복합적 하향을 생각해 볼 수도 있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보여준 김태우의 일상적이지만 보기에 따라서는 범상치 않은 ‘사이코틱’한 심리변화는 감독의 또 다른 작품세계를 기대하게 만든다. 4년 전 작품이다 보니 ‘올해 건진 최고의 신인감독 작품’이라고 말하긴 힘들 것 같다. 하지만 ‘다음 작품이 확실히 기대되는 한국영화’임에는 분명하다.

    관객은 <사과>의 뒷이야기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현정은 똑똑한 여자이고 힘든 경험을 했기에 남자를 사귀는데 더 신중할 것이며 아이를 훌륭하게 억척스럽게 키울 것이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또 다른 자기 짝을 만나 고민하다가 “인생이 원래 그렇지”하며 아름다운 드라마를 꾸밀 것이고 남자는 끝 간 데 없이 추락만하다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를 전해줄지도 모른다. 물론 강이관 감독의 더 멋진 다음 작품은 ‘창고’에서 숙성시키는 일 없이 관객을 찾을 것이다. 그 동안 이 영화를 봤을 관객들은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고 아마 이혼도 하게 될 것이다. “인생이 원래 그런 것이니...”

  참고. 이 영화의 촬영감독은 손수범이 맡았다. 단편영화로 칸을 밟기도 했던 손수범은 최근 송혜교 주연의 영화 [시집]으로 장편극영화 감독 데뷔를 했다. (박재환 2008-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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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월 사랑한다면 사과하세요]라는 문구로 보아, 티저 포스터였던 모양. '섹스, 그 이후의 로맨스'라는 메인 광고도 영화와 안 어울린다. 아마도 미국영화 <섹스 앤 시티>를 염두에 두고 만든 티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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