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로너츠] 무한의 공간, 저 위로!" (톰 하퍼 감독, The Aeronauts 2019)

2020. 6. 15. 18:37미국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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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나는 인간의 꿈은 오래 되었다. 어린 시절 한 번쯤은 망토를 걸치고 담벼락에서 뛰어내리든지 우산을 펼치고 옥상에서 점프한 적이 있을지 모르겠다. 인간은 자신들 신체의 유약함을 극복하기 위해 도구를 적극 이용한다. 라이트 형제 이전에 인간들은 '열기구'란 것을 발명했다. 프랑스 몽골피에 형제가 열기구를 발명했고, 1783년 인류는 마침내 창공을 날았다. 사람이 탄 첫 비행(!)에선 25분 동안 9킬로미터를 날아갔다고 한다. 이후,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열기구 붐이 일었다. 더 높이, 더 오래, 더 멀리 날기 위해 개발된 열기구는 대중에게는 환상적인 볼거리를 제공했고, 과학자에겐 미지의 세계를 살펴볼 필수불가결한 장비였다. 19세기 중엽, ‘과학의 역사’에서 아름다운 페이지를 장식한 열기구 모험을 담은 영화가 개봉되었다. 에디 레드메인과 펠리시티 존스가 <사랑에 대한 모든 것> 이후 두 번째 만난 영화 <에어로너츠>(원제 The Aeronauts 감독 톰 하퍼)이다.

1862년 영국 런던, 기상학자 제임스 글레이셔(에디 레드메인)는 왕립협회의 지원으로 열기구를 타고 하늘을 오르게 된다. 각종 관측장비를 실은 열기구에는 파일럿 아멜리아 렌(펠리시티 존스)이 동승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아멜리아는 서커스의 광대 같은 한바탕 쇼를 펼치고, 열기구는 하늘로 날아오르기 시작한다. 지상의 모든 것이 점점 작아지며 열기구는 고도를 높여간다. 열기구의 부상과 함께 두 사람의 과거가 조금씩 펼쳐진다. 글레이셔는 기상 예측을 좀 더 정확하게 위해서는 좀 더 높은 곳에서 구름을 관측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였고, 렌은 남편과 함께 열기구 모험에 매달렸다. 두 사람이 탄 열기구는 에베레스트 산보다 더 높이 37,000피터(11.3킬로미터)까지 올라간다. 극한의 추위 속에 이제 두 사람은 지상으로 내려가기 위해 사투를 펼친다.

비행기조종사를 ‘파일럿’이라 부르면 되지만, 당시 열기구를 조종한 사람은 뭐라 불러야할까. 당연히 그들은 열기구조종사이며, 밸룬니스트이며 파일럿이었다. 영화는 1852년에 실제 진행된 과학탐사 이벤트를 담고 있다. 당시 열기구에는 기상학자 제임스 글레이셔와 열기구조종사 헨리 콕스웰이 탔었다. 둘의 탐사기는 리처드 홈스의 책 < Falling Upwards: How We Took to the Air>에 자세히 나와 있고, 이 책을 바탕으로 잭 쏜이 시나리오를 집필했다. 아마존 스튜디오는 일찌감치 영화화판권을 획득했다.

영화가 공개된 후, 영국 왕립협회에서는 '헨리 콕스웰' 대신 ‘여자’가 등판한 것에 불만을 표시했다. “1862년 탐사에서 콕스웰이 훌륭하게 역할을 수행했고, 과학자의 생명을 안전하게 지켰다”는 것이다. 영화사 입장에선 최근 할리우드에서 크게 내세우는 ‘PC’나 ‘여성캐릭터’ 강조 차원에서 메인 캐릭터를 창조해 낸 것이지만, 협회 차원에서는 실제 과학계에서 벌어진 일이 윤색되는 것에 불편함을 감추지 않은 셈이다. 왕립협회 관계자는 이런 말도 했단다. “그 당시에도 오늘날 영화에서 충분히 다룰 가치가 있는 여성과학자들이 많았다. 왜 그런 여성 인물은 건너뛰고 가공의 여자를 내세웠나”는 불만이다.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한 과학단체의 불평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다른 의미에서 생각해 볼 여지를 준다.

영화에서 (가공의 인물) 아멜리아가 열기구에 다시 오르는 것을 주저하는 것은 자신이 겪은 끔찍한 사고 때문이었다. 그런데. 열기구의 역사에서 그런 일은 실제로 일어났었다. 글레이셔의 비행이 있기 30년 쯤 전, 1824년 영국의 토머스 해리스는 동료인 소피아 스톡스와 함께 열기구에 탑승한다. 한창 비행 중 가스 밸브에 문제가 생겼고, 토머스 해리스는 결단을 내린다. 동료를 살리기 위해 뛰어내린 것이다. 토마스는 죽고, 소피아는 중상을 입는다. 열기구 모험을 담은 많은 책들에 있는 일러스트에 있는 그림이 바로 그때 상황이다. 당시 수많은 열기구조종사들이 비행 중 각종 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

그 시절, 과학자들이 목숨을 걸고 그렇게 높이 하늘에 오른 것은 좋은 풍경을 내려다보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미약한 인간이 지구에 대해, 자연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잘 알아보기 위해서일 것이다. 책을 찾아보니, 지상에서 멀리 떨어진 상공에서 시도하길 원했던 실험 중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었단다.

19세기 초에는 액체의 증발변화율, 자력의 증감, 자침의 복각, 태양광선의 세기 증가수준, 분광기에 의해 만들어진 색의 불투명도 증가여부, 전자물질의 존재 여부, 공기의 희박함이 인간의 신체에 미치는 영향과 변화 관찰 등을 실험했고, 글레이셔 비행 때는 이슬점 습도계, 응축 습도계, 고도별 흡기기 실험, 아네로이드 기압계와 수은 기압계 비교, 오존 시험지를 이용한 산소 상태, 고도에 따른 지구 자계의 수평강도, 태양스펙트럼 차이, 음향측정, 태양의 화학선 영향 측정 등의 관찰임무가 있었단다.

그 좁은 바스켓 안에 오밀조밀 수많은 과학 장비를 실은 이유이다. 지금도 NASA는 대기권 저 밖에서 여러 가지 실험을 진행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것들이 인류에겐 유의미한 결과를 안겨줄 것이다. ‘에어로너츠’는 어린 학생들에게 꼭 보여주었음 한다. 이 영화가 아이맥스로 상영 안 된다는 사실이 조금 아쉬울 뿐. 2020년 6월 10일 개봉 (박재환 202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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