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 되면서 극장가가 비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는 물론이고, 충무로 영화사들의 기대작들도 배급에 차질이 생기고 있다. 그 틈새를 노려 이런저런 영화들이 앞 다퉈 극장에 내걸리고 있다. 오래전 개봉된 작품들을 기획전/특별전이라고 이름 붙여 상영하기도 하고, 생소한 영화들이 명함을 내밀기도 한다. 그런데 여기 조금은 특별한 영화가 한 편 도착했다. 감독이 ‘무려’ 브라이언 드 팔마이다. ‘캐리’(76년 작품)와 ‘드레스드 투 킬’(80), ‘스카페이스’, 그리고 ‘미션 임파서블’(1편)을 감독했던 거장이다. 게다가 영화(수입)사는 이 영화가 ‘무려’ <왕좌의 게임>에 출연한 배우가 출연한 역작이라고 홍보하고 있다. 궁금해질 수밖에. <도미노>(Domino)라는 영화이다.
영화는 덴마크 코펜하겐의 단짝 형사 크리스티안(니콜라이 코스터 왈도)과 라스를 보여준다. 여느 형사 콤비처럼 이들은 서로 가족처럼 의지하고, 위기 상황에선 전적으로 신뢰한다. 어느 날 범죄 신고를 받고 출동한다. 현장에서 예리한 칼날에 목이 베인 피해자를 발견한다. 하필 그 날 따라 권총을 두고 온 크리스티안. 의심스런 흑인남자(에즈라)를 붙잡았지만 그는 가볍게 수갑을 풀고 동료 라스의 목을 베고는 도망간다. 크리스티안은 필사적으로 그를 뒤쫓지만 갑자기 나타난 정장 차림의 사람들이 에즈라를 인터셉트 해간다. 진상은 곧 밝혀진다. ISIS의 무차별 테러가 유럽에서 펼쳐지고 있고, 미국 CIA는 에즈라를 통해 ISIS의 수뇌부를 잡을 요량이었다. 이제 동료의 죽음에 대한 죄의식과 복수심에 사로잡힌 크리스티안은 목적이 의심스러운 알렉스(캐리스 밴 허슨)와 함께 에즈라의 뒤를 쫒는다. 물론 CIA(가이 피어스)는 훨씬 민활하게, 용의주도하게 그 뒤를 따른다.
중동을 기반으로 한 끔찍한 테러단체를 부르는 여러 용어 중 가장 익숙한 ‘ISIS’는 위키피디아에 ‘Islamic State of Iraq and the Levant’(이라크레반트이슬람국가)로 ‘2014년부터 2017년까지 이라크의 북부와 시리아의 동부를 점령하고 국가를 자처했던 극단적인 수니파 이슬람 원리주의 무장단체’라고 설명되어 있다. 한동안 이들이 자행한 끔찍한 참수 동영상 때문에 지구촌이 몸서리를 친 적이 있다. 이 영화에서도 ISIS전사들이 벌이는 끔찍한 테러를 목도하게 된다. 영화에서 형사들이 ISIS의 행태를 이야기하며 “요즘 애들은 드론까지 띄워 최고의 샷을 잡아.”라고 말한다. 참수장면과 폭탄테러 현장을 극도의 클로즈업으로 ‘프로파간다 영상 위력’을 십분 발휘하는 것이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스페인의 투우경기장에서 펼쳐지는 ‘자살폭탄 테러’ 순간이다. 쫓고 쫓기는 추격전, 라벨의 ‘볼레로’ 음악이 펼쳐지는 가운데 극한의 긴장감을 안겨준다.
사실 <도미노>는 ‘브라이언 드 팔마’가 아니라 다른 ‘듣보잡’ 인물이 감독했다면 꽤나 흥미로운 스릴러로 감상할 수 있었을 것이다. 특히나 망원렌즈로 뒤쫓는 테러범의 움직임과 옥상에서 펼쳐지는 단순하지만 극적인 액션 등이 ‘만만찮은 스릴러’의 긴장감을 전해준다. 영상효과로 보자면 유럽의 한 도시에서 벌어지는 국제영화제 레드카펫 행사장에서 ISIS의 한 여전사가 펼치는 총기난사 ‘라이브’는 압권이다.
<도미노>는 브라이언 드 팔마가 감독을 맡았지만 제작비 조달이 여의치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감독은 이 작품에 불만이 많은 모양. 실제 영화는 뭔가 꽉 채워진 느낌이 없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공백이 어두운 화면 곳곳에 남아있다. 궁금해서 해외 평을 찾아보니 영국의 한 평론가는 이렇게 평했다. “이게 정말 브라이언 드 팔마 감독 작품이 맞는다면, <도미노>는 브라이언 드 팔마 최악의 영화이다.”고.
한물 간(?) ISIS 테러범 이야기를 다루면서 감독이 어떤 정치적 스탠스를 취했는지는 의문이다. 턱수염 기른 중동 테러범을 묘사할 때나 테러범들이 “모든 것이 알라의 뜻”이라고 부르짖을 때에는 그동안 수많은 할리우드 영화에서 보여준 앵글에서 단 1인치도 나아가지 못했다.
제목으로 쓰인 ‘도미노’는 어떤 하나의 사태가 원인이 되어 주변에 비슷한 사태를 촉발시키는 것을 말한다. ‘피자’도 아니고 툭 쳐서 쓰러뜨리는 ‘게임’도 아니다. 중동과 유럽의 정치적 불안정성을 상징하는 말로 쓰인다. 그런데, 지금 시점에선 조금 생뚱맞다. 감독이 브라이언 드 팔마여서 그럴까. 물론, 보기에 따라선 ‘스네이크 아이’(Snake Eyes, 1998)만큼 스릴 넘치는 영화이긴 하다. 단, 감독이 그가 아니었다면! (박재환 2020.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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