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리움’(Vivarium)은 동물사육장을 말한다. 자연에 가까운 환경을 인위적으로 조성한 작은 우리를 만들어놓고, 유리를 통해서 들여다보며 그 안에 갇힌 생물의 생태 과정을 관찰한다. ‘아쿠라리움’은 아쿠아(물)에 특화된 것이고, 비바리움은 생명체(viva-)에서 파생된 단어임을 알 수 있다. 이 영화를 이해할 수 있는 직접적인 ‘제목’인 셈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나뭇가지 위의 새 둥지를 보여준다. 털도 아직 나지 않은 새끼들이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그런데 한 놈이 아직 부화하지 않은 알을 밀어내고, 다른 새끼를 둥지 밖으로 떨어뜨린다. 어미가 물어다주는 먹이를 혼자 다 받아먹으며 무럭무럭 자란다. 다른 새의 둥지에 알을 낳아 성장한다는 뻐꾸기란 놈이다. 동물의 왕국에서 자주 언급되는 특이한 종족번식 방법이다.
그런 새들의 세상을 잠시 보여준 뒤 ‘지구인’ 커플을 보여준다. 유치원 선생인 젬마(이모겐 푸츠)와 조경사 톰(제시 아이젠버그)은 함께 살 새 집을 알아보고 있다. 부동산중개소에서 만난 마틴(조너선 아리스)은 이상한 표정과 어색한 추임새로 신경을 건들린다. 그를 따라 교외에 조성된 주택단지 ‘욘더’를 찾아간다. 색깔도, 생김새도, 구조도 똑같이 생긴 집들이 끝없이 들어서 있다. 톰과 젬마가 집을 보는 사이 중계업자 마틴이 사라졌다. 두 사람은 이곳을 벗어나려 하지만 돌고 돌아도 뫼비우스의 띠처럼 ‘9호’ 집만 맴돈다. 둘은 그렇게 그곳에 갇혀버린다. 어디선가 정기적으로 배달되는 박스엔 음식과 생활용품이 들어있다. 그리고 갓난아기도 배달된다. 둘은 그 아기를 키우며, 땅을 파며 이곳을 탈출하려고 발버둥 친다.
영화는 어느 순간부터 톰과 젬마가 어떤 초월적인 존재의 선택을 통해 한곳에 가둬지고, 목적에 따라 사육되어짐을 알게 된다. 초월적 존재? 아마도 지구를 정복하려는 외계인들이 사전조사 차원에서 지구인을 관찰하려는 것일 게다. 뛰어난 과학문명의 외계인이라면 구글서버에 접속하거나 스미소니언 박물관을 접수하면 될 터인데, 마치 <이티>속 식물학자 외계인처럼 지구인을 관찰한다. 그나마 해부나 생체실습을 직접 하지 않는다는 게 천만다행일지도.
톰과 젬마는 그들의(?)의 음모를 파악하고 덫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외계인은 레이저 무기도 없고, 염력을 쓰지도 않는다. 초월적 존재가 지구인을 관찰하듯이 관객들도 그들의 행태를 파악할 수 있다. 아마도, 미로같이 생긴 문자와 독특한 시그널의 방송을 통해 뭔가를 학습하고, 단 두 명뿐인 지구인의 몸동작을 유심히 관찰하고, 따라하며, 학습한다. 그다지 공격적이지도 않다. 그리고 보아하니 성장이 빠른 만큼 생존주기도 짧은 듯하다.
톰과 젬마 커플의 불행한 납치를 보니 오래 전 <믿거나 말거나>류의 이야기가 떠오른다. 밝게 빛나는 UFO를 보았고, 외계인에게 납치되어 각종 의학적 실험의 대상이 되었다는 지구인들. 개중에는 외계인의 아이를 임신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외계인은 지구인만 관찰할까? 지구인의 친근한 벗인 개나, 지구행성 최고의 포유류인 고래, 혹은 지구행성만큼 오래 생존한 바퀴벌레는 관찰하지 않을까?
로칸 피네건 감독은 글로벌 금융위기와 부동산시장 침체가 가져단 준 유령부동산 실태에서 <비바리움>을 생각했었단다. 팔리지 않는, 저 많은 부동산을 배경으로 뭔가를 전해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걸 자본주의의 몰락이라거나 파시즘의 은유라면 이 흥미로운 판타지호러의 전형적 오독이리라. 2020년 7월 16일개봉 15세관람가 (박재환 202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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