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가 일어나기 전부터 극장가에 ‘구작 재개봉’ 움직임이 있었다. 예전에 ‘벤허’, ‘사운드 오브 뮤직’ 같은 작품이 거듭 상영되며 세대의 공감을 이끌었다면, 최근 들어서는 ‘재발굴’, ‘리바이벌’이 추세였다. 이번 주 개봉목록 가운데에는 <드라이브>(Drive)라는 작품이 있다. 니콜라스 윈딩 레픈 감독의 2011년도 작품이다. 그해 깐느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하며 우리나라에도 소개되었던 작품이다. 갑자기, 뜬금없이 개봉한단다. 어쨌든 큰 화면에서 다시 한 번 볼만한 작품이긴 하다.
라이언 고슬링이 연기한 영화의 주인공이 이 영화에서 이름을 불린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는 오직 ‘드라이버’로 불린다. 첫 장면에서 그의 역할이 나온다. 그는 어디선가 불러주면 곧장 달려간다. 그리고 순식간에 어딘가로 데려다준다. 갱들이 은행을 털고 나오면 그들을 픽업하여 경찰차를 따돌리고 안전한 곳까지 이동시키는 일이다. 가끔, 영화촬영장에서 위험한 카체이싱 장면을 대신하는 스턴트 역할도 한다. 일상적이고도, 위험한 삶을 살아가던 그에 작은 파문이 인다. 마트에서 친절을 베풀었던 아이린(캐리 멀리건)이 알고 보니 아파트 이웃. 아이린의 남편이 출옥하고 빚을 갚기 위해 전당포를 털 계획을 세운다. ‘드라이버’는 이 일에 연루되며 끔찍한 갱단 보스들과 맞짱을 뜨게 된다. 이유는 없다. 아이린과, 그의 어린 아들 베니치오를 위해서라면.
영화의 시작은 스타일리쉬하다. 도시의 고독은 혼자 다 씹는 듯한 ‘드라이버’가 도로를 질주하며 경찰을 따돌리는 장면에서 그의 뛰어난 운전 실력에 매료된다. 그렇게 반쯤 유지되던 긴장감은 전당포사건 이후 폭발한다. 단순한 드라이버가 갱단을 상대로 ‘존윅’같은 액션을 펼치기 시작하는 것이다. 니콜라스 윈딩 레픈 감독은 ‘카 드라이빙’ 보다는 그야말로 헤드샷 액션의 화려함, 잔인한 비주얼에 공을 들인다.
니콜라스 윈딩 레픈 감독의 <드라이브>는 칸 감독상을 받은 것은 액션의 긴장감에 고독한 킬러의 감정선을 잘 살렸다고 본 모양이다. 영화를 보면서 <레옹>의 분위기와 함께 오래전 서부극 <셰인>의 정서를 떠올리게 한다. 마을의 평화를 어지럽히는 악당들이 있고, 평화롭게 살려는 가족이 있다. 그 가족을 위한 맞춤형 건맨이 셰인(알란 랏드)이다. 셰인이 총을 뽑은 이유는 유부녀 진 아서와 그의 어린 아들 조이 때문이었다.
차를 몰고, 총을 뽑고, 악당을 처리하고, 꺼림칙한 정의의 사도는 살아남을까, 조이처럼 베니치오의 머리를 쓰다듬을 수 있을까.
부릉거리는 엔진소리와, 폭발하는 샷건, 그리고 깊숙하게 날카롭게 파고드는 칼날의 아픔을 뒤로하고 고독한 남자는 시동을 걸고 석양으로 사라진다. <드라이브>는 그런 영화이다. 2020.9.3.재개봉/청소년관람불가 (박재환 202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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