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넷] 크리스토퍼 놀란의 시간은 거꾸로도 흐른다

2020. 9. 7. 14:37미국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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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스텔라>에서 그 어려운 차원의 문제를, <인셉션>에서 그 심오한 꿈의 심층으로 들어갔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이번엔 아인슈타인의 물리학에 도전한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거나 다시 되돌아올 수 있을까. 그런데 신작 <테넷>(원제:TENET)은 단순한 시간여행 영화가 아니다. 제임스 본드가 ‘미래의 Q’에게서 첨단무기를 전달받아 사방팔방, ‘뺑뺑이를 돌며’ 세계종말을 획책하는 빌런을 처치하는 스파이액션 영화이다. 그렇다. 설명을 들으면 말이다!

엄청 키 큰 여자, 빨간 줄 백팩 남자, 브룩스 브러더스 양복맨

영화는 우크라이나 키예프의 오페라극장에서 벌어지는 테러 현장에서 시작된다. 테러리스트들이 총을 쏘며 공연장에 들이닥치고, 곧바로 테러진압요원들이 작전에 나선다. 공기흡입구를 통해 가스를 살포하고 객석의 사람들이 쓰러진다. 그 와중에 테러진압요원 복장을 한 주인공(존 데이비드 워싱턴)이 진입한다. 누군가를 구하고, 뭔가를 회수하는 작전인 듯. 짧은 순간 주인공은 불가사의한 현상을 본 듯하고, 누군가가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것을 인지한다. 이제부터, 주인공과 함께 그 불가사의한 현상이 무엇인지, 마스크를 뒤집어 쓴 사람이 누구인지 분별하는 복잡한 인식의 게임에 뛰어들게 된다. 물론,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시간은 키예프에서 런던으로 정주행하기도 하고, 오슬로에서 탈린으로 역행하기도 한다. 아니, 도로 위 차선에서는 동시에 나타나 엇갈리기도 한다.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느끼세요”

<테넷>의 시간흐름과 총알의 물리학적 개념을 완벽하게 이해하려면 영화를 수십 번 봐야할지 모를 일이다. 고작 서너 번 반복 관람하게 되면 나름 ‘현상의 구멍’을 찾게 되고, 놀란 감독이  고심한 영화적 작법에 어느 정도 순응하게 된다. 미래의 과학자가 만들었다는 괴상한 알고리즘에 대한 집착만 빼면 <테넷>은 테러 작전과 자동차 추격, 그리고 중2병 악당의 정신분열증 광기의 총합이다. 

 열역학법칙이니 하는 설명을 듣고 영화를 다시 보아도, 벽에 박힌 총알이 다시 탄창에 들어가는 모습에서 혼란을 겪게 된다. 흔히 말하는 총알은 탄두와 탄피로 구성되어 있을 텐데, 저쪽 벽의 탄두가 다시 이쪽 총구를 통해 탄창에 인버전될 때 탄피와 그 속의 화약성분은 어디에 있다가 채워지는 것일까. 그것에 대한 타당한 설명을 듣기도 전에 로라(클레멘시 포시)가 “이해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느끼세요”라고 말한다. 올해 최고의 맥 빠지는 대사일 듯.

누군가에게는 페이트, 누군가에게는 리엘리티

의학적으로 고통스러운 요즘, 물리학적(?)으로 어려운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테넷>을 보는 것은 힘든 일이다. 물리학의 정수를 깨치는 것 보다는 영화에서 펼쳐지는 깨알 같은 개그와 상황파악을 못한 채 연기를 펼치고 있을 배우들의 표정을 지켜보는 것도 큰 재미일 듯. 아마도 악당 사토르(케네스 브래너)는 아타세케이스에서 금괴와 함께 미래에서 온 신문을 읽으며 상황을 파악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웬만한 작은 극장스크린에서는 짐작만 할 뿐이다. ‘사이즈의 문제로’ 이 영화가 넷플릭스에서 공개되더라도 미래를 엿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오직, 대화면 극장에서 거듭 보아야 놀란을 쫓아갈 수 있을 듯. 그것이 크리스토퍼 놀란 진성 팬의 페이트이자, 리얼리티이다.  2020년 8월 26일개봉/12세관람가  (박재환 2020.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