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미국 대선을 거치면서 미국이라는 나라의 민낯이 다시 한 번 세상에 폭로되었다. 미국사회가 얼마나 계급적으로 분리되었는지, 그리고 ‘흑인(아프리칸 아메리칸)에 대한 차별과 억압이 얼마나 극악하다는 것을 뉴스를 통해 생생히 지켜볼 수 있었다. 그들에게 행해지는 공권력의 폭력과 집단적 증오를 바다 건너 우리로서는 쉽게 이해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들의 분노는 스파이크 리나 조던 필 감독을 통해 만나볼 수는 있었다. 여기, 또 다른 작품이 있다. 영화사에서는 ‘킹스 스피치’ 제작진이 만든 ‘풍자 코미디’라고 홍보하고 있는 영화 ‘그날이 온다’(원제:The Day Shall Come, 2019)이다. 억압받는 흑인에게 자유와 평등과 기회의 그날이 올까?
‘모세 알 샤베즈’는 마이애미에서 ‘육각성’(the Star of Six)라는 아주 작은 종교단체를 이끌고 있다. 백인에게 빼앗긴 자유를 되찾고 흑인의 세상을 만들자는 혁명적 주장을 내세우지만 현실은 월세 낼 돈도 없어 사는 곳에서 쫓겨나기 일보 직전의 가난한 미국 마이너일 뿐이다. 하지만 모세는 혁명의 기운이 들끓고 있다면 열심히 “알라, 멜키체덱, 예수, 블랙 산타, 무함마드, 그리고 투생 장군”을 나란히 부르짖는다. 전혀 위험해 보이지 않는 이 이상한 집단을 FBI가 예의주시하고 있다. FBI는 최근 심혈을 기울인 작전이 완전한 실패로 돌아가서 뭔가 돌파구를 찾아야했다. 그들이 실패한 작전이란 것은 조금 덜 떨어진 아랍 불평불만자를 테러리스트로 분장시켜 폭탄을 터뜨리게 하고, 그 현장에서 그를 붙잡아 ‘거대한 전쟁에서의 완벽한 승리’를 주장하려고 했던 것이다. FBI 마이애미 지부는 ‘모세 알 세베즈’를 다음 타킷으로 정한 것이다. 비폭력혁명을 주장하는 그들을 부추기며 알 카에다식 테러를 선동한다. 자금도 지원하고, 총도 지원하고, 필요하다면 핵물질도 제공한다. FBI는 현장만 덮치면 되니까! TV뉴스가 생중계하는 가운데 이들의 혁명은 성공할까, FBI의 작전은 성공할까? 과연 그날은 올까?
88분에 불과한 <그날이 온다>는 흑인들의 무기력한 분노와 테러에 맞서는 무자비한 미국의 방식을 날카롭게 풍자한다.
모세가 이끄는 ‘육각성’이란 신앙의 정체는 사이비종교라고도 할 수 없을 만큼 조잡하다. 그들이 부르짖는 신들도 모든 종교의 잡탕이다. ‘투생 장군’은 19세기 초, 노예 제도를 끝내고, 프랑스로부터 아이티의 독립을 이끈 투생 루베르튀르를 말한다.
영화 오프닝에서 이 영화는‘수백 가지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풍자극의 방식’으로 이해했는데, 실제 그런 사건이 있었단다. (2001년 9.11 테러가 일어난 뒤 ‘테러’에 대해 극도로 예민한 미국인들을 다시 한 번 들쑤셔 놓은 사건이 있었다. 2006년 플로디다 주 마이애미에서 7명의 흑인이 FBI에 체포된다. 이들은 ‘Liberty City Seven’이라 명명된 테러단체란다. 물론, 7명은 뭔가 덜 떨어진 어설픈 믿음으로 뭉친 종교단체였다. 당시 (부시 정권의) 법무부장관이었던 알베르토 곤잘레스는 이들이 엄청난 테러를 획책했다고 발표한다. 재판과정에서 ‘그들은 말을 타고, 시카고로 진군하여 빌딩을 폭파시키려고 했다’는 것이다. 물론 말도 없었고, 폭탄도 없었고, 알 카에다와의 연계도 없었다. 밝혀진 것은 FBI 끄나풀(정보제공자)이 달러를 제공하며 ‘미국을 공격하라’ 사주한 것이 다였다. 재판은? 한명 빼고는 다 유죄 판결을 받았단다.
아, 물론, 이 영화는 흑인, 이슬람, 비주류, 마이너들을 테러리스트로 몰아, 그들의 자유를 억압하려는 미국 주류사회의 사악함을 풍자한 영화이다. 그런데,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들을 보면 문제는 좀 더 심각해진다.
911테러는 알 카에다의 테러리스트들이 비행기 조종술도 배워가며 장기간 계획을 세운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미국의 수많은 덜 떨어진 사람들이 저마다의 요상한 주장을 내세우며 자유와 평등과 기회를 외치고 있으니 조금 아찔하긴 하다.
마샨트 데이비스가 모세를 연기한다. 한국 영화팬에게는 FBI요원 켄드라를 연기한 안나 켄드릭만이 그나마 알만한 얼굴일 듯. 2020년 12월 9일 개봉/15세관람가 ⓒ박재환 202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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