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뮬란] 디즈니와 유역비의 거대한 전쟁

2020. 9. 21. 08:48미국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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氣에서 시작하여 忠과 勇을 거쳐 孝로 끝나는 이야기

디즈니는 마블과 픽사, 루카스 필름, 그리고 폭스사를 인수하며 몸을 잔뜩 불리고 있다. 또한 자신들의 걸작 애니메이션도 열심히 실사영화로 다시 찍어내고 있다. 새로 나온 실사영화 <뮬란>은 그런 탐욕스러운 디즈니의 찬란한 최신 결과물이다. 애니메이션이 나온 1994년과 지금 지금 달라진 것은? 트럼프와 홍콩문제일 수도 있겠지만 영화산업 측면에서 보자면 아마도 ‘여성의 지위’과 ‘중국이란 거대한 나라’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라는 문제일 것이다. 게다가 2020년은 코로나라는 전혀 예상 못한 글로벌 이슈까지 끼어들었으니 영화 속 전쟁만큼 혼란스럽다. 

소녀, 12년간 남장한 채 싸우다

 영어로 뮬란이란 불린 목란(木蘭,무란)은 중국에서는 심청이만큼, 잔다르크만큼 유명한 역사적 인물이다. 우리가 아는 위촉오의 삼국시대가 지나고 이후 당나라가 들어설 때까지 서기 3에서 6세기까지 대륙의 형편은 혼란 그 자체였다. 중원의 패권을 둘러싸고 위진남북조 시대가 ‘뮬란’의 대체적인 시기이다. 서북쪽은 유목민과 (그들이 일컫는) 오랑캐가 설치던 곳이었다. 그곳에는 오래 전부터 다양한 ‘오랑캐’가 말을 타고 휘젓고 있었다. 이 때 즈음하여서는 유연(柔然)족이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다. 1994년 애니메이션에서는 ‘훈’족이 악당이었는데 이번엔 제대로 시대적/역사지리학적 고증을 한 셈이다. 유연족이 강성해지고 변방의 북소리가 높아가자, 황궁의 천자는 전국에 징집령을 내린다. 다들 민초들에게는 저마다의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목란’ 집도 마찬가지. 목란의 아버지는 이미 한 차례 전장에 나갔던 몸이고 이제 연로한 상이군인. 효심 지극한 목란은 아버지 대신 징집명령서를 갖고 전장으로 뛰어든다. 나라에 대한 충성심, 부모에 대한 효심으로 똘똘 뭉친 의지의 중국소녀 목란은 그렇게 12년 동안 변방에서 이민족과 싸운다. 전쟁이 끝난 뒤 황제가 친히 벼슬을 내리려하나 목란은 “괜찮습니다. 고향으로 돌아가서 부모님을 뵙고 싶습니다.”고 했고, 그제야 그의 전우들은 목란이 여자였음을 알게 된다.

6세기 중국 고대시가 ‘목란사’

영토가 유린되는 절체절명의 위기, 오랜 전쟁으로 고통 받는 민초, 그리고 전장에서 싹트는 뜨거운 전우애, 그리고 무엇보다 아버지 대신 참전한 딸의 이야기라니! ‘목란’은 중국에서는 아주 유명한 이야기이다. 학교에서는 어릴 때부터 ‘목란사’(木蘭辭)를 익힌다. 사(辭)는 중국문학사에서 ‘악부시’의 한 형태이다. 원래 구전되다가 한참 뒤 6세기 후반의 서적에 수록된 것이 남아있다. 모두 300여 자이다. 

내용은 목란이 물레질을 하며 고심이 깊어간다. 아버지에게 영장이 날아왔기 때문. 효심 깊은 목란은 그날 밤 사방으로 쫓아다니며 말과 안장, 마구, 채찍 등을 사서는 갑옷을 갖춰 입고 전장으로 떠난다. 그녀의 등 뒤로 애달프게 딸을 부르는 아비의 소리가 울러 퍼진다. 그런데, <목란사>에서 전쟁을 묘사한 장면은 의외로 몇 줄 안 된다. “그렇게 12년을 싸운다” 그리고, 전쟁이 끝나고 왕의 호의를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아버지와 상봉한다.

 문학적으로 1000년의 생명력을 유지해온 스토리이다. 그동안 ‘목란’이 실존인물인가부터 시작하여 많은 고증이 이루어졌다. 물론, 결론이 난 것은 없다. 목란은 이름이고 성씨가 무엇인가를 두고도 갖가지 버전이 있으니 말이다. 실존인물이라기보다는 잘 다듬어진 ‘소설’일 것이다.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어떻게 12년 동안 ‘여성’임을 숨길 수 있느냐는 데 대해 역사학적으로, 군사학적으로, 그리고 생물학적으로 다양한 설을 내놓기도 한다. 

디즈니의 중국도전

디즈니는 애니메이션 <쿵푸 팬더>를 만들면서 중국시장에서 큰 교훈을 얻었다. 아무리 중국적 소재를 긍정적으로 묘사하더라도 (엄청난 시장을 가진) 중국 사람으로부터 온전한 평가를 받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중국의 문화전문가들은 ‘쿵푸 팬더’가 소비하는 중국식 문화에 대해 반감을 품었다. 그래서 디즈니는 꽤 오랜 세월 ‘실사판 뮬란’의 중국적 요소에 대해 공을 들였다. 

영화는 논쟁이 될 만한 부분은 다 도려낸다. 중국계 배우들을 대거 전면에 내세워 화이트워싱을 우회하고, 애니메이션에서 논란이 된 ‘리샹’과의 로맨스(?)도 분리 처리해 버린다. 그러면서 관객들은 어느 시대, 어느 왕조인지 모른 채, 국경을 침범한 흉악한 이민족과 애국전쟁을 펼치는 여 주인공의 활약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면서 (뉴질랜드 출신의) 니키 카로 감독은 여성으로서 ‘미투 이슈’를 선점한다. 중국의 국민 여배우 공리를 마녀로 등장시켜 오랜 전쟁의 역사, 인류의 역사에서 ‘여성이기에 감수해야했던’ 수난을 온몸으로 보여준다. 공리가 연기한 캐릭터는 사실, 유역비가 연기한 목란(뮬란)만큼 중요하지만, 관객들은 그것까지 생각할 틈이 없을 것 같다. 영화는 의외로 속도감 있게 펼쳐지니 말이다. 


충성, 용기, 참됨, 그리고 효

영화는 뮬란 집안의 가보인 칼에 새겨진 글자를 거듭 클로즈업한다. ‘충성’과 ‘용기’, 그리고 ‘참된 마음’이다. 이는 이민족과의 전쟁과 제대군인 아버지의 존재로 충분히 짐작이 가는 캐치프레이즈이다. 그런데, 이 또한 디즈니의 안일한 오리엔탈리즘의 연장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영화는 초반부에 어린 딸에게 ‘기’(氣)를 설명하며 시작된다. <쿵푸팬더>에서처럼. 세상의 온갖 기운을 흡수하여 삼라만상의 운행의 질서를 터득하고 그것을 자신과 합일시켜 우주적 평화를 완성시킨다는 것이다. 그럴듯한 철학을 디즈니는 열심히 설파하고 있는 것이다. 우아한 몸동작과 함께 말이다. 상투적이다!

결국, 영화는 이민족의 침략에 맞서 필부가 아니라 여린 소녀까지 용감하게 나서서, 전우들과 “으샤으샤”하여 왕을 구하고, 누란의 위기에 처한 나라를 지킨다는 것이다. 그리고, 효까지 완성시킨다. 참으로 아름답고 가상하고, 훌륭한 이야기라 아니할 수 없겠다. 박수!

디즈니는 영악하게, 그리고 유역비의 훌륭한 연기로 새로운 ‘뮬란’을 창조해낸다. 뮬란은 스테레오 타입의 여전사에 머무른 것이 아니라, 자율적 의지로, 개인적 성취(효)와 공적인 성공(충) 동시에 이루어낸다. 

그리고, 정치적인 뮬란

우리가 아는 <뮬란>은 여기까지이다. 2020년이 되며 ‘뮬란’은 중국인의 영웅으로만 머물 수는 없다. 너무 많은 외생 요인이 생긴 것이다. 홍콩민주화 운동에서 벌어진 폭력적 진압과 그에 대한 유역비의 트윗은 어쩌면 작은 에피소드일지 모른다. 중국의 부상을 우려해서인지, 중국의 한계를 알고 있어서인지 많은 서구 관찰자들은 중국의 아킬레스건을 물고 늘어진다. 

 우리가 다 아는 진시황이 통일한 중국의 영역은 지금과 비교가 안 된다. 이후 한(漢) 무제에서 청나라 만주족에 이르기까지 열심히 싸우고, 개척하고, 빼앗은 덕분에 지금의 영토를 차지한 것이다. 지금 ‘신강위구르자치구’라 불리는 서북쪽 상황만 보자면 중국 정부로서는 ‘문제적 지역’이다. 인구 2500만 정도의 이 땅은 원래 서역인이 대다수였지만 지금은 위구르인 45%, 카자흐족 7%, 회족 5% 등과 함께 한(漢)족이 40%를 넘어서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한족은  더 늘어날 것이고, 자연스레 진짜 중국 땅이 될 것이다!) 이 땅에 살던 사람들은 순치되거나 항거하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중국은 건국이래 70 년 동안 유효적절한 대처로, 혹은 철저한 언론봉쇄로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꽁꽁 숨겼다. 중국 정부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지역분열이고, 이곳 소수민족의 독립주장의 대두일 것이다. (같은 연장선상에서 홍콩도, 대만도 짓누르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이곳에서 여러 가지 정책을 펼치고 있는데 (재교육을 빙자한) ‘대규모 수용’, (여성정책을 미화한) ‘산아정책’ 등도 포함되어 잇다. 하필, <뮬란>은 신장위구르자치구의 우루무치 인근 ‘투르판’에서 일부 촬영되었다는 것이다. ‘투르판’은 그 ‘대규모 위구르인 수용시설’이 위치해 있고, 중국정부의 강압적 이민족(소수민족) 정책이 극단적으로 펼쳐지고 있는 대표적인 지역이란 것이다. 영화 마지막에 오르는 엔딩 크레디트에서 디즈니는 친절하게도 촬영에 도움을 준 중국당국, 공안기관을 나열하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서구(특히 호주와 독일)에서는 꾸준히 이 지역을 주시해왔고, <뮬란> 개봉 이후 미국 언론과 정치권에서도 이슈를 제기하고 있다. 

우리는? 한국관객은 <뮬란>을 보며 유역비가 정말 예쁜지, 이연걸은 왜 분장이 저랬을까 이야기하고, 좀 아는 사람은 밍나웬과 정패패를 언급한다. 그리고 최근에는 유역비의 대역 스턴트맨에 환호한다. 홍콩 죠수아 웽으로서는 의문의 일패를 한 셈이다. 

참, 12년 동안 여자인 것을 숨길 수 있었던 것에 대해 중국사가들은 이런 식으로 해석한다. 목란은 한족이 아니라 서역인이라 덩치가 컸을 것이다. 목란은 기병이라 보병이랑 섞일 일 없이 따로 막사가 있었을 것이라는 식으로. 최근 TV ‘스미소니언채널’에서 흥미로운 다큐가 방송되었다. 미국 독립전쟁당시 영국군에 맞서 싸웠던 사령관 카시미르 플라스키(카지미에시 푸와스키)에 대한 이야기이다. 폴란드 출신의 이 사람은 대서양을 건너 신대륙에 와서 미국의 독립을  위해 전투를 펼치다 전사한다. 그 뒤 200여 년이 지나 유골을 발굴하여 과학적 분석을 시도했는데 그 결과가 흥미롭다. 플라스키 사령관은 남자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정확히는 ‘양성’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흠, 디즈니는 중국 ‘뮬란’보다 미국 카지미에시 푸와스키를 영화로 만들었으면 더 흥미로웠을 것 같다. 참, 마지막으로 ‘목란’은 역사적으로 보아 한(漢)족이 아니라 당시 대륙의 북쪽 절반을 차지하고 있던 튀르크/퉁구스 계열의 선비족이 세운 북위(北魏)의 황제를 위해 싸웠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2020년 9월 17일개봉/ 12세 관람가  (박재환 2020.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