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래전(1998.8.15.) 썼던 글을 겨우 찾아내 그냥 올린다. 기회 되면 다시 보고 고쳐 쓰고 싶다 *
비디오 더미에서 건진 깜짝 놀랄 영화 한 편. 이 영화는 오우삼 감독이 <영웅본색>(1986)으로 홍콩영화계의 트렌드를 완전히 바꾸어 놓기 2년 전에 발표된 작품이다. 이 영화는 홍콩느와르의 대표작 중의 하나로 평가받을 만한 작품이다.
홍콩 느와르란, 사실주의와는 전혀 관계없는 ‘멋’과 ‘폼’이 중요하다. 그렇다고 총질, 시거, 선글라스, 주윤발만으로 이해하면 큰 오산이다. 이 영화에선 주윤발 없이도, 오우삼 없이도 충분히 멋있고, 긴장감이 넘쳐난다. 그리고 마지막 20여 분 휘몰아치듯이 전개되는 미로 속 추격전과 좁은 주택 안에서의 총격전 장면은 <레옹>의 마지막 장면에서 뤽 베송이 충분히 베껴 먹은 것 같다. 만약 그가 이 영화를 보았다면 말이다.
이 영화에선 드물게 대륙출신의 범죄인이 등장한다.(1984년 작품임!) <도신2>나 <폴리스스토리4>에서 중국본토 갱들이 보통이 아니란 것이 잘 나타난다. 사회주의 중국에서도 골칫거리로 등장한 것이 이러한 人과 情- '꽌시'로 세력 확장을 하는 집단이다. 게다가 중국역사에는 ‘방’(幇)이란 유서 깊은 조직이 존재한다. 지금 미국, 동남아 등지에서 이태리 마피아만큼이나 세력을 확장시키고 있는 것이 차이나 갱이란 것만 보아도 장래 암흑가의 분포를 짐작할 수 있다. 만약 그들이 암흑가에서조차 인해전술로 나온다면 정말 심각한 치안문제일 것이다.
다행히 이 영화에선 그런 두려운 존재로서의 대륙 갱은 아니다. 대륙에서 도망쳐 온-이런 경우는 종종 있는 모양이다. 문화대혁명 때 날렸다는 그가 홍위병으로서 과거와의 단절이랍시고, 죄 없는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몰았을 것이다. 그리고, 모택동이 죽고, 중국이 정상(?)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홍콩으로 달아나서, 홍콩에서 사람 죽이고, 돈 빼앗고 그랬을 것이다.
내가 다닌 학교에 모 교수님이 계셨다. 그분은 천안문 사태 때(89년) 바른 소리하시다가 쫓겨나다시피 미국으로 일본으로 전전하신 분이시다. 그 분이 겪은 문화대혁명은 참으로 듣기만 해도 암울했다. 대학교수란 직종은 부르주아지(유산계급)라서 정신개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나. 그래서 꼭두새벽부터 밤까지 곡괭이 들고 밭을 가는 것이란다. 아침이다. 들로 나가자. 밤이다. 숙소로. 그러한 생활을 몇 년 하셨단다. 책 읽고 뭐고, 그런 것은 아예 없었단다. 살아남은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했다고.
이들 갱단이 회상하는 대륙에서의 기억들은 모두 긍정적이다. 젊은 시절, 청춘과, 연인과 가족의 아름다운 아련한 기억들만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들이 어린 시절 같이 어울리던 친구 중에 하나. 먼저 홍콩에서 자리 잡은 여자는 카바레에서 춤추는 인생으로 전락했을 뿐이다. 그들이 홍콩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그러한 밑바닥 인생일 뿐인데도 말이다. 중국 국경을 벗어날 때 철조망을 넘다가 동료 하나를 잃는다. 그때부터 이틀 동안 그들이 홍콩에서 겪은 것은 휘황찬란한 자본주의의 천국이 아니었다. 그들은 쫓기고, 달아나고, 총 맞고 죽어가야만 했다. 그러나, 그들은 속으로 홍콩에 남아있기를 바란다. 홍콩의 밤이, 자유가, 여자가 더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심장에 총알이 박힌 동료를 두고 그들의 운명을 논할 때, 갑자기 총을 꺼내들고 서로를 겨누는 장면. 정말 탁월한 명장면이었다. 일촉즉발의 긴장감. 생사고락을 같이 할 이들을 이렇게 갈라놓은 것은 과연 무엇인가. 돈? 자유? 그들에겐 이미 죽은 목숨인 이 총알 박힌 동료를 두고 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운명은 그들의 총구처럼 엇갈려 있었지만, 대륙 놈이 홍콩에서 출세하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그들은 죽을 운명인 것이다. 처음 나서는 촌놈들이 너무 총을 잘 다룬다는 것이 문제지만 멋진 영화인 것만은 사실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 영화를 만든 맥당웅이란 사람은 <성항기병1,2,3>말고는 <옥보단>시리즈 중 하나인<옥보단 투정보감>(91)을 연출했다는 것이다. 그 외는 없다. 기이한 필모그래피다. (박재환 1998/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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