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환 2004.11.23.) 이거 남들이 다하는 영화리뷰 아님.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들임. 이딴 걸 리뷰라고 올렸느냐 딴지걸지 말기 바람.
[DMZ,비무장지대]라는 이 영화를 그런대로 감상하려며 남자들이 입에 침을 튀기며 이야기하는 군대에서 ‘초뺑이’치며 축구한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끔찍한, 혹은 황홀한 30개월 전후의 남자들만의 세계에 대해 전우애, 동지애, 동질감, 공감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미리 말해 두지만 난 ‘후방’에서 ‘빵위’들 무리 속에서 그런대로 편안한 상황병(그래도 현역임!)으로 군 복무를 했다는 점을 미리 밝혀 둔다.
요즘은 공익요원이란 것까지 생겨 '빵위'가 무엇인지 '수색대대'가 얼마나 힘든지를 모를 것이다. 물론 그런 것 몰라도 통일운동 하는데 전혀 지장이 없다. ... 학교 다닐 때 휴가나온 동기들이 당구장에 모여 용감무쌍한 군대생활 이야기할 때 ‘방위 출신 내 친구’는 군대PX에서 고추장 파는 이야기를 했다. (짠밥이 맛이 없어 고추장 팩 사다가 비벼먹는 일이 있었다!) 이 친구는 나중에 아들딸 낳아 키울 때 "아빤 군 생활 어디서 했어?"라는 곤란한 질문을 받을 땐 "이 애빈 고추장 팔았다."라고 말해야하는 서글픔을 토로한 적이 있다. 반면 지금 ***에 다니는 ***라는 친구는 전방부대에서 수색대대 생활을 징~하게 했다. 이 친구가 어느 날 휴가 나와 말한 그 엄청난 군 생활에 입이 따~악 벌어졌다. 박박 기는 훈련 과정 중에 이른바 무당개구리라고 불리는 알록달록한 개구리를 먹는 코스가 있단다. 독한 고참 만났을 땐 "그거 씹~어!"였단다. 그냥 삼키는 게 최고란다. 어쨌든 여름에 이 놈을 먹어두면 한겨울에도 후끈후끈 감기하나 없이 잘 지낸단다. ([서바이버]의 한국형!) 고추장 팔던 놈도 있고 개구리 씹어 먹는 놈도 있는 군대생활. 방위와 현역의 갈림길에서 한국 젊은이들은 고뇌할 것이다.
[공동경비구역 JSA] 만든 박찬욱 감독에게 물어보았다. 군대 어디 나왔냐고? 빵위였단다. "푸하하." 순간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설마 고추장이야 팔았겠는가. [DMZ,비무장지대]의 이규형 감독은 수색대 출신이란다. "우와~" 이규형 감독 영화는 [철수와 미미의 청춘스케치] 단 한 편만을 오래 전에 본 기억이 있다. 이 통통 튀는 이규형 감독이 그런 개구리 부대 출신이라니. 지난 주 회사 근처 국회에서 시사회할 때 일부러 찾아가 보았다. 이규형 이 사람 머리에 흰머리가 희끗희끗 난 게 인생의 쓴맛 단맛을 다 본 중년 같아 보였다. 한동안 일본에서 일본콘텐츠의 책 출판으로 재미를 보던 이 사람이 다시 한 번 충무로로 복귀한 것이다.
주인공은 UN의 멤버 김정훈이다. 클론의 구준엽도 잠깐 나온다. 영화는 뺀질이 김정훈이 전방부대 수색대에서 험난한 군복무 생활을 담고 있다. 이규형 감독은 자신의 군 생활 이야기이며, 실제 사건을 담고 있다고 한다. 개구리 먹는 이야기? 이규형 감독은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시해 당하던 10.26에서 전두환이 권력을 장악하는 12.12사태 - 그 현대사의 격랑시기에 최전방 부대에서 북한군과 대치하고 있었다고 한다. 우와 정말 흥미롭다. 실제 그 당시 휴전선 비무장지대에서 남북한 간에 총격전이 있었던 모양이다. 군인들도 죽었단다.
영화는 한 뺀질이가 남자가 되어 가는 과정을 그린다. 사제인간이 살인병기로 둔갑하는 과정은 스탠리 큐브릭의 [풀 메탈 재킷]의 한국형이다. 한국의 전우애는 휴전선의 대치국면의 긴장감보다는 미군부대 물품 빼돌리기나 포르노 영화 같이 보기 같은 여유 속에서 싹튼다. 박정희가 죽고 비무장지대가 초긴장상태가 되면서 영화는 밀리터리 액션물로 훌쩍 뛰어넘는다. 이 과정은 암만 봐도 이규형 감독의 오버액션이다. 하지만 여전히 [철수와 미미의 청춘스케치] 시절의 풋풋한 휴머니즘은 갖고 있다.
북한 무장침투세력을 사로잡은 수색대원들은 딜레마에 빠진다.
제법 본 풍경이다. 전향과 배신의 길목이다. "자유 대한 만세~"의 귀순용사의 북측에 남겨진 가족들은 어찌될까? '미제국주의 괴뢰남한정부'에 침을 뱉고 총에 맞아 죽으면 북녘의 어린 딸은 영웅의 가족이 될 것이다. 이런 상황설정이 이 영화의 핵심 포인트이다. "날 죽여 달라!"는 무장간첩의 눈빛에서 [쉬리]에서의 최민식의 절규만큼의 민족적 비극을 읽어야한다. 결국 이규형 감독은 남은 가족과 살아남은 제대군인의 휴머니즘을 담고 있는 것이다. 감독은 무섭게 재미있는, 무섭게 감동적인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그런 면에서 그런대로 민족적 비극을 형상화한 영화인 셈이다.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 열혈청년 박재환이 자대배치 받은 지 얼마 안 되어 축구시합을 했다. 제법 축구를 하는 박재환. 오랜만에 볼을 보게 되자 후끈 달아올랐다. 열심히 달렸다. 그런데 치사한 고참 하나가 핸들링을 했다. 이미 군대에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박재환 일병(후반기교육까지 받고 자대 가니 어느새 일병이었다!) 순간 발끈했다. "X병장님, 핸드링 반칙이잖아요!" 세상에 이런 쫄따구는 없었다. 그날 '집합'과 함께 순차적 폭행이 이어졌고....... 이런 억울한 일이 있을 수 있냐. 박재환 불의를 보면 도저히 못 참는다. 하필 얼마 후 상급부대에서 소원수리(그런 게 있다) 받으러 왔다. 박재환 곰곰 생각해 보더니 종이쪽지에 "有口無言"이라고 사자성어를 써냈다. 어떻게 되었냐고. 그 날 또 한 따까리 했다. 그날 이후 박재환은 용감한 대한민국 육군 용사가 되었다.
고추장 팔고, 개구리 씹어 먹는 이야기할 때 박재환은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를 하게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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