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밀밀] 같은 꿈, 다른 꿈의 연인 (진가신 감독 甛蜜蜜 Comrades: Almost A Love Story 1996)

2019. 8. 27. 10:00홍콩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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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환 1999.3.10.) 여소군은 고향 무석에 두고온 애인 소정에게 선물을 보내려고 이교와 함께 보석가게에 들른다. 그리곤 똑 같은 팔찌 두 개를 사서는 하나를 이교에게 채워 주려고 한다. 그러자 이교는 아주 난감해 하며 화를 벌컥 내면서 그런다. "난 친구야. 무석의 소정은 애인이야. 이런 걸 주다니 어떻게 된 거야? 소정이 안다면. 이런 경우 친구라고 한다면 어떤 심정이겠니." 그러곤 얼마 있다 그런다. "내가 여기 온 목적은 네가 아냐. 너가 홍콩에 온 이유도 내가 아니었고 말야." 이교의 쌀쌀맞은 소리에 소군은 힘이 빠져 돌아선다. 거리에서 흘려 나오는 등려군의 노래를 듣게 된다. 그러곤 여소군은 마술에 걸린 것처럼 다시 이교에게로 달려와선 차에서 목을 빼낸 이교와 열정적인 키스를 한다. 그러곤 둘은 방으로 들어간다. 그 침대, 그 가구.. 모두에게 소중한 기억들이 곳곳에 있었다.

 

"우린 결국 실패했어.. 이 방에 우리 것은 아무 것도 없어."
"여소군 동지. 우린 이제 어떡해..."
"더 이상 자신을 속이긴 싫어. 소정에게 말할 거야."
"그럼 난?"
"스스로 결정해."
"난 매일 아침 널 보고 싶어..." 

 

 내가 영화 <첨밀밀>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에선 나도 모르게 감정이입이 될 만큼 현실성이 있고, 대표성이 있으며, 감정이 살아있다. 둘이 (특히 여자 이교에게) 그렇게 오랫동안 속으로 끓어오르는 열정을 억누르면 고뇌하던 자제의 순간이 그 순간 무너져 내리는 것이다. 둘은 각자 부푼 꿈-돈을 벌겠다는 지극히 중국인다운 사고이지만-을 안고 홍콩에 왔었다. 그러고 낯선 땅, 외로운 곳에서 둘은 서로를 알게 되고, 둘은 사랑을 나누게 되지만, 서로의 마음엔 깊은 죄의식과 자기부정의 고뇌가 들어차 있는 것이었다. 이런 면에서만 보아도 이 영화는 그러한 사랑을 한 사람만이 느낄 가슴 아픔이 녹아있다.

 

1996년도 작품인 이 영화의 키워드는 많다. 홍콩회귀(혹은 당시의 표현으로는 중국으로의 영예로운 복귀’), 등려군, 동지, 자본주의, 사랑, 이별, 만남, 기타 등등. 1840 몇 년인가 영국이 중국 앞바다에 나타나 광동성 밑의 구룡반도, 홍콩을 '탈취'해갔다. 그리곤 지난 1997년 고스란히 돌려주기까지 홍콩은 국가 아닌 국가로서 번영과 성장을 거듭했다. 자유주의 홍콩에서 공산주의 중국으로 넘어가는 199771일 그 순간까지, 마지막 몇 년 간은 홍콩거주민에게는 '카오스'수준이었다. 고급인력, 전문가 집단은 캐나다로, 호주로 이민을 떠나는 열풍이 불었다. 물론 수많은 배우, 가수, 연예인들도 대만으로, 싱가포르로, 헐리우드로 진출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홍콩이라는 공백에는 수많은 대륙중국의 인민이 들이닥친다. 일확천금을 노리고 홍콩드림을 꿈꾸며 갖은 수단방법으로 홍콩에 자리 잡으려 한 것이다.

 

198631. 새로운 꿈을 안고 대륙에서 한 남자와 한 여자가 구룡역에 내린다. 이 둘은 같은 날, 같은 기차로 새로운 땅에 내려섰지만, 서로는 서로의 존재를 모르는 상태였다. 이 때부터 이 둘의 기구하다면 기구하다할, 운명적인 사랑이 시작되는 것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의 각자의 사연은 모두 한 시대 홍콩의 투영이며, 역사이며, 현실인 것이다. 왕가위 촬영감독 크리스토퍼 도일(중국명: 두가풍)이 연기하는 영어학원의 알콜 중독 수준의 영어강사를 보라. 그는 이방인 홍콩인이다. 홍콩이 고향도 아니고, 홍콩이 그의 뼈를 묻을 조국도 아니다. 그는 단지 왔다가 가 버리는 많은 홍콩의 뜨내기 중의 한 사람인 것이다. 하지만 홍콩에는 그런 사람이 더 많다. 홍콩이 약속의 땅이 될 수도 있고, 자신의 아픔과 사랑을, 현실을 묻어두는 그러한 비극적 낭만의 장소이기도 하다. 그가 사랑하는 태국의 창녀도 홍콩이 고향이 아니긴 마찬가지. 여자는 마지막에 에이즈에 걸리고 나서야 여자의 고향 태국으로 돌아가기로 한다. 홍콩에서 그들이 기억하는 것은 영어학원에서의 삽화 같은 짧은 추억과 긴 여운뿐이리라.

 

여소군의 고모는 정통 노스탤지어의 화신이다. 그는 오래전 홍콩에 왔던 헐리우드 스타 윌리엄 홀덴을 잊지 못하는 독신녀로 나온다. 아무리 기억을 떠올리려해도 확실하지 않지만 윌리엄 홀덴이 한국전쟁 특파원으로 나오는 영화 중에 <Love Is a Many-Splendored Thing>(모정)이란 영화가 있었다. 그 영화에 등장하는 중국계 미인은 '한수인'이란 실제인물이다. 나중에 모택동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는데 영화줄거리는 한국전 취재 나왔다가 홍콩에 머무르다가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이었을 것이다. 1955년도 작품이니, 아마 그때쯤 윌리엄 홀덴이 실제 홍콩에 머무르지 않았을까? 그때 10대 소녀였을 고모는 윌리엄 홀덴과 함께 찍은 사진을 소중히 간직하고 윌리엄 홀덴과 함께 저녁을 했다는 페닌슐라 호텔 레스토랑의 식기세트를 남몰래 보관한다. 실제로 어떤 로맨스가 있었을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지만, 그날 이후 수십 년 간 고모는 윌리엄 홀덴이 자기에게로 돌아올 것이라는 기다림과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미군, 양공주, G.I. 죠의 이미지와 함께 미국을 향한 홍콩인의 근거 없는 기대와 짝사랑이 윌리엄 홀덴이라는 뜻밖의 대중스타로 체현되는 것이다.

 

하지만 결코 은마는 오지 않는다. 고모의 죽음은 그런 한 시대 홍콩의 퇴락, 홍콩의 역사를 기억하는 세대의 종말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네들은 이제 더이상 영국 식민지로서의 영화와 자유를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증지위가 연기하는 구양표라는 흑사회(홍콩마피아) 보스는 홍콩의 또 다른 모습이다. 우리가 오랫동안 보아온 홍콩 느와르의 그림자는 이 영화에서 철저히 배격된다. 보스는 안마소 침대위에 엎드려 단지 지휘를 하고, 이교의 사랑과 이교의 고뇌와 이교의 슬픔을 이해한다. 오우삼처럼 총을 쏘거나, 주윤발처럼 시가를 입에 물지도 않지만 퇴락해가는 홍콩만큼이나 맥이 풀리는 흑사회를 비춘다. (물론 실제로는 홍콩의 흑사회는 중국회귀 이후 더욱 대담해지고, 더욱 흉폭해지고, 더욱 대규모 현대화 되었다.) 하지만 구양표라는 인물은 더 이상 홍콩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는 미국 차이나타운에 자리잡고 마약과 매춘을 진두지휘하는 것이 아니라, 이곳 저곳 숨어사는 과거의 인물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리고 미국의 길거리에서 미국의 10대 패거리에게 노상강도 당하고, 총 맞아 죽는 최후를 맞이하는 것이다. 그의 주검 앞에서, 장만옥은 그의 등 뒤에 그려진 미키 마우스를 보며 자기도 모르게 아련한 옛 생각에 웃음 짓다 자기도 모르게 또 울고 마는 것이다. (이 장면도 아끼는 장면이다. 장만옥의 매력을 유감없이 알 수 있다) 홍콩의 또다른 과거가 그렇게 막을 내리는 장면이다.

 

여소군의 무석 애인 소정(양공여)은 또 다른 홍콩인이며, 새로운 중국인이다. 자기는 오래 전부터 이교를 사랑했었다는 여소군의 이야기를 듣고 짐을 싸들고는 "가요. 무석으로 가요. 홍콩에 안 왔다면 이런 일도 안 생겼어요." 그런다. 하지만 이네 상황을 파악하고는..."하지만 당신도 왔고, 그녀도 왔고, 마지막으로 나도 왔어요." 그 둘은 헤어지겠지만, 그 둘은 결코 고향 무석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홍콩은 영원히 공산대륙 출신 중국인에게는 약속의 땅이 될 테니 말이다. 소정은 그날 이후 여소군에게 자신을 더 이상 찾지 말라고 그런다. 그녀는 그녀의 홍콩으로 사라져 들어가는 것이다.

 

이 영화에 나오는 등려군은 사실 중국인에게는 국보급 가수이다. 프랑스에 에디뜨 삐아프가 있었고, 일본에 미소라 히바리가 있었고, (한국에 이미자가 있었다면) 중국에는 - 홍콩, 대만, 대륙, 그리고 세계 각지의 화교권에 등려군(Teresa Teng)이 있었다. 산동이 고향이고 대만에서 태어난 그녀가 199558일 태국의 한 호텔에서 죽을 때까지 그는 중국인을 연결시켜주는 하나의 감성이며, 하나의 결합인자였던 것이다.

 

등려군의 노래테이프와 등려군의 노래에 의해 여명과 장만옥이 만나고 사랑하고, 헤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등소평이 죽을 때처럼, 등려군도 엄청난 슬픔과 기억을 남기고 사라져간 것이다. 홍콩은 그렇게 한 시대를 또 접는 것이다.

 

오래 전에 내 홈페이지에서 우리나라 사람이 가장 좋아하는 중국어권 영화는 무엇일까해서 서베이를 한 적이 있는데, 이 영화가 압도적인 1등을 했었다. 아마도 사랑과 이별, 재회라는 것이 우리 한국인에게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인 모양이다. 실제 중국어권에서 이 영화가 대히트를 한 이유도 복합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결국은 그러한 심정적 드라마가 유효했기 때문일 것이다.

 

디즈니-미키마우스가 이 영화에서 소중한 기억장치로 활용된다. 여소군이 입은 티셔츠와 장만옥의 차에 치장된 미키마우스는 중국인에게 하나의 성공상징, 미국사랑의 표상이다. 하지만, 표 오빠의 등에 새겨진 문신처럼 이내들에게는 아름다운 추억과 회상의 도구인 것이다. 몇 달전 홍콩 맥도날드에서는 미키마우스 인형제공 이벤트가 있었는데, 홍콩 전체를 뒤집어놓을 만큼 폭풍을 몰고 왔었다. 우리나라에서도 맥도날드에서 동일한 이벤트를 펼쳤는데 홍콩같은 반향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홍콩은 미키 마우스 인형 모으는 것이 오늘날 텔레토비보다 더하였다. , 맥도날드 유니폼의 장만옥은 너무 예뻤다. ^^ 여명의 연기는 "아름다왔다"고 할만큼 멋있었다.

 

기억에 남는 장면이 많다. 만두국을 먹으며 이야기 하다 처음 사랑을 나누는 장면, 초콜렛을 먹던 장면, 자전거로 사라지는 여명을 쫓는 장만옥의 모습. 등여군 사망소식을 전하는 텔레비젼 수상기 앞에서 재회하는 두 연인의 모습... 참으로 멋진 아름다운 영화였다.

 

, 그럼 영화이야기 그만하고, 시사공부 합시다. 중국대륙인들이 홍콩에 마음대로 넘나들 수 있을까? "!" 홍콩은 돈과 희망, 내일의 땅이다. 아무나 쉽게 넘어올 수 없다. <성항기병>에서처럼 말이다. 최근, 홍콩 終審法院(우리식으로 말하자면 '대법원'급이다)에서 중요한 판결을 내렸다. 오래 전 홍콩인들이 대륙을 여행하다 혹은 사업상 중국에 갔다가 눈이 맞아 결혼, 혹은 내연의 관계를 맺은 내지 중국인과 그들 사이에 출생한 자녀들에 대해 실제결혼 여부와, 연령에 관계없이 홍콩거주민의 자격이 있다고 판시했다. 이 판결에 따라, 현재 수십만 많이는 수백만에 달하는 중국 땅의 사람들이 이제 홍콩인의 자격을 갖추게 된 것이다. 이는 홍콩당국과 중국당국이 가장 우려하던 상황이었다. 이 사람들이 모두 꿈과 희망, 돈을 벌겠다고 그 좁은 홍콩 땅으로 몰려든다면 이 좁은 천국 홍콩은 당장 사회치안문제, 주택문제로 지옥으로 떨어지고 말 것이다. 현재 중국과 홍콩은 그 재판의 법적근거에 대해 갑론을박하고 있는 상황이다. 홍콩은 여전히 중국인에게는 자유와 희망의 땅인 것이다. (박재환 1999/3/10)

 

 

Comrades: Almost a Love Story - Wikipedia

Comrades: Almost a Love Story甜蜜蜜Film posterDirected byPeter ChanProduced byPeter ChanWritten byIvy HoStarringMusic byChiu Jun-FunChiu Tsang-HeiCinematographyJingle MaEdited byChan Ki-hopKwong Chi-LeungRelease date 2 November 1996 (1996-11-02) CountryHong 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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