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간도] 영웅의 죽음

2008. 2. 20. 21:08홍콩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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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ed by 박재환 2003-1-13]  작년 12월 12일 홍콩에서 개봉된 <무간도>는 어제(2003.1.12)까지 5,234만 홍콩달러를 벌어들여 재작년 역대 최고 흥행수익을 올린 <소림축구>의 개봉성적에 도전하고 있다. 오랫동안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지던 홍콩 영화계는 새로운 영화방식으로 오랜만에 활짝 웃고 있다.

  사실 <무간도>는 폼만 남발하는 카메라맨 유위강이 메가폰을 잡았고, 거의 분간하기 힘들 정도의 비슷비슷한 영화에 열심히 출연하는 양조위, 유덕화 등이 출연하는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홍콩 스타일의 액션물이다. 그런데 왜 이 영화가 홍콩영화팬에게 이런 엄청난 호응을 받고 있는 것일까. 그것도 장예모의 <영웅>을 가볍게 따돌리면서 말이다. 대중문화에서 성공하는 작품은 뭔가 특별한 것이 있기 마련이다. 무엇인지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볼까한다.

  <무간도>는 유위강과 공동감독을 맡은 맥조휘(麥兆輝)가 수년 간 붙잡고 있었던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맥조휘는 우리나라 영화 팬에겐 그다지 알려지지 않은 사람이다. 진관희 주연의 멜로물 <願望樹>과 오진우와 진효동이 출연한 <愛與誠> 등의 작품이 있다. (유덕화가 춤꾼으로 나온 <애군여몽>의 프로듀서이기도 하다) 정식 시나리오가 완성도 되기 전에 촬영부터 들어가는 홍콩에서는 보기 드물게도 이 영화는 3년간 그의 손아귀에서 여러 번 수정작업을 거치며 완성된 것이다. 이처럼 오래 숙성시킨 시나리오답게 날림공사나 부실영화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게다가 이 영화의 음악은 베이징에서 200명의 오케스트라 단원이 투입되어 정성들여 녹음되었다.

  제목 <무간도>는 영화 초반에 설명을 해 준다. 불교용어로서 8대 지옥 중 최악의 지옥을 일컫는다. 이 영화는 바로 그 최악의 경우를 보여준다.

  영화가 시작되면 기고한 운명과 임무를 맡은 두 남자를 보여준다. 한 명은 막 경찰학교에서 퇴학 당하는 여문락. 그는 암흑가에 침투하여 밑바닥부터 성장해라는 특수임무를 부여받는다. 한편 그 즈음, 홍콩의 빅 보스 증지위는 조폭 똘마니를 모아놓고는 일장연설을 늘어놓는다. 조직의 미래를 위해 경찰에 스파이를 심어넣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똘마니 진관희가 경찰학교에 들어간다. 이처럼 조직에 침투한 잠입 인물을 워띠(臥底)라고 한다. 청운의 꿈을 품었던 여문락은 조폭 밑바닥에서 조금씩 인정받아 마침내 증지위의 심복으로 성장한다. 반면 똘마니 조폭 진관희는 경찰내에서 적절히 정보를 활용하여 초고속 성장을 한다. 이제는 강력계 유덕화 형사가 된 것이다.

이들은 몇년 동안의 워띠생활로 심신이 지친 상태이다. 그들은 자신의 원래 자리로 돌아가고 싶다. 경찰 고위층도, 조폭의 보스도 자신들의 조직에 스파이가 침투했다는 낌새를 알아차렸다. 그들의 마지막 임무는 절체절명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마약밀매현장. 경찰 강력계 반장 황추생은 조직을 일망타진할 생각이고, 증지위는 한 건 크게 올릴 생각이다. 그런데 중간에 양조위와 유덕화가 있는 이상 일이 쉽지는 않다. 결국 이 일로 조직내에서 '워띠' 헌팅이 벌어진다.

영화는 굉장히 긴박감이 있다. 특히 마약거래 현장에서 '모스' 신호로 정보를 전달하는 양조위와 도청장치를 통해 은밀히 정보를 전달하는 유덕화의 워띠 임무 과정에선 "아.. 저러다가 발각되겠구나.."라는 스릴을 느낀다.

결국, 어떻게 될까?

유덕화는 최근작품에서 지독한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는 배역을 잘 소화해 내었었다. 이 영화에서도 그렇다. 그는 조폭 출신으로 경찰내에서 얻은 고급 정보를 끊임없이 두목에게 알려준다. 그 덕에 그는 유능한 경찰로 승승장구한다. 그는 계속하여 부정부패의 경찰로 남아있을 것인지 아니면 정의의 경찰로 거듭날지에 대해 고뇌하게 된다.

이 영화의 제목 <무간도>가 최악의 지옥을 뜻한다는 것은 라스트 씬에서 확인할 수 있다. 어떤 지옥? 선인은 죽고 악인은 활개를 치는 현실이다.

<...스포일러일 수도 있음....> 양조위와 유덕화는 빌딩 옥상에서 만난다. 서로는 마침내 서로가 '워띠'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둘은 서로가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선 상대를 죽여야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영화는 두가지 버전을 갖고 있다. 홍콩에서 개봉된 버전은 양조위가 죽고 유덕화는 득의만만, 정의의 경찰로 대변신을 한다는 것이다. (중국개봉용으로 준비되었다는...) 또 하나의 버전에서는 양조위는 죽고 유덕화는 체포된다.

아마,홍콩 버전이 명확히 '최악의 지옥'을 보여준다. 중국버전은 정의는 이긴다는 사회정의의 실천을 강조한 것이다.

이 영화는 홍콩에서 개봉된 후 언론으로부터 굉장한 호평을 받았다. 홍콩영화의 부활의 신호탄이라는 영화산업적 평가는 물론이고, 홍콩사회의 정신적 혼란을 영화미학적으로 표현하였다는 과찬까지 말이다.

홍콩인의 입장에서 보자면 확실히 남다른 '영웅관'을 엿볼 수는 있다. 장예모 감독의 <영웅>은 일면 박제가 된 거시적 영웅담이다. 하지만 <무간도>는 홍콩역사가 빚어낸 참담한 영웅관이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유덕화나 양조위 둘 다 '워띠'가 되기 위해 노력한 것은 아니다. 그들은 조직에 의해 우연히, 아님 재수없게 그 길로 나선 것이다. 홍콩은 1840년에 영국에 접수되면서 타인의 역사를 갖게 된 것이다. 그들의 신분에 대한 반발도 의식도 없이 말이다. 그래서 홍콩사람들은 이들의 비극적 운명에 더욱 관심을 갖는 것이다.

죽음의 무게가 얼마나 되는지는 관객 각자의 역사관에 달려있는 셈이다.  (박재환 2003/1/13) 
 
 無間道 (2002)  Infernal Affairs
감독: 유위강(劉偉强), 맥조휘(麥兆輝)
출연: 유덕화,양조위,황추생,증지위,정수문,진혜림,진관희,여문락,소아헌,임가동
한국개봉: 2003/2/21  홍콩개봉: 2002/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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