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환 1998.9.22.) *** 1998년 부산영화제 때 하루에 영화 네 편 씩 보고,그 날 밤 컴퓨터에 앉아 네 편 내리 리뷰 쓸 때 쓴 글입니다. 많이 아쉬운 부분이 있지만, 그후 <해상화>를 다시 보지 못해 고칠 수가 없군요. 지금 다시 쓴다면 이 영화의 각본 작업을 한 장애령 이야기와 함께 원작에서 이야기하고자 했던 부분을 첨부할 것 같군요. ***
이번 (1998년 3회) 부산영화제동안 가장 기대를 했던 영화 중의 하나가 바로 후효현(후샤오시엔) 감독의 신작 <상하이의 꽃>이다. 원제는 <海上花>이다. 일반적으로 海는 호(扈)와 함께 상해지방을 뜻한다. 그러니 원제의 뜻은 “상해에 뜬(혹은 피어난) 꽃”이다. 원작소설 (혹은 당시 기방세계의 구술담인지도 모르겠다)은 <해상화열전>이다. 그것을 후샤오시엔의 다른 작품처럼 역시 일본 자본으로 만든 것이 이 영화이다.
시대배경을 몰라 무척 고심했는데 영화 중에 얼핏 보이는 계약서상의 년도는 1884년인가 그랬다. 그러니, 이른바 제국주의 외세의 침략이 본격화되고, 중국의 노른자 땅이 조차지, 혹은 조계라는 이름으로 하나씩 넘어갈 때의 이야기이다. 이것은 도시의 한 구획을 뚝 떼어 미국 땅, 영국 땅, 독일 땅.. 이런 식으로 할양하는 것이다. 치외법권의 희한한 제국 열강의 횡포인 것이다.
당시 상해탄 – 가보면 알지만 정말 멋진 곳이다. 황포강의 드넓은 물결이 거대대륙 중국의 숨결을 쏟아 붓는 장소이다. 당시에 이곳에 이런 푯말이 붙어 있었다. “출입금지: 개와 중국인” 이라고, 오늘날도 중국인들은 자기 땅에 붙어 있었던 그 대접 – 중국인은 개와 같은 대접을 받았다는 것에 대해 분개하고 있다. 하지만, 이 영화에선, 그 어떠한 못된 제국주의 양놈도, 그 어떤 열혈 황비홍도 등장하지 않는 퇴락할대로 퇴락한 중국의 한 계급사회만이 나온다.
영화는 놀랍도록 우두운 실내-기방-에서만 이야기가 펼쳐진다. 단 한 장면도, 외부로 카메라를 돌린 적이 없다. 그래서, 관객들은 영화시작부터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한다. 첫 시퀀스는 10분짜리 롱테이크이다. 전작 <남국재견남국>의 경우보다 더 길어진 충격적인 오프닝씬이다.
후샤오시엔의 영화실험은 이제 거의 극단적인 상황에 이른 모양이다. 오늘날로 따지자면 고급 룸살롱에 모인 이들은 바로 淸나라라의 변발을 하고 있는 일반 유한계급들이다. 양조위도 저 구석에 조용히 앉아 알 수 없는 미소만 잔뜩 짓고는 연신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 그리고, 술상을 빙 둘러앉은 이들은 연신 “후아취엔(劃拳)”을 하고 있다. 일종의 가위바위보로 술 마시기 내기를 하는 것이다.
(이걸 잠깐 설명하면, 두 사람이 “하나둘셋” 하고, 동시에 각자 알아서 손가락을 펼친다. 하기 전에 먼저 말을 꺼낼 사람을 정한다. 예를 들어 박재환이 양조위랑 이걸 한다면, “내가 먼저 할 게..”하고는 “하나 둘 셋!” 하며, 손가락을 펼치는데, 내가 예를 들어 “셋!”이라고 하면서 손가락을 두개 펼친다. 양조위가 하나를 펼쳤을 경우는 합쳐셔 셋이 되는 셈이다. 그럼 내가 이긴 것이다. 양조위는 벌주로 술을 한 사발 들이 마셔야 된다. 그러나. 양조위가 둘 이상을 펼쳤으면, 내가 부른 “셋”은 틀린 것이다. 그럼, 이제 발언권은 양조위에게 넘어가고, 다시 “하나둘셋” 한다. 양조위가 “다섯”하며 두개를 펼쳤다고 하자. 하필 그때 내가 펼친 게 세 개면, 이번엔 양조위가 맞은 것이다. 그러니, 내가 벌주로 술을 마신다. 이걸 박진감 있고, 리듬감 있게 하기 위하여 장단을 맞춘다. 자연스레.. 우리 식으로 하면.. “일, 일본군! 이, 이순신! 삼, 삼총사! 사, 사오정! 오,오징어!…” 이런 식으로 말이다. 이렇게 박자 맞추어 빨리빨리 하다보면, 어느새 술은 거나하게 취하고 의기투합되어 있는 것이다. 지금도 중국가면, 술판마다 이런 게 벌어진다. 그래서 열심히 정신없이 술 퍼마시는 걸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이 영화의 첫 장면에서 열심히 “후아취엔”를 하고 있는 사람들은 지방의 관리일 수도 있고, 돈 많은 사람들일 수도 있다. 그들이 나누는 대화에는 그 어떠한 우국의 이야기도, 세상사에 대한 말도 없다. 그야말로 탈역사화된 이야기뿐이다. 가족이나, 집안 이야기조차 없다. 어느 기방에 새로 들어온 누가 예쁘다더라..라는 이야기 뿐이다. 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기방(妓房)은 그것이 정확하게 어떤 업소인지는 역사의 뒤안길에 묻힌 것이다. 쉽게 이해하는 유곽과도 좀 다른 것 같다. 아마도 기녀는 오늘날의 창녀와는 완전히 다르다. 그들은 어릴 때 팔려 와서 10여년 간 술시중 드는 법을 배운다. 그래서, 얼굴 만만하고, 메너 좋으면, 단골을 많이 갖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가, 손님의 눈에 띄면, 시집가는 것이다. 물론 첩으로. 그러면 그 술집 주인은 그동안 키워놓은 값으로 플러스 알파의 수익을 올리는 것이다. 이런 시대상황을 담담히 지켜보는 1998년 한국의 관객은 왠지 씁쓸한 맛을 느낄 것이다.
지루함을 견뎌낸 대부분의 관객의 반응을 볼려고 하니, 들리는 말은 단 하나 뿐이었다. “여자애들 참 안 됐다..”라는 말뿐이었다. 내가 보기에는 관객이 너무 안 되었다. 이런 영화를 다 보게 되다니 말이다. 이 영화는 오직 깐느 심사위원, 그리고, <까이에 드 시네마>편집장과 <키노> 기자들을 위해서 만든 영화이다. 함부로 보지 말기를 권한다.
영화는 처음에 등장하는 기녀들을 하나씩 보여준다. 물론 술 손님들은 열심히 후아취엔하며 퍼 마시고 있다. 등장기녀들의 워낙 촌스러우니까.. 기억나는 이름으로는 소홍(小紅.. 영어번역은 크림슨이다)이다. 유가령, 이가흔, 하다 미시코가 한 인기하는 기녀들이다. 손님들은 이들 중 하나를 보기 위해 출입한다. 첫 장면부터 아무 말 없이 술만 마시던 양조위도 이 중 한 기녀를 좋아하는 모양이다. 아니 그 기녀가 양조위를 좋아한 모양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는 그 어떠한 일상적인 로맨스도 없다. 단지, 기녀들은 기녀들의 희망이 있을 뿐이고, 양조위는 양조위대로 왔다갔다 분위기만 피울 뿐이다. 단, 하나 화면에 변화를 주는 영상이 있었다면, 후반부에 기녀 하나가, 나랑 결혼해 주겠다고 하고선, 배신을 해..하며 같이 약 먹고 죽자고 길길이 뛰는 장면뿐이다.
이 영화에서 오늘날 담배 피는 것 만큼 많이 등장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아편 흡입장면이다. 당시 중국인들은 귀족이나, 하층계급이나 다 아편을 들이마셨다. 그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편전쟁이었고, 이 추악한 전쟁의 결과 중국은 이제 속수무책으로 서구에게 뜯겨먹기 시작한 것이다. 임칙서(혹은 임측서)가 그렇게 막으려했던 아편은 이제 광범위하게 중국인의 정신세계를 황폐화시켰다. 아편 흡입의 방식은 일반적으로, 수증기 원리를 이용한다. 물푸레같이 생겨서, 불을 붙여, 아편의 증기를 들이 마시는 것이다. 생아편은 몰핀처럼, 통증제어 효과가 있지만, 과다복용시 사망에 이른다.
담배 권하듯이 아편을 권하는 그 시대의 망쪼는 이미 들대로 든 것이다. 모택동의 제 1공로는 중국 인민의 아편흡입 절대금지였다는 것이 일리가 있는 말이기도 하다. 장개석이 대만에 쫓겨가서 한 첫 번 째 일이 아편 밀매단체 깡끄리 소탕, 총살형이었다. 그 여파로 발생한 것이 2.28사변이고, 그걸 영화로 만든 것이 <비정성시>이다.
양조위도 이 영화에서 아편을 먹고, 정신이 몽롱한 상태에서 기녀와 이야기할 뿐이다. 나누는 이야기도 그렇게 철학적이거나, 우국충정의 소리는 불행하게도 단 한 마디도 없다.
이제 이 영화의 정체를 알 것이다. 이 영화는 1880년대에 멈춰버린 중국의 한 계급(상해의 유지들)을 통해 그들이 생각하는 것이 결코 형이상학적이며, 훌륭하다는 것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감독은 의도적으로 그 시절을 역사로부터, 완전히 떼어내어 표백시켜버렸다. 관객은 단지, 그 시절을 좋았던 한 시절로 인식할지라도, 실제로는 절망과 자포자기의 순간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등장인물들 중 그 어느 누구도 이러한 시대의 암울함, 절망감을 표현하지 않는다.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것은 수만 년 변화 없는 중국제국의 몰락을 어두운 퇴영일 뿐이다. 역사인식도, 개선의 의지도, 발전의 희망도 갖고 있지 않은 그들 때문에 중국은 망한 것이다. 단지 마시는 술과 들이키는 아편에 쩌려 하루씩을 살아가는 것이다.
후샤오시엔 감독의 영화표현 기법은 이 영화에 이르러 완벽에 가깝다. 그들이 살아온 폐쇄공간은 기방으로 축소, 한정되고, 그들이 나누는 대화 – 어떤 기녀가 어떠하다라는 식의 대사-는 그들의 관심사의 압축적 표현일 뿐이다. 보고나면 중국이 망할 수밖에 없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당시 이홍장이나 황비홍, 더 뒷날의 모택동 같은 인물의 출현을 목 놓아 기다리는지도 모른다. 영화는 그렇게 지루할 정도 막힌 공간에서, 제한된 출연자에 의해 유지되다가 그렇게 끝난다.
이 영화는 완벽하게 후샤오시엔의 작품이다. 양조위도, 유가령도, 이가흔도…그 어떤 배우도 튀지 못한다. 오직 후샤오시엔의 의도대로, 완벽하게 탈색된 역사공간에서 박제화된 인물군을 연기할 뿐이다. 놀랍도록 무서운 영화이다. 관객이 기억하는 것은 어두운 배경의 기방의 술상과, 후아취엔에 몰입하는 사람들뿐이지만, 그것이 어느 시대, 어느 사회인지는 완벽하게 망각해 버린다.
당시의 중국은 새로운 피와 새로운 인물을 원했다. 그것이 후샤오시엔이 대만을 떠나, 상해의 과거로 날아가서 얻은 교훈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반면교사로 알려주는 역사의 교훈이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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