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 투게더] 사랑, 그 너머 (왕가위 감독,春光乍洩 1997)

2008. 2. 21. 08:32홍콩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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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환 2003.2.2.) 어쩌다보니 <해피 투게더>를 여러 수십 번 보았고 리뷰만 서너 차례 썼다. 그리곤 오늘 또다시 국내 비디오 출시본 보고 다시 한 번 <해피 투게더>에 대해 쓴다.

왕가위 감독이 <타락천사>라는 소품을 끝내고 촬영감독 두가풍(크리스토퍼 도일)과 장국영, 양조위 등을 이끌고 홍콩의 정반대 아르헨티나로 날아가서 악전고투 끝에 <해피 투게더>를 완성한 것은 97년 칸 영화제 개막 직전이었다. 왕가위의 변덕과 장인정신은 출연배우들을 완전히 탈진시켰을 뿐 아니라 그의 팬들에게는 하나의 신화를 남겼다. 왕가위 감독의 신작은 언제 끝날지 어떻게 끝날지 모른다는 것. 다행히 그 해 깐느는 왕가위에게 감독상을 바쳤다.

깐느 수상 이후 곧바로 홍콩에서는 (1997년) 5월 말에 개봉되었고 우리나라 왕가위 영화 전매그룹인 모인그룹이 7월 상영을 목표로 수입, 6월 13일 심의접수를 한다. 모인은 16일 다른 버전으로 재접수했지만 -지금의 영등위와는 또 차원이 달랐던, 당시 공연윤리위원회 심의에서 불합격판정을 받았다. 사유는 ‘동성애가 주제로서 우리 정서에 반함’이었단다. 6월 24일 확대심의에서 심사위원 6명 중 3:3으로 수입불가판정을 받았고, 당시 규정에 의해 1년 뒤에나 재심의가 가능해졌다. 그해 10월 열린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영화관계자(그게 무슨 말이고 무슨 법적인 자격이 주어지는지는 모호하지만…)에게만 제한상영이 되었다. 그리곤 대학가의 시네마떼크 등을 통해 비 내리는 불법복제본 <춘광사설> 혹은 <해피 투게더>가 추산인원 10만 명를 동원했다. 이듬해 98년 2월 25일 이른바 국민의 대통령 DJ가 당선되고 모인은 발 빠르게 재심 신청. 8월 10일 심의를 통과한다. 왕가위는 20일 한국을 찾았고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디너쇼와 수재의연금 경매를 실시하였다. 8월 21일 금요일 밤 11시. 서울 시네코아 극장에서 심야상영회가 있었다. 자타가 공인하는 왕가위 팬인 정성일 당시 <<키노>>편집장이 사회를 보고 열혈 양조위 팬들이 가득 모였었다.

그 날 공개된 한국극장판 <해피 투게더>는 이른바 왕가위 감독이 특별히 편집한 것이라고 당시 모인 사장이 말했었다. 이른바 깐느 버전하고는 차이가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심의규정에 맞추기 위한 타협의 산물이었던 셈이다. 영화 초반 장국영과 양조위의 행복했던 한 순간은 10여 초만 살아남았고, 그것마저 국내 비디오에선 완전히 사라져버린다. 어쨌든 양조위와 장국영의 지독한 사랑의 시말이 펼쳐진다.

양조위와 장국영은 홍콩을 떠나 지구의 반대편 아르헨티나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살고 있다. 그들이 왜 홍콩을 떠났는지 어떻게 처음 만났는지는 모른다. 그들은 이과수 폭포를 보러갔다가 의견 대립으로 헤어진다. 변덕쟁이 장국영과 내성적인 양조위가 이국 땅에서 서로의 사랑을 유지하기는 너무나 힘들다. 양조위는 탱고 바에서 관광객 ‘시다바리’나 ‘삐끼’로 푼돈을 모아 홍콩으로 돌아갈 생각이고 장국영은 대책 없이 이 남자 저 남자 품을 맴돈다. 둘은 헤어졌다가 다시 만나고, 다시 만나서도 여전히 밖으로 맴도는 사랑의 고통을 겪는다. 양조위는 언제나 “우리 다시 시작하자”고 말하는 장국영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 사랑의 파열음은 곳곳에서 들려오더니 마침내 둘은 갈라선다. 양조위는 장진이 일하는 식당에서 접시를 닦기도 하고, 도살장에서 밤에 일하며 홍콩과의 시차를 맞추기 위해 노력한다. 양조위가 떠나간 빈 방에서 장국영은 회한의 눈물을 흘리고, 장진은 지구 끝 등대에서 녹음기를 통해 양조위가 남긴 웅얼거리는 소리를 듣는다. 양조위는 홍콩으로 돌아가기 전에 장진의 고향 대만을 찾는다. 그날 TV에서는 등소평의 부음을 전하는 뉴스가 흘러나온다.

영화제목과 관련하여 이 영화는 몇 가지 제목이 있다. 영어제목은 물론 <해피 투게더>이다. 또 다른 영어제목으로 ‘부에노스 아이레스 어페어’가 있다. 이는 왕가위 감독이 평소에 좋아했던 아르헨티나의 작가 마뉴엘 퍼기의 소설 ‘부에노스 아이레스 어페어’에서 따온 것이란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사랑’이라는 제목보다 더 이 영화를 가까이 다가설 수 있게 하는 것은 <春光乍洩>이라는 중국어 제목이다. ‘봄 햇살같이 스쳐가는 잠깐의 사랑’이란 뜻의 이 제목은 소중하지만 안타까운 두 사람의 사랑을 잘 표현해주고 있다. 한 인터뷰에서 왕가귀 감독은 원제 <春光乍洩>에 대해 말한 적이 있다. “…이 영화의 제목은 시작하자마자 정해졌다.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욕망>(Blow Up)의 홍콩 개봉제목이다. 당시 이것을 내 영화제목으로 쓰면 좋겠다고 생가했다. 나는 후에 <욕망>의 원작이 아르헨티나 작가의 소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든 사건은 ‘인연’이라는 단어로 이야기할 수 있다고 느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결과적으로 모든 사건은 관련되어 있었고, 이 영화 역시 마찬가지이다….”

결국 그들의 사랑은 일반적인 사랑의 궤적과 똑같다. 힘든 시간 힘든 공간에서 둘은 화학적 결합을 이루지 못하고 맴돌다가 산산이 부서지는 것이다. 꿈도 희망도 결여된 순간 그들은 일부러 떠나온 원래의 곳으로 돌아가기를 희망하게 되는 것이다. 양조위는 홍콩에 돌아갈 것이지만 장국영은 또 얼마나 더 회한의 눈물을 흘러야할까.

이 영화는 굳이 ‘1997홍콩귀환’과 같은 정치적인 의미로 볼 필요가 없다. 교활하기까지한 왕가위 감독은 평자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을 흐뭇하게 지켜볼 것이다. 이 영화는 장국영과 양조위의 배우를 혹사시켜 빚어낸 파멸의 러브스토리일 뿐이다. (박재환 2003/2/2 )

[해피투게더|春光乍洩] 왕가위 감독, 양조위,장국영,장진 (Happy Together,1997)감독: 왕가위 (王家衛) 한국개봉: 1998/8/22 99/6/11 캐치원 방영 

 [王家衛 Wong Kar-Wai 위키|百度|豆瓣電影|時光網|IMDB|hkm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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