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환 2008-3-12) 진정한 영화 팬이라면 누구나 가슴에는 자기만의 영화감독이 하나씩 있다. 나의 경우 좋아하는 감독이 누구냐고 물어오면 습관적으로 ‘스티븐 스필버그’라고 말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다가 언제부터인가 ‘왕가위’가 대답이었다. 아마도 그건 우리나라에서 가장 ‘현학적인 대중영화잡지’로 알려진 <<키노>>라는 잡지가 발행되던 시점이랑 거의 맞물린 시절이었다. 그런데 <<키노>>가 폐간되고 나서인지 왕가위 감독은 갈피를 못 잡는 것 같다. 여전히 왕년의 ‘왕가위’ 스타일과 노스탤지어가 있기에 아직도 ‘왕가위 영화’라면 희망을 걸게 되지만 말이다.
왕가위 감독이 [2046]에 이어 이런저런 영화의 제작을 맡았고(순전히 자신의 택동영화사 영화들), 이런저런 영화에 대한 소문이 났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그런 소문은 언젠가는 이루어지는 ‘마법의 프로젝트 파일’로 수장된다. 그가 양조위와 [섭문전]을, 니콜 키드먼과 [상하이에서 온 여인]을 언젠가는 찍을 것이라는 애드밸룬을 계속 띄우는 와중에 할리우드에서 영화 한 편을 만들었다. 이른바 왕가위 최초의 잉글리쉬 무비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이다.
출연배우도 화려하다. 노라 존스, 주드 로, 나탈리 포트만, 레이첼 웨이즈. 노라 존스는 가수이다. 영화 제작 기간 동안 내용이 거의 다 알려졌다. 실연당한 여인이 미국을 횡단하며 이런 저런 커플을 보면서 진실한 사랑을 체득하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블루베리 파이 이야기도 등장할 것이고 말이다. 아, 그럼 왕비(=왕정문)의 [중경삼림]의 영어버전인 모양이구나. 빙~고!
왕가위 감독 영화는 ‘천편일률’적인 면이 있다. 고독한 도시에서 사랑을 잃은 존재가 방황을 하다 자신의 진실한 새로운 사랑을 만나게 된다는 내용. 그 과정엔 스텝프린팅 촬영기법으로 보여주는 ‘때깔’있는 영상과 어떻게 저런 음악을 선곡했을까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최고의 음악들.
지하철과 한밤의 편의점, 허름한 독수공방의 공간 등은 이미 익숙해 질대로 익숙해졌다. 왕가위에 대한 한국 평론가들의 평가도 ‘천편일률’적인 면이 있다. 고독한 영혼을 어루만져주는 최고의 스타일리스트, 아님 이 시대 마지막 낭만주의자 같은 상찬.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도 언제나 보아왔던 그런 왕가위표 영화의 충실한 재현이다. 여자는 실연당했고, 실연당한 여자의 고독한 고백을 들어주는 남자가 있고, 이 공간을 벗어나 다른 세상을 여행하며 뜻밖에도 자신과 같은 고뇌에 빠진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벽에는 시계가 걸려 있고, 여자 주인공은 어떤 특별한 음식이나 음료수를 즐겨 마실 것이며, 캐릭터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일상의 소소한 물건을 간직하며 추억을 지우거나, 반대로 절대 잊지 않으려고 애타게 노력한다는 것이다. 어쩌겠는가. 왕가위 영화인데.
이 영화에서는 노라 존스가 멀리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연인 역을 맡는다. 그의 여정에서 만나는 사람은 뻔하지만 공감할 구석이 있는 ‘드라마가 있는’ 커플이다. 내겐 레이첼 웨이즈가 나오는 부분이 가장 재밌었다. 왜냐하면 그녀가 가장 매력적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어쩌겠는가. 왕가위 영화이니 말이다. 홍콩 배우가 출연하는 왕가위 영화를 볼 때는 사랑의 열정을 공감하거나, 언젠가는 가볼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영화로 인식되었는데 [마이 블루베리 나이츠]는 정말 현실과 격리된 스크린의 드라마로 받아들여졌다. 아마 우리는(나는) 왕가위 식 러브 스토리에 진절머리가 난 모양이다.
그렇지만 그의 다음 작품이 기다려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박재환 2008-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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