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턴 레프트, 턴 라이트] 왼쪽으로 가는 여자 오른쪽으로 가는 남자

2008.03.05 22:26홍콩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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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ed by 박재환 2005-5-23]   우리나라에 소개된 두기봉 감독 작품으로는 [니딩 유], [더 히어로], [암전], [미션] 그리고 예전에 [천장지구3-풍화가인], [우견아랑] 등이 있다. 그렇고 그런 홍콩 영화를 만드는 감독으로 받아들이기 쉽지만 홍콩에서는 드물게 보는 작가주의 경향의 감독이라 평가받고 있다. 이번 깐느 국제영화제에서도 [흑사회]라는 작품으로 경쟁부문에 당당히 진출한 감독이다. 그가 아주 특이하게도 위가휘(韋家輝)와 함께 공동감독한 작품이 꽤 된다. 지난 2000년 [니딩 유]를 필두로 [랄수회춘], [종무염], [풀타임 킬러] 등 10편 내외를 '두기봉+위가휘' 콤비감독 작품으로 내놓았었다. 홍콩 영화계 내막을 잘 아는 사람은 작가주의적 두기봉과 상업주의적 위가휘의 연출요소가 적절히 섞여 가장 홍콩적인 영화를 만들어내었다는 평가를 한다. 이들의 공동 작품 중에 [向左走,向右走](턴 레프트, 턴 라이트)라는 영화가 있다.

  이 작품은 대만의 일러스트 작가인 기미(幾米, 지미)의 그림수필집이 원작이다. 우리나라에는 [왼쪽으로 가는 여자 오른쪽으로 가는 남자]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일종의 '어른이 보는 동화책'이다. 책의 내용은 항상 집을 나와 오른쪽으로 돌아서 세상으로 출근하는 남자와 항상 대문을 나서 왼쪽으로 꺾어 출근하는 여자의 이야기이다. 한 번도 만날 것 같지 않은 이 두 사람은 알고 보면 항상 대만의 타이베이의 어느 곳에선가 항상 함께 있어 왔던,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아직' 알지 못하는 남녀일 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들은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음에도 아직 그 사실조차 모른다. 어느 날 서로 우연히 만나게 되어 전화번호를 교환하지만 하필이면 비에 젖어 쓸모가 없어진다. 외로운 크리스마스를 서로를 생각하며 우울하게 보낸 이들은 다시는 못 만나리라 생각하고 각자의 길을 떠나기로 할 때 다시 만나게 되는 것이다.

  기미(지미)의 그림책은 화려한 그림에 한 줄 문장으로 남과 녀의 스쳐 지나가지 못하는 안타까운 사연을 전하고 있다. 이것을 영화로 옮길 때는 다소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다. 워낙 단순한 상황설정과 소박한 이야기 진행이기에 영화로 옮길 때 어떤 임팩트가 부족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두기봉과 위가휘는 좀 더 많은 사연과 인물을 추가시키는 수술을 감행한다.

  영화는 대만 수도 타이베이가 배경이다. 최근에 타이베이에 들어선 101층짜리 초고층 건물(Taipei 101)을 볼 수 있다. 주인공은 금성무와 양영기이다. 금성무는 바이올린으로 카페에서 연주하며 어렵게 살고 있는 음악인, 양영기는 폴란드 시인의 감성적인 시를 중국어로 옮기고 싶어하는 번역작가로 출연한다. 둘은 같은 아파트 이웃집에 살지만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다. 원작에는 없는 설정은 이 두 사람의 집주인들이 등장하고, 금성무를 쫓아다니는 식당 여자와 양영기를 쫓아다니는 의사가 새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분명 원작 소설과 영화는 지독한 인연에 대한 로맨틱한 이야기이다. 이른바 '수연'(隨緣)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남녀 간의 운명이란 인연에 따른 것이다. 제아무리 발버둥이치더라도 안 될 인연과 맺어질 인연이란 존재하는 것이다. 금성무와 양영기는 자신들의 인연이 상대임을 알면서도 항상 어긋나는 평행선만 긋다가 어느 순간 그 인연을 맺게 되는 것이다.

  영화는 금성무와 양영기의 매력으로 진행된다. 둘 다 로맨틱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적격이다. 그리고 이들을 각각 짝사랑하다가 또 다른 '수연'을 이루는 사람이 엉뚱한 의사 역의 진지재(陳之財)와 직설적인 성격의 관영(關穎)이다. 관영은 모델 출신이다.

  참, 이 영화는 미국 워너 브라더스의 투자로 만들어진 영화이다. 미국 메이저 영화사들이 앞다투어 아시아 각국 영화시장에 적극적인 진출을 시도할 때 만들어진 실험적 투자 방식이었던 셈이다.

  홍콩 조폭들과 경찰들의 리얼한 라이프를 다루는 데 일가견이 있는 두기봉 감독 작품으로서는 생뚱맞을 수도 있지만 그가 유덕화, 정수문을 캐스팅하여 [니딩유]나 [러브 온 다이어트] 같은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을 안다면 이 영화도 그러한 그의 재능의 일면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박재환 2005/5/23)

向左走 向右走 Turn Left, Turn Right (2003)
 홍콩개봉: 2003/9/11
 감독: 두기봉, 위가휘
 출연: 금성무, 양영기, 진지재(陳之財), 관영(關穎), 임설, 허소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