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일 세이프 = 핵전략사령부] 전쟁은 어떻게 시작되는가

2008. 2. 19. 20:55미국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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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ed by 박재환 2003-3-14]
 
미국 부시 대통령은 기어이 이라크의 후세인을 몰아낼 모양이다. (후세인이 왜 나쁜지, 김정일보다 더 나쁜지 덜 나쁜지조차 모르는 한국인을 포함하여) 대부분의 '이성적' 국가의 '무력한' 국민들은 부시의 무모함, 혹은 과단성에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똑똑한' 나라는 일단 부시가 총을 뽑아들면 그 즉시 미국 뒤에 줄을 설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왜냐하면 '석유'라는 후과(後果)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전쟁은 어떻게 일어날까? 국지적 분쟁이 아니라 지구인의 운명을 좌위할 세계대전은 어떤 식으로 시작될까? 1차 대전은 복잡한 유럽내 국제정세가 있었지만 결정적인 동인은 세르비아 극우주의자가 오스트리아 황태자를 암살하면서 뇌관이 폭발한 것이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종결되자 세계는 두 개의 체제로 재편되엇다. 하나는 미국을 중심으로한 자유주의 진영, 또하나는 소련을 중심으로한 공산주의 진영. 미국과 소련은 세계대전이 끝나자마자 엄청난 군비 레이스를 펼친다. 서로의 심장부에 쏟아부을 핵무기를 가득 채운 폭격기를 24시간 발진 준비시켜놓은 채 말이다. 양측의 신경전은은 극도로 예민해졌고, 마침내 1962년 소련은 미국의 코 앞이라할 수 있는 쿠바에 중거리 핵탄도 미사일을 배치하겠다고 나서면서 최고조에 달한다. 미국인들은 경악했고 당시 케네디 대통령은 발끈했다. 결국 11일간의 초긴장 속에서 소련은 물러났다. (복잡한 비하인드스토리가 좀 있다. 쿠바 입장에선 미국이 언제 자기들을 꿀꺽 삼킬지 불안했고, 소련은 자기들의 코 앞 터키에 미국이 미사일 기지를 갖고 있다는게 불안했으니 말이다) 어쨌든 이 사건을 계기로 1963년 미국과 소련은 우발적 오해의 소지를 최소화시키기위한 소통 라인으로 이른바 '핫라인'을 개설한다.

  이런 긴박한 군사적 대결이 있은 후에 대중들은 패닉 상태에 빠진다. 핵 무기의 공포가 현실화된 것이다. 미국과 소련은 상대의 핵 전력에 대해 우려와 근심을 넘어 현실적인 공포에 빠진다. 이럴때 수억이나되는 국민의 생명을 보장하고 국가안보를 전적으로 책임져야할 국가 지도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정해져 있다. 상대 국가와 선의의 대화를 통해 서로의 군사력을 줄여나가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이데올로기의 경쟁이 치열한 그 시절에 '씨알도 안 먹힐' 이상론이다. 미국과 소련은 일단은 상대국가보다 더 막강한 군사력, 더 끔찍한 핵무기를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내 말 들어!"라는 무력시위를 해야하는 것이다.

  바로 '딱' 그 시절에 미국에선 미소의 핵무기와 그 전략을 다룬 책들이 쏟아졌다. 내용 중에는 이런 것들이 있다.

  미국과 소련은 상대의 핵 전력에 대해 공포를 느낀다. 그리고 자신의 핵무장 능력이 상대보다 우월하다는 확신을 갖지 못한다. 수많은 군사전문가들이 모여 이런 전략을 내놓았다. (물론 심리학자도 포함되었을 것이다!) 핵 무기 개발과 함께 대응무기체제를 개발하자는 것이다. 그게 스탠리 큐블릭 감독의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에 등장한 '둠즈데이 프로젝트'이다. 어느 일방이 핵무기의 공격을 받을때 즉시 반격 핵미사일이 발사된다는 것이다. 이건 일견 아주 간단한 전술이지만 실제 쉽지가 않다. 쉽게 말해 미국에서 날아오는 무엇인가가 핵무기인지 풍선인지 어떻게 판단한다는 것인가.

  만약, 미국의 한 사이코 사령관이 핵무기를 실은 폭격기를 소련땅으로 띄운다면? 소련의 핵전폭기가 훈련 중 미국 국경에 잘못 들어간다면? 잘못하여 일반 폭격기를 핵폭격기로 상대가 오인한다면? 소련측에서 핵 전폭기를 몰고 미국측에 귀순이라도 한다면? 등등...

  수많은 돌발변수가 있을 수 밖에. 인간이 저지를수 있는 실수와 경우의 수는 너무나 많다. 미국과 소련의 전략연구가들은 이런 개별적인 사안에 대해 인간의 실수를 몽땅 없앤 (최소화시킨 무기체제를 개발한다는 것이다) 어쨌든 결론은 어느 일방이 미사일을 쏘면 이쪽에서도 자동으로 발사된다는 것이다.

  실제 이런 전략무기가 개발되었다고 한다.

  <페일 세이프>에는 바로 이런 딜레마가 적나라하게 나타난다. 미국의 오마하에 있는 핵전략사령부에서 6대의 핵전폭기가 기지를 발진한다. UFO(비확인비행물체)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그것은 소련에서 발진한 핵전략폭격기'일지도 모른다'. 미국측에서는 즉시 대응 핵 전폭기를 소련을 향해 발진시킨다. 이럴 경우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그 UFO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문제는 미국에서 발진한 핵전략폭격기이다. 만약 "아, 귀환하라! 그 UFO는 민간항공기였다!"라는 무선을 보내었지만 그 무선이 접수가 안된다면.. (영화에선 소련의 무선전파방해에 의해 문제가 발생한다!) 이쯤되면 핵전폭기 조종사는 이미 자기의 조국 미국이 소련의 핵폭격으로 지옥이 되었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아주 오래 전에 정해졌을 자신의 임무대로 그냥 소련으로 침공하여 목적지 모스크바에 20톤짜리 핵폭탄을 쏟아붓는 것이다.

  이 영화는 이런 끔찍한 시나리오에 따라 진행된다. 미 백악관 지하 수백미터 벙크에 있는 미국 대통령과 네브라스카의 오마하에 위치한 핵전략사령부의 군 수뇌부들은 백방으로 노력한다. 우선은 이미 발진한 핵전략 폭격기를 돌려놓기 위해 절망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또 한쪽으로는 소련 서기장과 연결된 핫라인을 통해 "이건 실수다. 의도된 공격이 아니다. 제발 우리 폭격기를 격추시켜달라!"고 매달린다.

  소련측에서는 악몽같은 순간이다. 전투기와 대공미사일이 6대의 미국 핵 폭격기를 격추시키려고 하지만 6대 모두를 방어하기는 쉽지가 않을 것이다. 단 한대만이라도 모스크바 하늘에 도착하면 그 날로 지구는 종말일 것이니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상황이 이쯤되면 미국과 소련의 강경파들은 최악의 선택을 하라고 그들의 최고 군통수권자를 부추긴다. 월터 매튜가 연기하는 미국의 국방성의 고문교수가 대표적이다. "공산주의를 깡끄리 없애버릴 최고의 기회이다. 이왕 이렇게 된것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이번 기회에 소련을 핵으로 박살내버려야한다!"고 말한다. 소련은 소련대로 선제공격 의도와는 상관없이 미국이 쏘았으니 별수 없이 대응 미사일이 날아가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영화는 미국과 소련의 핵전략에서의 딜레마를 박진감있게 다룬다.

  결국 어떻게 되냐고? 이 영화는 아주 끔찍한 시나리오를 보여준다. 미국 대통령이 아무리 최선의 호의를 보여주더라도 소련의 초고강도 군부를 납득시킬수는 없을 것이다. 영화는 미국 대통령의 차선의 선택을 보여준다. 그는 또다른 미국 핵전폭기를 뉴욕으로 발진시킨다. 모스크바에 핵이 떨어지는 순간 뉴욕에도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왜 그런 결정을 내리는지는 짐작이 간다. 만약 미국이 도시 하나를 희생하지 않는다면 소련은 모스크바가 사라지는 순간 미국 전 지역에 핵 미사일을 마구 발사할 것이고, 미국은 또다시 소련 전역으로 마구 발사시킬 것이니....)




  이 영화 마지막에는 이런 자막이 뜬다. "미국 국방성과 공군은 영화에서 묘사된 상황이 결코 발생할 수 없다고 언급했다."라고. 

  이 영화는 큐블릭의 풍자로 가득찬 블랙코미디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와 같은 해에 개봉되었었다. 큐블릭 작품은 오늘날까지 걸작 중의 걸작으로 찬양받고 있다. 시드니 루멧 감독이라는 또다른 명장이 만든 <페일 세이프>는 그다지 평가를 받지 못했다. 하지만, 미국 영화에서 보기 드문 우울한 전쟁영화라는 측면에선 이 영화도 무시할 순 없는 작품이다. 영화에서 추산하기로는 모스크바에서 400만, 뉴욕에서 500만 명이 죽을 것이라고 한다. 

  참, 원제목 '페일 세이프'(Fail-Safe)는 '구멍뚫린 안보'라는 의미가 아니라 다른 의미가 있다고 한다. 미소간의 핵공격이 현실화 되었을 경우, 전략폭격기는 어떤 '라인'을 넘는 순간 그 후 어떠한 무선명령이 떨어지더라도 그것은 적국의 교란신호이며, 비명령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따라서 조종사는 무조건 처음 입력된 목표지점으로 날아간다는 것이다. 바로 그 지점이 '페일세이프'란다.

  끔찍한 내용이지만 흥미로운 설정이다. <공동경비구역>에서의 오발사고가 남과 북의 엄청난 무력 충돌로 비화하지 않은 것이 다행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와 함께 군부의 매파가 만약 그런 실수나 착오를 빌미로 전쟁으로 비화시킬 가능성이 항상 존재한다는 것이 현대의 국가관계의 딜레머인 것이다. (박재환 2003/3/14)
 

 Fail-Safe (1964)
 감독: 시드니 루멧 (Sidney Lumet)
 출연: 헨리 폰다, 댄 오헐리히, 월터 매튜, 프랭크 오버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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