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허(25)] 영화사에 남을 스펙터클

2008. 2. 19. 20:45미국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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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ed by 박재환 2002-4-12]
 
NHK 위성채널 BS2를 통해 1925년판 <벤허>가 방송되었다. 와이프와 함께 잠깐 기억더듬기를 펼쳤다. 내 기억으로는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벤허>를 처음 본 것이 중학교 2학년(81년도) 삼일절날 부산 국도극장이었던 것 같다. 그후, 극장에서 두번인가 더 보았고 TV에서 비디오로, 대만에서 산 DVD타이틀로 다시 보았었다. 내가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벤허>에 집착한 것은 전차경주 장면에서 실수로 경기장 밖의 빨간 색 자동차가 잡혔다는 것을 확인해 보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여태 내 눈에는 그 옥의 티가 잡히지 않았다.

사실 난 영화 <벤허>보다 소설 <벤허>를 먼저 보았다. 내 기억으로는 '계림출판사'에서 나온 문고판으로 읽었었다. 류 윌리스라는 미국 독립전쟁 장군이 쓴 소설로 미국에선 <성경>다음으로 많이 팔렸다는 책이라고 책 서문에 쓰였던 것으로 (20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니. "오 하느님, 내 기억이 정말입니까!"

(아래 루 윌리스 관련해서 다음 글을 일단 읽어보세요. 시간나면 한번 찾아보고 수정해야겠네요. 2009-11-11)

루 윌리스 (루이스 윌리스)는 미국 인디애너 출신으로 남북전쟁에 참전하여 무공을 떨쳤고 나중에 멕시코 총독과 외교사절을 지냈다. 그가<벤허>를 집필한 것에 대해서는 전설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 자신이 무신론자이고 성경내용을 철저히 믿지 못할 것이라고 곧잘 이야기한 모양인데 군에 있을때 예수의 생애에 대해 한번 써 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의를 받은 모양이었다. 그는 저널리스틱한 생각으로 예수의 허상에대해 파헤칠 요량으로 집필을 시작했는데 그만 소설을 쓰다가 하느님의 환상을 만나고 성령에 충만되어 작품을 끝내고 말았다. 얼마나 극적인가. 어쨌든 로마의 압정에 시달리는 예쑤으이 벤허 가문의 이야기를 통해 예수의 사랑과 인류의 박애정신이 가득한 문학작품을 완성시킨 것이다. 그때가 바로 1880년. 그리고 이 영화는 연극무대에 올려졌다고 한다. (IMDB자료에 따르면) 1907년에 15분 길이의 무성 흑백영화가 처음 만들어졌고 1925년에 다시 한 차례 무성영화로 리메이크 되었다. 물론,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아카데미 11개부문 수상대작 <벤허>는 1959년도 작품이다.

우선, 1925년도 <벤허>를 보면 제일 먼저 떠오른 작품이 바로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타이타닉>일 것이다. 역시 아카데미 11개 부문을 수상하고 시상식장에서 호기롭게 나는 세상의 왕이라고 의기양양해하던 제임스 카메론 감독. 영화 테크놀로지를 한단계 끌어올렸다는 평가를받은 <타이타닉>도 몇 차례나 리메이크되었었다. 그 중 1957년도 작품 <타이타닉호의 비극>(A Night to Remember)을 본 사람은 그 작품이 제임스 카메론 작품과 그다지 큰 차이가 없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좀더 스케일이 크졌고 디테일한 면이 강조되엇고, 무엇보다도 디카프리오의 스타성과CG의 휘황찬란함이 영화를 살려주었다는 느낌이 들 것이다. 25년작 벤허를 보고나면 59년작 <벤허>에 대해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흑백이 칼라가 되었고, 무성이 유성이 되었다는 것이 영화를 생동감있게 만들었다는 인지감각의 폭만을 확대시켰다는 것이다.

이 영화가 흑백이었다고 했지만 IMDB자료에 따르면 흑백과 함께 2-strip Technicolor라는 컬러 기술이 부분적으로 쓰였다. 러닝타임이 143분이나 된다. 아마, 이 영화보다 10년 전에 헐리우드가 만든 스펙터클 영화<Intolerance>나 <국가의 탄생> 같은 작품을 인내심을 갖고 지켜본 영화학도라면 이 영화가 이루어놓은 업적의 위대함에 충분히 공감할 것이다.

2-strip Technicolor라고 했는데.. 기술적인 문제는 나도 잘 모르고... (여기 리뷰 올렸으니 어디 다른 사이트나 잡지에서 설명해주겠지^^) 필름으로 영화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컬러가 도입된 것은 어느날 갑자기 생겨난 일은 아니다. 이미 오래전부터 흑백필름에 수작업으로 색깔을 덧칠하는 기법이 사용되었다. 이른바 Tinting리라는 이러한 방식은 1890년대 영사기를 발명했던 발명왕 에디슨도 써먹었던 수법이고 초창기 영화에 다수 등장하던 기술이었다. 1918년경에 미국의 '테크니컬러 모션픽쳐'라는 회사에서는 최초의 색채 영화기법을 만들어내었다. 이때 선보인 것은 2색. 이 기술로 22년에 <THE TORRENT OF THE SEAS>라는 영화사에 남은 첫번째 테트니칼라영화를 찍었다. <벤허>도 이 기술로 만든 영화. 실제 143분에서 컬러로 제작된 부분은 몇 분 되지 않는다. 벤허가 해전에서 사령관을 구한 덕분에 노예신분에서 다시 귀족의 양아들로 귀환하는 장면에서 부분적으로 쓰였다.



59년 <벤허>가 그러했듯이 이 영화에서도 굉장한 볼거리는 역시 해전(海戰)장면과 전차경주 장면. 두 장면 다 영화사에 남을 명장면이고 아직도 인구에 회자될만큼 이야기거리를 많이 만들어내었다. 당시 MGM영화사는 당시로서는 최고의 기록인 390만달러를 쏟아부었다. 이태리에서 촬영된 해전장면에서는 한번에 48대의 카메라가 동원되기도 했다고. 해전장면 촬영 중 엑스트라의 익사사고가 있었다고도 하지만 확인 불능. 하지만, 전차 경주 촬영장면에서는 실제로 스턴트맨이 사고로 죽기도 했다고 한다. 미국에서 보충촬영을 할때 크게 다친 사람은 없지만 말들이 여러 필 죽는 사고가 있었다고 한다. 1925년에 만들어진 것을 염두에 두더라도 이 두 장면의 스펙터클은 지금 관객이 보기에도 충분히 감탄할 만하다. 갈리선의 노를 젓는 노예들. 해적선이 등장. 뱃머리를 쳐박고 육박전을 벌인다. 이때 해적들이 로마군인의 목을 베어 칼 끝에 꽂고 휘두르는 장면도 있다. (하나 더 추가하면, 갈리선에서는 남성의 전신누드(비록 뒷모습이지만) 장면도 있고, 토플리스 차림의 여자도 있다. 1925년에 만들어진 영화에서 말이다!

특히 전차경주 장면은 59년작 <벤허>에 전혀 뒤지지 않는다. 일부는 윌리엄 와일러가 25년 작품을 그대로 답습했다고까지 말한다. 물론, 이 당시 영화가 모두 그러하듯이 배우들의 연기를 오늘날의 잣대로 볼 수는 없다. 하지만 벤허와 메살라의 불꽃 튀는 대결 구도를 충분히 느낄 수 있고 벤허에게 물을 떠다주는 예수의 인자함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이 영화에서 예수의 얼굴은 한번도 정면으로 보여주지는 않는다.

아카데미 영화제는 1927년에 시작되었었다. 만약 아카데미가 일찍 시작되었더라면 이 <벤허>또한 굉장히 많은 상을 받았으리라. (박재환 2002/4/12)
 

Ben-Hur (1925)
감독: J.J. Cohn & Fred Niblo 
주연:Ramon Novarro(벤허), Francis X. Bushman(멧살라), May McAvoy(에스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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