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홀랜드 드라이브] All about Betty (데이비드 린치 감독,Mulholland Drive 2001)

2008. 2. 19. 21:31미국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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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환 2003.6.10.) 시간이 있어 멍하니 영화만 쳐다보고 있을 때, 왠지 조금은 지적인 유희를 즐기고 싶을 때, 적당히 복잡하고 적당히 환상적인 영화를 보고 싶을 때, 데이빗 린치 감독의 작품을 보는 것은 좋은 방법이다. 사실, 그의 영화는 보다가 잠들어도 좋고, 깨어나서 다시 봐도 이해하기 힘들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이해 안 되는 장면에 대해서는 인터넷 게시판 여기저기 둘러보면 ", 그런 심오한 뜻이~" 라는 뜻밖의 기쁨을 찾게 될지도 모른다. 이 영화는 바로 그런 사람을 위한 영화이다.

 

영화는 어떻게든 관련이 있는 두 여자가, 어떻게 하다 보니 철천지원수가 되어 살인청부를 하게 되고, 그 죄책감, 혹은 좌절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잔뜩 마약에 취해 몽롱한 상태에서 "아니,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야? 새로 시작하고 싶어..."라는 심정으로 자신의 과거를 재조립한다는 것이다. 바로 그렇다. 감독은 한 여인이 죽기 직전-온갖 악몽과 죄책감에 시달려 느닷없이 방아쇠를 당겨 자살할 때까지의 두서없는, 기억의 편린과 그의 순결했던 한 시절을 영화처럼 재편집한다는 것이다.

 

'멀홀랜드 드라이브'는 헐리우드가 위치한 L.A. 산타모니카의 외곽도로이다. 저 멀리 도시의 불빛이 명멸하는 곳에 한 대의 고급 승용차가 멀홀랜드 드라이브 이정표를 지나간다. 한 밤, 인적이 드문 곳에 차가 멈춰서더니 이내 뒷좌석에 앉아있는 여자(로라 헤딩)를 죽이려한다. 이때 젊은 폭주족 차가 이 차를 들이받으며 뜻밖에도 여자는 목숨을 구한다. 하지만 머리를 다친 상태에서 비틀대며 언덕을 내려와서는 어느 집으로 들어가서는 쓰러진다. 그녀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여기 왜 있는지를 기억할 수가 없다. 단지 욕실 벽에 걸려있는 리타 헤이워스의 <길다> 영화포스터를 보고는 자신을 '리타'라고 말할 뿐이다. 이 가련한 여인을 불쌍히 여긴 사람은 캐나다에서 스타의 꿈을 안고 친척 집에 온 베티(나오미 왓츠)이다. 베티는 친절하게도 리타의 기억력을 되살려주기 위해 애쓴다. 그리고 그녀의 기억의 단서를 찾아 시내를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영화는 몇몇 인물의 궤적을 보여준다. 우선 아담 케셔(저스틴 테럭스)감독. 방금 한 여배우를 캐스팅하라는 제작자의 압력을 받아 잔뜩 기분이 상해 집에 돌아왔더니 마누라 아니, 애인이 침대 위에서 딴 남자랑 놀아나고 있잖은가. 게다가 그 집에서 쫓겨나기까지 한다. 이 불쌍한 남자 앞에 카우보이 모자를 쓴 남자가 구원의 손길을 내민다. "오디션에서 무조건 저 여자라고 말 해!" 결국, 이 감독은 마지못해 카밀라 로즈를 자신의 새 영화의 여자 주인공으로 선택한다.

 

몽환 속에서 진행되는 영화는 '기억력을 잃은 리타''청운의 꿈을 안고 헐리우드에 온 베티'가 동성애를 펼치는 장면에서부터 급반전하기 시작한다. 뜨거운 밤을 보낸 두 여자. 새벽 2시에 잠에서 깨어난 리타는 베티와 함께 '살렌시오'라는 극장을 찾는다. 그곳에서 로이 오비슨(혹은 레베카 델 리오)의 몽환적 노래 'Llorando (혹은 Crying)'을 듣게 된다. 여기서 너무나도 '데이빗 린치'적인 몽환의 무대를 보게 된다. 모든 것은 녹음된, (이미 숙명적으로 결정된?) 헐리우드의 가짜 인생이라는 것을 보여줄 뿐이다? 그리고, 집에 돌아온 두 사람. 리타는, 어쩜 베티는, 조그만 '뮤직박스'를 연다. 검은 소용돌이와 함께 대반전이 일어난다.

 

영화를 얼기설기 재조립해 보면, 톱스타 리타(그녀는 '카밀라'였다!)는 애송이 배우 베티(그녀는 '다이안'이었다!)를 자신의 영화에 줄곧 동반출연 시켜온다. 둘은 서로 사랑했으리라. 육체적으로는. 그러다가 리타는 어느 날 아담 케셔 감독과 어울리게 된다. 불쌍한 베티! 아담 케셔는 리타와의 결혼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절망감에 사로잡힌 베티는 리타를 청부살해하기로 한다.

 

아마도, 차를 타고 멀홀랜드 드라이브를 접어들었을 베티는 결국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리타는 죄책감에 혹은, 사랑의 열병에 사로잡혀, 자신이 처음 여기 이 땅 헐리우드에 왔을 때 가졌던 그런 순수한 열정으로 베티를 다시 만나 보게 되기를 원하고 원하고 또 원했는지 모를 일이다. 그런 희망은 베티가 사고로, 기억상실의 상태로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고, 둘은 처음부터 새로운 사랑의 감정을 겪게 되기를 희망했을지 모른다.

 

그렇다고 치자. 그럼 나머지의 모든 의문은? 바보 같은 형사나, 영화판의 무서운 사람들은 누구란 말인가. 그건, 좀 더 시간이 남고, 한가할 때, 이 세상에 더 이상 궁금할 게 없을 때 알아봐도 충분할 듯하다.

 

나오미 왓츠와 로라 헤딩의 뜨거운 정사신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가 충분히 매력적일 것이다. 특히 나오미 왓츠라는 배우에 관심을 갖게 하는 영화이다. (박재환 2003/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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