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스트레인지러브] 운명의 핵

2008. 2. 19. 20:51미국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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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ed by 박재환 2001-7-31]
 
imdb에 따르면 이 영화는 전 세계 네티즌에 의해 10위에 랭크되어있다.(2001년 7월 31일). 이 영화는 1963년에 완성되었지만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 때문에 시사회가 늦춰지고 이듬해 64년 1월 29일에 미국에서 개봉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극장개봉도 안되었지만 큐브릭 감독 사후에, 작년 HBO(당시 캐치원)에서 한 차례 방영한 적이 있다.

요즘(2001년 7월말) 한국을 살아가는 '한' 지성인의 시대적 감각으로 보자면, 현재 지구상의 유일한 '악의 제국'은 MD를 추진하고 있는 미국 뿐인 것 같다. 하지만, 분명 몇 년 전만 해도 지구의 평화를 위협하는 존재는 '제국' 소련과 기타 공산국가들이었다. 그들 공산주의 세력과 민주주의(혹은 자본주의) 국가들은 생사를 건 치열한 싸움을 계속해왔다. 서로에 대해 의심하고 유아적인 경쟁체제를 지속시켜온 것이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당연히 군사노선이다. 핵탄두의 화력은 갈수록 막강해져 갔고, 미사일의 사정거리는 확대되어만간 것이다. 소련이 먼저 우주공간에 위성을 쏘아올린 이래로 두 세력간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고 인류는 더욱 복잡한 사고체계를 가지게 된 것이다. 바로 그러한 경쟁의 격화기인 1960년 초에 상상력 풍부한, 혹은 미래에 대한 예시능력이 뛰어난 학자나 군사전략가들은 아주 쇼킹한 개념을 생각해 낸 것이다. 바로, '둠즈데이' 공포이다. 소련은 미국을 향해 대륙간 탄두 미사일을 장착해두었고, 미국은 소련을 둘러산 채 수많은 전폭기와 핵 미사일을 겨냥해둔 상태이다. 이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어느 한쪽이 공격을 해 오면 당연히 저 쪽에서도 보복공격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전략사령부나 백악관 지하벙커가 공격당하여 보복명령을 내리지 못하게 된다면? 그러한 위협에 맞서 인구가 개발해놓은 것은, 공격을 받으면 자동으로 보복공격하도록 프로그래밍해놓는 둠즈데이 장치인 것이다. 사실일까?

이 영화는 세계적인 거장 스탠리 큐브릭이 63년에 만든 작품이다. 그 전해 말썽 많은 <롤리타>를 만든 그가 관심을 가진 것은 세계의 강대국이 펼치는 어의없는 핵 전력 레이스였다. 미국과 소련뿐만 아니라 나머지 지구 국가들을 수십 차례 파멸시키고도 남을 핵들이 만들어지고, 배치되고, 발사될 준비를 갖춘 것이다. 완벽한 영화만들기의 전형인 큐브릭 감독은 이러한 핵 경쟁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거듭했다.

그가 영화의 교재로 삼은 것은 영국의 공군파일럿이며 작가인 피터 조지가 피터 브라이언트라는 가명으로 영국에서 출판한 <운명의 두 시간>이란 책이었다. 이 책의 내용은 전략공군사령부의 미치광이 사령관 하나가 843연대 폭격기에 소련에 대한 핵공격을 명령한다는 것이다. 러시아에서는 이미 자동으로 작동하는 반격체제가 갖추어져 있었고, 미국과 소련의 핵심 지도자들은 숨막히는 막후 대화를 통해 가까스로 전폭기를 돌려놓고 평화를 유지하게 된다는 것이다. 큐브릭은 이러한 원작을 비극으로 바꾸어놓는다.




영화는 파블슨 공군 기지의 리퍼 장군이 독단적으로 'R작전' 명령을 하달한다. 지금도 그러하겠지만 영화에서 설명되기는 핵폭탄을 잔뜩 실은 미국의 공군 전폭기 B52는 지구 곳곳에서 교대로, 항상 하늘에 떠있다. 그들의 임무는 소련이 선제공격을 해올 경우, 특별명령에 따라, 사전에 지시된 소련의 공격목표물에 핵폭탄을 투하시키는 것이다. R작전은 규정대로 진행된다. 하늘의 B52에 탑승 중인 공군조종사와 승무원들은 캐비넷을 열고 작전지시문을 읽는다. 소련 라퓨타 기지에 핵을 투하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작전의 성공을 위해 사전에 훈련 받은대로 따른다. 적군의 거짓무선을 차단하기 위해 모든 무전기는 특수한 시스템으로 전환된다. 이제 이들은 작전이 바뀌었던 말았던, 미국과 소련의 최고지휘부 사이에 어떠한 거래가 성사되었던 상관없이, 소련영공을 침범하여 라퓨타 기지에 핵만 떨어뜨리면 되는 것이다. 사태는 급박하게 진행된다. 이들 전폭기의 기수를 되돌릴 유일한 암호를 가진 리퍼 장군은 자살해버린다. 미국 대통령은 소련 서기장을 전화로 연결하여 이번 사태가 '순전히 한 정신병자 사령관의 독단적인 지시에 불과했다며 현재 기수를 돌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50여 대의 전폭기는 이미 소련 각지의 군사기지를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소련은 이미 자폭장치(둠스 디바이스)를 완성시켜서 소련이 핵 공격을 받으면 즉각적으로 미국을 향해 핵이 날아가도록 되어 있었다.

영화는 소련의 공격목표물을 향해 날아가는 B52의 장엄한 모습과 국방부 최고작전실의 숨막히는 모습을 교차하여 보여준다. 이 영화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매력적인 것은 캐릭터들의 열연이다. 배우 피터 셀러즈는 혼자서 세 사람의 역할을 한다. 먼저 이 영화제목이기도한 스트레인지러브 박사역, 미국 대통령 멀킨, 그리고 과대망상증 리퍼 사령관의 부관인 맨드레이크 대령 역할이다. 닥터 스트레인지러브는 독일에서 미국으로 넘어온 대통령자문관으로, 세계 파멸을 몇 시간 앞두고 미국대통령에게 핵전략의 복잡성과 향후 대책을 줄기차게 제시한다. 대통령은 이 통제 불능의 순간에서도 끝까지 미국의 전폭기 기수를 돌려놓든가 아니면 소련이 격추시키기를 기대한다. 이 와중에 터지슨 장군(죠지 스코트)는 이왕 이렇게된 바에야 핵 공격으로 소련을 완전히 없애버리자고 주장한다.

세계적으로 핵무기를 가진 나라는 열 나라 가까이 된다. 물론, 미국과 소련 이외의 국가들이 보유하고 있는 핵은 그다지 많지 않다. 하지만 단지, 몇 기의 핵 미사일만 가져도 그들은 인근국이 감히 엿보지 못하는 강대한 전쟁 억지력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실제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북한을 보라! 이 영화는 그러한 전쟁억지력의 논리를 보여준다. 게다가 한 단계 더 나아가, "당신들이 만에 하나 공격해온다면 우리는 생각할 틈도 없이 자동으로 반격 무기가 갖추어져 있다는 것을 명심해라"라고 협박한다. 이것이 둠즈데이 시스템의 핵심이다. 이것은 핵의 균형과 선제공격의 무의미함을 보여준다. 인간의 사고방식을 완전히 얽어매어버린 이러한 핵전략이 실제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1960년대에 양측에서는 심각하게 논의된 것임을 알수 있다.

이 영화와 같이 개봉된 영화가 바로 시드니 루멧 감독의 <Fail-Safe(구멍 뚫린 안보)>라는 영화이다. 하비 휠러와 유진 버딕의 58년 베스트 셀러였던 원작소설은 내용이 <운명의 두 시간>과 너무나 유사하다하여 작가에게 표절로 고소당하기도 했다. 작년 EBS에서 한차례 방영한 적이 있는데, 이 영화의 결말은 더욱 충격적이다. 미국 대통령은 이미 날아간 미국 전폭기 때문에 소련이 보복 공습을 하기 전에 한가지 제안을 한다. "당신들이 핵으로 반격하면 우리도 다시 쏘게 되어 서로 파멸이다. 대신, 우리가 그만큼 죽겠다. 방금 뉴욕에 핵을 투하하라고 명령을 내렸다."라는 것이다. 이 믿지 못할 결과는?

1960년대 이성을 마비시키는 핵전력 경쟁은 풍성한 상상력의 결과물을 양산해낸 셈이다. 우연한 사고와 지휘관의 독단, 혹은 명령의 오판 등은 실제하는 위험일 수도 있을 것이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크림슨 타이드>에서도 비슷한 경우를 보았으니 말이다.

이 영화를 보고나면 참 할말이 많을텐데 그 중의 하나가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남성주의 시각일 것이다. 아니면 영화에서 표현된 여성비하적 마초주의일 것이다. 언제나 성적으로 읽을 수 있는 이름과 상징, 그리고 명백한 대사들이 이 영화를 그렇게 만든다. 하지만, 원래 전쟁과 핵은 그런 마초주의의 산물아닌가?

이 영화는 콜럼비아에서 7월에 발매한 <스탠리 큐브릭 DVD 박스세트>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대신, 1999년에 비디오로 출시되었다.

이 영화는 흑백영화이다.  (박재환 2001/7/31)


 

Dr. Strangelove or: How I Learned to Stop Worrying and Love the Bomb (1964) 
감독: 스탠리 큐블릭
주연: 피터 셀러스, 죠지 C.스콧, 스털링 헤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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