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타닉3D] 100년 전 대서양에서는...

2012. 4. 4. 18:09미국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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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부터 14년 전, 한국의 극장을 물론이고 전 세계 영화계를 완전 석권했던 영화가 있다.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타이타닉>이다. 이미 <어비스>나 <터미네이터2> 등을 만들며 기존 영화의 형식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켰던 그는 <타이타닉>을 통해 영화기술과 대중적 드라마가 이룰 수 있는 최고의 경지를 보여주었다. <타이타닉>은 20세기 들어 실제 발생했던 재난이었으며 오만한 인류과학 기술문명에 큰 교훈을 주었던 사건이었다. 100년 전 그날 밤 대서양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났던가. 그리고 제임스 카메론은 왜 15년이 지난 이 시점에  걸작 중의 걸작이라고 할 수 있는 <타이타닉>을 3D 버전으로 다시 내놓았을까.

세계 최대의 배, 항구를 떠나다

 

 

당대 최고, 최대의 위용을 자랑한 타이타닉은 첫 항해에서 어이없게도 대양을 떠다니는 빙산과의 충돌하며 대서양 차가운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다. 한번 되돌아보자. 1909년부터 3년 동안 북아일랜드 벨파스트의 할란드 앤 울프 조선소에서 건조된 타이타닉 호는 1912년 4월 10일 영국 사우스햄튼에서 처음이자 마지막 항해를 준비한다. 오전 9시30부터 승객들이 탑승하기 시작했다. 부자도 있었고 가난한 사람도 있었다. 각자 미래의 꿈과 희망을 갖고서 이 배에 오른다. 정오 사우스햄튼을 떠나 저녁 무렵 프랑스 쉘부르(Cherbourg)에서 도착하여 승객을 더 태운다. 다음 기착지는 아일랜드의 퀸스타운. 드디어 운명의 날. 4월 11일 오후 1시 30분. 퀸스타운에서 출발한 타이타닉을 최종목적지 미국의 뉴욕을 향한다. 그 때 그 배에는 모두 2,228명이 승선하고 있었다. 이제는 완벽할 것도 같지만 아직도 타이타닉에 정확히 몇 명이 타고 있었는지 의문이다. 구조된 사람 수도 차이가 나고 말이다. 티켓을 구매한 사람과 취소한 사람, 그리고 구조 과정에서의 혼란 등이 뒤엉켜 그렇다.

 

원래 이 배는 3,339명이 탈 수 있도록 설계되었단다. 2439명의 승객(1등석 739명, 2등석 674명, 3등석 1026명)과 , 그 큰 배와 그 많은 승객을 뒷바라지할 승무원 900명이다. 그런데 잘 알려졌다시피 3339명이 탈수 있는 배에 준비된 구명보트는 모두 20척. 승선인원은 1178명이었단다. 절대 가라앉지 않을 배라고 믿었기에!  그런 배에 2,228명이 탑승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배는 나흘을 꼬박 달려 대서양을 횡단하여 뉴욕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당시로서는 유럽에서 미국에 이르는 가장 빠른 방법이 초호화 여객선을 이용하는 방법이었다. 이틀 동안 잔잔한 파도와 좋은 날씨 속에 문제없이 나아갔다.

 

4월 14일. 일요일이었다. 널리 알려졌듯이 타이타닉은 그날 하루에만 인근을 항행하는 배들로부터 모두 7번 빙산을 주의하라는 무선을 접수했다. 마지막 무선은 밤 10시 50분, 캘리포니안 호로부터 받은 것이었다. 빙산에 둘러싸여 멈춰 서있다는 무선을 접수한 것이다. 그리고 얼마 뒤 밤 11시 39분. 20.5.노트로 달리고 있던 타이타닉 전망대의 견시선원 프레드릭 플릿과 레지날드 리가 빙산을 발견했지만 피하지 못하고 배의 측면 부분을 스치고 만다. 치명적인 긁힘이었다. 그렇게 자신만만했던 타이타닉은 허무하게 침몰의 순간을 기다린다. 이 배에는 선박설계사인 토마스 앤드류도 타고 있었다. 그는 이 배가 2시간도 채 못 버틸 것이라고 말한다. 선장은 구조신호를 보내라고 지시한다. 무선사 해롤드 브라이드와 잭 필립스는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필사적으로 CQD(긴급구조) 신호를 보낸다. 그 당시 대서양에는 많은 배들이 떠 있었지만 제 시간에 달려올 만큼의 거리에 있는 배는 없었다. (10여 마일 인근에 있었던 캘리포니안 호와의 교신은 실패로 돌아간다.) 첫 구명보트는 빙하와의 충돌이 있은 뒤 한 시간 남짓 지난 새벽 1시 45분에 바다에 내려진다. 모두 65명이 탈 수 있는 보트였지만 놀랍게도 28명만이 옹기종기 앉았다. 그리고 새벽 2시 5분 마지막 구명보트가 내려간다. 모두 710명이 구명보트에 올랐고, 1,500여 명은 침몰하는 타이타닉에서 아비귀환의 순간을 맞이한다. 구명보트 위에서, 그리고 차가운 바다 위에서 죽음과 사투를 벌일 때 구조신호를 받은 카파티아호가 도착했다. 생존자들은 새벽 3시 30분에 카파티아호가 쏘아올린 조명탄을 보았고 4시 10분 첫 번째 구명보트가 끌어올려진다. 카파티아는 4월 18일 구조한 승객을 태우고 뉴욕 항에 도착했다. 그리고 조난지역 일대에서는 한 달 정도 수색작업이 펼쳐졌는데 인양된 시신은 328구에 그쳤단다.

 

타이타닉의 비극은 독일이 만든 비행선 힌덴부르그호의 최후와 함께 인간의 오만함이 빚은 드라마로 기억된다. 타이타닉 이야기는 이미 몇 차례 영화로 만들어졌고 제임스 카메론 이후에도 만들어졌다. 그만큼 침몰사건이 지닌 함의가 대단했기 때문이리다.

 

3D로 보는 타이타닉

제임스 카메론의 <타이타닉>은 필름으로 찍은 작품이다. 카메론 감독은 3D 버전으로 컨버팅하기 위해 기존 필름영상을 디지털로 변화시키는 작업을 했다. 3D작업에만 200억 원이 들었단다. 이미 3D의 최고봉 소리를 듣는 <아바타>를 만든 감독의 솜씨답게 <타이타닉>의 3D 컨버팅 결과물은 최고수준일 것이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타이타닉 자체의 드라마에 빠져 3D기술을 망각하게 된다. 실제 거대한 배가 망망대해를 항해할 때나 디카프리오가 흥분에 겨워 “나는 세상의 왕이다!”라고 부르짖는 장면을 볼 때에도 이 영화가 3D라는 사실을 잊게 된다. 관객이 굳이 3D를 확인하려고 안경을 들어 올렸다 놓았다 하는 순간은 아마도 타이타닉이 침몰하는 마지막 순간일 것이다. 프로펠러가 한번 하늘높이 치솟아 오르더니 검은 바다 위로 풍덩 빠져드는 순간. 그제야  3D변환임을 인식하게 될 것이다 이게 3D기량의 향상인지 3D의 한계인지 알 수 없다. 확실한 것은 <타이타닉> 영화의 흡입도이다. 관객은 3D임을 잊어버릴 만큼 본 영화에 빠져드는 것이다. 여전히!

사람이 타고 있었다!

 

영화에는 대양의 심장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찾기 위해 나서는 인물이 있다. 그는 오랜 세월을 차가운 바다 속에 처박힌 타이타닉의 잔해에서 보물을 건져내기 위해 과학기술과 시간과 열정을 쏟았지만 할머니의 옛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아, 거기에는 사람이 있었어!”라고 말한다.

 

<타이타닉>이라는 영화가 보여주는 경이로운 기술적 성과에 3D라는 첨단 유행기술까지 결합되었으니 이 영화는 더욱 괴물이 된 셈이다. 그러나 관객들은 여전히 사람의 이야기에 매료된다. 아무리 ‘거대한 배’라지만 요즘 나오는 할리우드 SF에서는 쪽배수준이니깐 말이다. 대신 적어도 2228개의 드라마가 얽히고 설킨 채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타이타닉에 대한 관심은 지금도 계속 된다. 최근 해외뉴스에는 이런 것도 있다. 당시 티켓 가격 3100달러의 1등실 승객의 마지막 오찬 식단 내용을 담은 메뉴가 런던의 한 경매에서 7만 6천 파운드(1억 3760만원)에 낙찰되었다고 한다. 이 메뉴는 당시 타이타닉에 탑승했던 승객이 기념으로 자신의 지갑 속에 보관하였던 것이란다.

 

 

 

사실 타이타닉에 대한 열정은 가라앉는 순간부터 계속되었다. 이미 수많은 르포 기사, 연구서, 음모론이 나왔다. 14년 전 제임스 카메론의 <타이타닉>이 개봉되고 나서 주목을 받은 인물이 있다. 구명 선을 타지 못한 인물 중의 한 사람이다. 인양된 시체들이 대거 묻혀있는 헬리팍스의 묘지에는 'J.Dawson'이라고 쓰여 있다. 그리고 인양했을 때 붙여놓은 시체번호 227번이 묘비명에 새겨져있다. 디카프리오의 극중 이름은 ‘잭 도슨’이었다.  그래서 타이타닉의 운명을 슬퍼하는 사람들과 디카프리오의 극성팬은 J.Dawson의 묘지에 꽃을 갖다 바친다. J.Dawson에 대한 연구도 계속되었다. 타이타닉의 배 밑바닥 기관실에서 활활 타오르는 화로에 열심히 석탄을 퍼 날랐을 승무원 ‘조셉 도슨’리란다. 조셉 도슨 씨는 아마도 배가 침몰할 때 갑판에서, 1등객 선실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전혀 몰랐을 것이다. 갑자기 쏟아지는 차가운 물과 기관실의 뜨거운 불 속에서 운명을 맞았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다이아몬드 목걸이와 디카프리오의 스케치북에만 관심을 쏟았을 때 말이다.

 

<타이타닉 3D>를 극장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은 3D의 대단함을 보는 것이 아니라 타이타닉 영화의 대단함을 스크린에서 한 번 더 볼 수 있다는 기회를 갖는다는 것이다. 디지털 리마스터링으로 되살아난 <타이타닉>을 극장에서 다시 보노라면 14년 전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 넋이 빠져서 놓친 다른 배우의 존재감에 놀라게 된다. 케이트 윈슬렛의 놀라운 연기력을 새삼 실감하게 되는 뒤늦은 발견의 기쁨이다.

 

<타이타닉>을 극장에서 한번 보시길. 3D가 아니더라도 지난 10년 동안 우리나라 극장시설이 얼마나 훌륭해졌는지 알게 될 것이다. 더불어 그 때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은 세월이 이만큼 흐른 동안 얼마나 더 죽음에 대해 초연해졌고, 얼마나 더 사랑에 대해 숭고해졌을까. 영화가 3D로 진화한만큼 영화 팬 개개인의 인간적 변화도 궁금해진다. (박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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