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2. 27. 09:03ㆍ雜·念
뤽 베송 감독의 영화 <레옹>에서 외톨이 킬러 레옹이 어린 마틸다에게 다리를 절룩거리며 서부사나이 존 웨인 흉내를 내지만 마틸다는 그 ‘전설적 영웅’이 누군지 알아차리지 못하는 장면이 있다. 그 옛날 할리우드 최고의 건맨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다. 서부영화는 그렇게 주류에서 멀어진 것 같다.
서부영화는 미국의 서부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흔히들 말하는 서부개척사라는 것도 알고 보면 콜럼버스 이래로 유럽백인들이 유린한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학살의 성과인 셈이다. 처음엔 서부 해안도시에 자리 잡더니 점차 동쪽으로 자신들의 영역을 넓혀간다.
서부시대는 보통 1860년대 중반 남북전쟁이 끝난 직후부터 19세기 말까지를 다룬다. 노예문제를 둘러싼 남과 북의 대립을 봉합하고는 인디언의 땅을 차지하기 위한 투쟁이 주를 이룬다. 용감한 기병대들이 말을 타고 총을 쏘며 오래 전부터 원래 그 곳에 살던 수많은 인디언 종족들을 내쫓는다. 그리고 그 땅에서 금이 발견되면서 곳곳에 붐업 도시가 들어선다. 그런 곳에는 으레 흥청망청 도박꾼과 뜨내기 악당이 넘쳐나고 살인이 횡행한다.
그런 무질서 속에서 총잡이 보안관에 의한 법질서가 창조되는 것이다. 서부영화는 수많은 인디언의 피와 백인의 오만, 그리고 기병대의 총알로 이루어진 찬란한 금자탑인 셈이다. 빌리 더 키드, 팻 개럿, 와일드 빌 같이 악당과 보안관을 오가며 건맨이 미국식 정의를 만들어간다. 와이어트 어프 같은 총잡이가 보안관이 되면서 궁극적으로 오늘날의 법치주의 미국이 자리 잡은 것이다.
최초의 서부극은 1903년에 만들어진 12분 분량의 흑백무성영화 <대열차강도>이다. 말을 탄 갱단이 열차를 터는 단순한 스토리지만 범죄추적물의 선구이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악당이 총구를 정면으로 들이대며 총을 쏜다. 객석에 앉아있는 관객들은 마치 자기에게 총알이 날아오는 듯 한 스릴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개척민 백인들의 포장마차를 습격하는 나쁜 인디언을 추적하는 기병대의 이야기가 정통적 서부극이다. 이에 반해 자신들의 땅에서 날벼락을 맞게 된 인디언의 운명을 인디언의 관점에서 다룬 작품을 수정주의 서부극이라고 한다. 이탈리아의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은 황량한 모래바람과 함께 이른바 스파게티(혹은 마카로니) 웨스턴을 내놓았다. 서부극은 전광석화 같은 총솜씨를 보여주는 보안관이 악당을 응징한다는 권선징악의 스토리를 담고 있다. 때로는 일확천금을 꿈꾸는 인간의 욕망을 담기도 한다. 그런 이야기는 서부시대 미국을 벗어나서 각국으로 확대된다. <쟝고>가 등장하고, 사무라이 총잡이도 나타난다. 우리나라에선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라는 이른바 만주웨스턴까지 나왔다.
잔인한 서부시대의 보안관의 초상을 보고 싶다면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용서받지 못할 자>가 볼만하다. 서부시대의 수많은 인간군상과 사법 체제가 그럭저럭 수립되는 것을 보려면 미드 <데드우드>를 관람하는 것도 좋다. 아마도 가장 기이한 서부극으로는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의 <엘 토포>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서부극도 있다는 사실에 놀랄 것이다.
그리고 딱 한 편의 서부극만을 보아야한다면 <하이 눈>이다. 악당의 지배하에 놓인 서부시대의 한 마을을 배경으로 불법과 무질서에 타협하는 약자와 마지막까지 보안관 배지의 명예를 걸고 외롭게 싸우는 건맨의 활약상이 멜로 풍으로 펼쳐진다. 질서가 없는 시대에 질서를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그리고 인간사회에 법질서가 정착되는 것이 얼마나 지난한 역사의 과정인지를 이 서부극은 묵묵히 보여준다. (박재환/ 2012.2.24(금) 울산대학보 발송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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