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종소림 음악대전] 중국식 야외공연 (2008.5.2)

2019. 8. 19. 15:22雜·念

[선종소림 음악대전] 중국식 야외공연

 

[붉은 수수밭]의 장예모 감독이 어느 날 [영웅]이라는 무협영화를 들고 나왔을 때, 그리고 [패왕별희]의 진개가 감독이 [무극]이란 판타지 영화를 만들었을 때 한국 관객들은 그 기이한 중국적 허풍과 허장성세에 고개를 갸웃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후 중국에서 만들어지는 이른바 초특급 대작영화들을 두고 중국전문가들은 중국인 특유의 과장미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워낙 넓은 땅덩어리에서 너무 많은 인구가 너무 드라마틱한 왕조변화를 겪다보니 웬만한 과장이나 허풍은 그럴러니 하는 문학적 수용의식 구조를 갖춘 것인지 모른다. 그런 중국이기에 가능한 예술공연 형태가 최근 중국에서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 소림사 사찰로 유명한 중국 하남성의 등봉(登封,덩펑)시에서 행해지는 공연 하나를 소개한다. 바로 <선종소림 음악대전>(禪宗少林 音樂大典)이란 특이한 공연이다.

 

무대가 좁다. 광활한 자연에서...

극장이나 일반적인 야외무대에 설치한 무대/세트에서 펼쳐지는 공연과는 달리 <선종소림 음악대전>은 실제 산수 자연을 배경으로 공연이 이루어진다. 중국에서는 이런 공연은 실경연출극(實景演出劇)이라고 부른다. 몇 년 전 장예모 감독이 총감독을 맡아 중국 계림의 려강(漓江)에서 <인상 유삼저>(印象劉三姐)를 공연하면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판타스틱!”이라는 탄성이 절로 나올 만큼 풍경이 수려한 려강에서 2킬로정도 되는 특설 무대공간을 마련하여 600명 정도의 배우들이 를 하는 것이다. 아니 공연을 하는 것이다. 관객은 강변에 설치된 2,000여 석 규모의 특별관람석에서 한밤의 공연을 보는 것이다. 장예모의 이름 탓인지 공연의 규모 탓인지 <인상 유삼저>공연은 단박에 중국 최고의 공연이 되었다. 그 후 비슷한 스펙의 공연이 잇달아 기획되었다. 그 중 하나가 소림사의 동네 등봉에서 펼쳐지는 <선종소림 음악대전>이라는 실경연출극이다.

 

소림사, 무예 말고 클래식한 공연까지

이미 널리 알려졌듯이 중국 소림사는 단순한 사찰이 아니다. 그렇다고 쿵푸 액션 쇼만 펼치는 곡예단 수준도 아니다. 중국에서도 소림사기업이 IPO를 할 것인지 말 것인지가 언론의 관심을 받을 만큼 방대한 기업체이다. 현재 소림사(절과 그 산하 기업)를 이끄는 사람은 석영신(釋永信) 방장이다. 우리 식으로 이야기하자면 주지 스님이시다. 최근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도 소림사를 찾아 무술공연을 관람했을 만큼 소림사 무술단은 유명하다. 소림사 주위에는 소림사 직영 무술단을 포함하여 그 유명세를 업고 운영되는 수백 개의 무예학교/학원이 있다. 이곳에서 소림무술을 배우는 사람 숫자만도 2만 명이 넘는다. 소림사를 찾은 한국관광객들은 거의 볼거리 수준으로 전락한 소림무술공연을 본다. 소림사는 사찰 관광수입(입장료뿐만 아니라 호텔사업도 한다)뿐만 아니라 공연수입 등도 챙기고 있다. 게다가 최근 중국을 휩쓴 실경연출극에도 뛰어든 것이다.

 

中岳嵩山實景演出 禪宗少林 音樂大典

<선종소림 음악대전>은 돈이 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뛰어드는 중국인의 상술이 유감없이 발휘된 기획 예술공연인 셈이다. 공연은 소림사에서 7킬로 정도 떨어진 한 협곡 (少室山 待仙谷)에서 이루어진다. 정면에 커다란 두 개의 산봉우리가 보이고 그 산봉우리 앞의 광대한 공간이 무대가 된다. 무대는 좌우로 3킬로, 상하 5킬로에 이른다. 제일 높은 무대는 1,400미터에 이른다고 한다. 여기저기 실경(實景) 세트가 들어서 있다. 저 멀리 암자가 보이고, 무술연마 운동장이 보이며, 돌다리가 보인다. 그 넓은 공간 곳곳에서 스님들이 있고, 동자들이 뛰어다닌다. 실제 사찰과 그 사찰 주변의 민간인을 멀리서 그대로 지켜보는 셈이다. 관객들은 이쪽에 세운 거대한 구조물의 객석에 앉아있다. 한번 공연에 2,500명이 앉아서 관람하게 된다. 공연은 매일 저녁 8시에 한 차례씩 이루어진다.

 

소림사의 하루, 소림사의 사계, 소림사의 역사

조명이 꺼지면 오직 물소리, 바람소리, 목탁소리만이 들린다. 그러더니 곧바로 음악과 조명과 특수효과가 뒤섞인 장대한 드라마가 펼쳐지는 것이다. 공연은 다섯 단락으로 나뉘어 진행되는데 실경특성상 대사나 디테일한 묘사는 없는 듯하다. 대신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와 직관적 드라마 전개로 관객의 주의를 사로잡는다. 특히 레이저 쇼인지, 와이어 액션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 높다란 허공에서 펼쳐지는 액션 씬은 찬탄을 불러일으키기에 족하다. 내용은 소림사 승려들이 도를 닦고, 무예를 익히며 국가가 위난에 처했을 때 떨쳐 일어난다는 이야기와 소림사 주변에 사는 목동의 이야기가 적절히 섞인다. 소림승려가 누란지위의 나라를 구한다는 것은 이연걸의 데뷔 영화 <소림사>로 유명한 고사이다.

 

대가들이 만든 대작 볼거리

[선종소림 음악대전][인상 유삼저]를 연출한 중국의 국보급 연출가 매수원(梅帥元,메이슈아이위앤)이 제작, 각본, 연출을 맡았다. 영화 [와호장룡]의 음악을 맡아 아카데미 음악상을 수상한 담순(譚盾,탄둔)이 음악과 예술총감독을 맡았다. 이 들 외에도 이 공연의 제작진은 화려하다. 중국최고의 안무가로 손꼽히는 황두두(黃豆豆)가 그 많은 사람들의 안무를 담당했고, 요즘 중국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대중역사학자 이중천(易中天,리중텐)이 선학(禪學)고문이라는 직함으로 참여했다. 물론 소림사 주지 석영신 방장은 소림문화고문이라는 타이틀로 홍보에 적극 나서고 있다.

 

돈이 되는 종교

사실 종교단체가 이런 공연으로 돈벌이를 한다는 것은 한국인의 관점에선 이해하기 힘든 측면이 있다. 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장사꾼 수완을 타고났다는 중국의 특성을 이해한다면 종교까지 비즈니스 모델로 만들어내는 그들의 능력이 놀라울 뿐이다. 그리고 문화콘텐츠 측면에서 보자면 이들은 정말 사이즈를 가늠할 수 없는 멀티 유즈를 행하고 있는 것이다. 공연은 매일 밤 이루어진다. 올해의 경우 315일부터 1115일까지 매일 계속된다. 거의 맑은 날씨만 기상조건도 소림사가 돈 벌기에는 축복받은 조건인 셈이다. 이 공연에 투자된 돈은 1억 위앤이 넘는다. 작년의 경우 210회 공연에 20여 만 명의 관람객이 모여 1,500만 위앤의 수익을 올렸다고 한다. 소림사가 이런 공연을 펼친 것은 밝은 대낮에는 돈 벌 거리가 많은데 어두워지면 싹 사라지는 관광객을 위해서 만들어낸 관광수익 증대전략이란다. 실제 소림사가 있는 등봉시()에는 소림사말고도 수많은 사찰과 명승지가 있지만 어두워지면 적막강산이 되어버린다. 이제는 밤이고 낮이고 돈벌이에 나서는 중국관광의 힘이 느껴진다.

 

예술적 가치

미국 디즈니랜드에도 해적 쇼가 펼쳐지고, 우리나라 경복궁에서도 때 맞춰 수문장 교체의식 같은 볼거리가 펼쳐진다. [선종소림 음악대전]은 일단 규모의 공연에 압도되는 측면이 있다. 아직은 쌀쌀한 야밤에 중국 산에서 보게 되는 중국식 공연에서 그다지 예술적, 심미적 가치를 뽑아내기에는 힘들다. 하지만 그 적막한 소림사 동네에서 이런 고급스런 대형 고연을 보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다. 선종(禪宗)이 무엇인가. 불립문자(不立文字)의 직감적 종교체험을 말하지 않는가. 역사와 종교를 밑천으로 끝없는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내는 중국의 방식을 엿볼 수 있는 거대한 공연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