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김태호 총리후보가 낙마했다. 40대 기수론으로 호기롭게 출발했다가 결국 높은 도덕적 잣대를 통과하지 못한 셈이다. 다행이다. 앞으론 총리/장관될 사람에게 어떤 기준을 제시한 셈이니 말이다. 그런데는 사실 누가 총리되든 관심 별로 없었다. 전임 정 총리도 그랬듯이 우리나라에선 누가 총리가 되던 대통령제 밑에서 얼굴마담 말고는 무슨 권한이 없는 것 아닌가. 대신, 김태호 후보가 사퇴를 선언한 후 자신의 트위터에 올렸다는 글에 더 관심이 갔다. 그는 자신의 트위터에 이런 글을 남겼다.
“비는 내리고 어머니는 시집가고...”라는 13자를 남겼단다. 이게 웬 봉창 두드리는 소리?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언론에서 주석을 달아주었다.
....... 이는 마오쩌둥 어록에 나오는 `天要下雨 娘要嫁人(천요하우 낭요가인·하늘에서는 비가 내리려 하고 어머니는 시집가고 싶어 하네)`라는 구절을 인용한 것이다. 마오쩌둥이 한때 자신의 후계자로 지명했던 린바오가 쿠데타 모의 발각으로 소련으로 도망쳤다는 보고를 받았을 때 했던 말로 "하늘에서 비를 내리려고 하면 막을 방법이 없고, 홀어머니가 시집을 가겠다고 하면 자식으로서 말릴 수 없다."라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방법이 없다`는 의미로 사용된다.....................
이 신문, 저 매체에 보통 이런 식으로 해설을 덧붙여놓았다. 우와. 굉장히 흥미로운 전고(典故)이다. 그래서 중국 인터넷을 뒤져보았다.
모택동(마오쩌뚱)은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된 이래, 그리고 그 이전 국공투쟁 때부터 중국공산당의 거대한 태양이었다. (뭐..아주 정치적으로 아주 민주화된 우리 식으로 보자면) 장기 일인독재집권을 하던 마오 주석은 말년에 자신의 후계자로 임표(林彪)를 찜해두었다. 모택동이 임표를 아주 신뢰하였던 것은 사실이다. 임표는 여하튼 2인자로 충실하게 일했고 열심히 권력을 챙겨나갔다. 임표는 모택동 밑에서 중공중앙위 부주석, 군사위 부주석으로 최상의 권력을 휘두른다. 그런데 (아직도 미스터리인데...) 임표가 어느 날 짐 싸들고, 가족 이끌고, 비행기 몰고 몽골로 달아난다. (마오가 빨리 안 죽고, 임표는 초조해서... 쿠데타를 꾸미다가 발각되어 야반도주했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 급박한 순간에 김태호 후보가 읊조린 “비는 내리고 어머니는 시집가고...”라는 말이 등장한다.
임표의 딸(林立衡)이 이일을 주은래 총리에게 전보로 알렸고, 주은래가 모 주석에게 보고하니. 모 주석이 “비는 내리고, 엄마는 시집가고, 그놈은 가게 놔둬라..”(天要下雨,娘要嫁人,随他去吧)라고 말했다는 것이 그 하나이다.
임표, 필사의 탈출
1971년 9월 12일 밤. 임표는 군용기 (三叉戟) 256호를 타고는 중국-몽골 국경 쪽으로 급하게 날아갔다. 임표의 비행기는 추락했는데 도망간 이유도 미스터리이고 추락이유도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기름이 떨어져서 추락했다는 말부터 소련기가 격추했다는 이야기까지 다양하다) 중국에서는 이 사건은 구일삼 사건(九一三事件)이라고 부른다. 긴박한 당시를 회고한 중공 고위인사의 회고록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공군작전실에서 주은래 총리가 관제사(?)랑 대화를 나눈다.
주은래: 무전기로 256호와 통화할 수 있나? 그들과 이야기 나눌 수 있나?
관제사: 그들이 들을 수는 있을 것입니다.
주은래: 반경인(潘景寅,조종사가 누구인지 파악된 상태였다)과 말을 하고 싶다. 연결해 봐라
관제사: 무전기는 켜놓았지만 응답은 할 수 없습니다.
주은래: 그럼 256호에 신호를 보내주게. 그들이 회항하길 기대한다고. 베이징 동교나 서교 어느 비행장이라도 괜찮다고. 내가 달려가서 맞을 거라고.
(잠시 후) 관제사: 대답을 않습니다.
비행기는 곧 국경을 넘을 단계이다. 주은래는 급히 상황을 모택동에게 보고한다. 그리고 미사일로 격추할지 여부에 대한 지시를 기다렸다. 당시 전달문건과 이후 이 사건과 관련된 문헌에 모두 기록된 모택동의 최고지시문은 다음과 같았단다.
天要下雨,娘要嫁人,由他去吧!”
(비는 내리려하고, 어머니는 재가하려고 하니. 그가 가도록 두게나)
주은래는 당 중앙을 대표하여 예하 육군부대를 전국의 군사 및 민간 공항에 주둔시키고 어떠한 비행기의 이착륙도 금지시키는 비행금지령을 하달한다. 그리고 간부들에게 에둘러 상황을 통지한다. “려산회의 제1차 전체회의에서 첫 번째 발언을 했던 그 사람이 아내와 아들을 데리고 비행기를 타고 몽골인민공화국으로 향하고 있다.”
다음날 하오 2시, 주은래가 수면을 취할 때 외교부에서 몽골대사관의 전보가 도착한다. 비서가 주 총리를 깨운다. 비서가 전보를 읽는다. 256호기가 13일 새벽 2시 30분 몽골 온도얼칸 부근에서 추락했고, 탑승한 사람 남자 8, 여자 1명이 모두 사망했다는 내용이다. 즉시 모택동에게도 보고된다. 이후 비림비공(임표도 욕하고, 공자도 욕하는...) 운동이 전개되고, 1973년에는 임표가 영원히 공산당 당적에서 제명된다. 모택동 사후, 1981년 임표는 중국최고인민법원에서 반혁명집단의 수괴로 확정된다.
(하늘에 비구름이 가득한 게 비가 내리려고 하는 모양이다) 비가 내릴 계제만 결국 비가 내리게 마련이다. 여인이 시집갈 요량이면 결국 시집가게 되어 있다. 그러니 하게 놔둬라.. 렛잇 비.. 그런 말이다. 여자가 시집간다는 말은 ‘아가씨’가 시집간다는 의미와 ‘어미니’가 ‘재가’한다는 두 가지 뜻이 다 있다. 문맥상 어머니가 수절을 하다가 좋은 사람을 만나 다시 시집간다는 내용이다.
꽤나 흥미로운 권력음모론적 이야기이다. 그런데 모택동은 워낙 중국 사서, 고문에 능해서 그런 상황비유에 능했다. 저 말은 모택동이후 더욱 유명해진 말인데, 원래 있었던 말이다. 중국인터넷을 뒤져보니 이런 고사가 있다.
옛날에 주요종(朱耀宗)이란 서생이 있었는데 아주 총명했단다. 황제 앞에서 치는 전시에서 장원급제했고 생겨먹기도 꽃미남이라 곧바로 부마로 간택되었단다. 금의환향할 제에 황제가 “너 무슨 소원이 있느냐?”그랬더니 주요종은 “우리 홀어머니 어릴 적부터 고생고생 생고생하며 이 아들을 이렇게 잘 키워주셨으니, 홀로 계신 어머니를 위해 열녀문(貞節牌坊) 하나 세워주시면 성은이 망극하나이다...” 뭐 이랬단다. 황제가.. “오냐 그리 하거라..”그랬단다.
그런데. 장원급제하여 금의환향한 아들이 엄마에게 그 이야기를 하니, 엄마가 한다는 말이.. “넌 과부의 고통을 모른다. 독수공방이 얼마나 힘든지. 이제 널 잘 키우고, 어렵게 짝을 만나 새로운 삶을 살련다. 난 재가할 것이다.” 이게 웬 청천벽력같은 소리. 아들이 화들짝 놀란다. “누구랑요?” “너네 선생. 너의 글 선생이랑...”
인품이 고운 어머니는 아들을 잘 건사했고, 아들놈을 어릴 때부터 지켜봤던 은사는 그 어미의 품성에도 감동. 결국 아름다운 러브스토리(?)인데... 어찌 좀 이상하다..
아들 왈,,“아이고 어머니, 절대 안 됩니다. 황상께서 열녀문을 세워주겠다고 약속하셨는데 식언이 되었구려. 이제 우리 모자(母子)는 죽은 목숨입니다..”
(야, 꽤나 드라마틱한 사연이다. <뮬란> 버금가는 서사구조!!!!!!!)
기어이 재가하겠다는 결심을 굳힌 어머니는 치마를 하나 내놓으면서 이런다.
“모든 게 하늘의 뜻이다. 내일 네가 내 대신 이 치마를 깨끗이 씻어라. 그리고 하루낮 하룻밤동안 깨끗이 말려라. 만약 치마가 산뜻하게 마르면 너에게 다시 시집간다는 말은 하지 않겠다. 대신 치마가 다 마르지 않으면 하늘의 뜻이니, 넌 더 이상 날 방해하지 말거랏!”
(이건 뭐, 세탁기도, 건조기도, 기상대도 없는 시절의 이야기이다!)
그 날은 너무나 화창하여 아들은 “이건 이길 수 있는 게임이야”라고 생각하고선 ”그럼, 그럽시다“했다. 근데 누가 알았으리요. 다음 날 폭우가 쏟아지고, 치마는 하루종일 축축했다. 아들은 이게 하늘의 뜻인가보다 싶었다.
어머니 가라사대 “아들아, 하늘에서 비가 내리는 것이나, 꾸냥이 시집을 갈려는 것은 다 하늘의 뜻이다. 하늘의 뜻을 어기지 말지어라.”
아들은 사연을 황상께 고하였고, 황상은 다 듣고선 어지를 내리시길,
“不知者不怪罪,天作之合,由她去吧。”
(모르고 지은 죄를 벌할 수는 없도다. 하늘이 합당하게 처리했을 것이다. 그녀가 하고싶은대로 하도록 하여라)
뭐, 그랬단다.
히야. 김태호 총리후보자, 이런 사연을 다 알고 있었을까. 멋있다. (오잉? 내가 뭔말 하는겨?)
김태호 후보자는 무슨 의미로 저 말을 썼을까. 아마, “그만 두라니 그만둘 수밖에. 어쩔 수 없는 일 아닌가...”란 의미일까.. 아님 황상이 말한 “니가 기억도 못하고, 억울하다고 하니 어쩔 수 없다. 그냥 하고 싶은대로 해라...”일까.
옛날에 ‘자의반타의반/ 몽니’ 같은 언어유희에 탁월했던 김종필 이후 이런 멋진 전고를 쓰는 정치가는 처음 보는 것 같다. 그나저나 모택동 참, 말 멋있게 한다. 우리 정치가도 저런 시적인 감수성과 표현력을 길러야한다니깐. (박재환, 201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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