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법자/아웃로] 팻 개럿과 빌리 더 키드. 혹은 하워드 휴즈와 제인 러셀

2010. 3. 22. 16:15미국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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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에 만들어져서 1943년에서 처음 개봉되었고, 1946년에야 대규모 개봉이 가능했던  웨스턴(서부극) <아웃로>(The Outlaw)는 여러모로 흥미로운 작품이다. 영화 작품도 흥미롭고, 영화제작 뒷이야기도 흥미롭다. 하나씩 짚어보자.

하워드 휴즈, 영화를 만들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에비에이터>는 실존인물 하워드 휴즈의 일대기를 영화로 옮긴 작품이다. 하워드 휴즈는 공구제조상 아버지를 둔 덕분에 운명적으로 제조업의 거물이 될 수 있었다. 그는 아버지 공장을 발판으로 항공기 제조사를 만들었다. 그러나 그의 비범함은 전투기 제조에만 멈추는 것이 아니다. (그는 말년에 라스베가스에 은거했는데, 그는 심야에 자기가 좋아하는 영화를 보기 위해 방송사를 사 버리는 기행의 소유자이다!) 그는 비행기를 만들면서 항공사가 갖고 싶으면 항공사를 인수해 버린다.(TWA) 영화가 좋아 영화사를 차린다. 영화 찍는게 마음에 들지 않자 자기가 그냥 영화감독을 해버린다. 그가 1941년에 만든 영화가 바로 <아웃로>이다. 원래는 걸작 ‘느와르’를 많이 남긴 ‘하워드 혹스’ 감독에게 이 영화를 맡겼는데 2주정도 촬영하다가 그가 나선 것이다. “내가 직접 찍겠다!”고.

 이 영화에는 두 사람의 신인이 등장한다. 남자주인공 ‘빌리 더 키드’ 역에 잭 부어텔과 여자 주인공 리오 역의 제인 러셀이다. 둘 다 하워드 휴즈에게 발탁된 것이다. 하워드 휴즈는 자기 영화에 ‘초짜’ 배우를 캐스팅하여 자기가 찍고 싶은 대로 영화를 찍는다. 왜? 자기는 돈이 많고,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은 맘대로 하고 싶은 사람이니까.

 이 영화는 완성된 이후 몇 년을 창고 신세를 면치 못한다. 당시 미국 메이저 스튜디오 작품을 옭아 메던 헤이즈규약(Hays Code) 때문이었다. 스튜디오의 심의/검열조항이다. 하워드 휴즈가 ‘제인 러셀’을 뽑은 이유는 ‘제인 러셀’의 몸매를 스크린 가득 담고 싶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하워드 혹스 감독을 밀쳐내고 자기가 나선 것도 제인 러셀의 육탄공세(?)를 영화의 전면에 내세우고 싶었기 때문인지 모른다. 여하튼 당시 떠들썩했다. 개봉을 하고 싶으면 심의를 받고, 야한 장면을 잘라내라고 압력을 넣었지만 하워드 휴즈는 “관 둬라. 내 영화 절대 손 못된다..”였다. 그리고 몇 해 뒤 이 영화는 개봉되어 엄청난 성공을 거둔다. 제인 러셀의 가슴이 도대체 어쨌기에. 확인하고픈 영화팬들이 다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떤 영화일까? (제인 러셀 이야기는 뒤로 미루고...)

팻 개럿, 빌리 더 키드, 그리고 닥 할러데이

<와일드 와일드 웨스트>라는 영화도 있었지만 미국역사에 있어서 남북전쟁 당시 즈음하여 반백년 정도 ‘올드 웨스트’의 역사가 있다. 1850년에서 1900년 사이인데 미국이 서부를 개척하고 법제도가 정비되면서 악당과 보안관이 공존(?)하던 시절이다. 마을의 법과 질서는 보안관이 책임지는 시절이다. 악당들은 그들을 피해 총질을 하고, 강도짓을 일삼는다. 보안관은 자경대를 이끌고 그들을 잡아들이고 순회판사는 그들을 교수형 시키는 것이다. 이 시절을 주름잡았던 악당도 많고, 보안관도 많다. 나중에 다 싸구려 소설 주인공이 되고, 영화로 부활한다. 가장 유명했던 총잡이(악당)로는 팻 개럿, 빌리 더 키드, 그리고 닥 할러데이가 있다. 이들 세 명이 이 영화에 나란히 등장한다. (닥 할러데이는 활동무대가 다른데 왜 끼어들었는지 모르겠다. 하워드 휴즈 취향인가?)

팻 개럿 - 빌리 더 키드 - 독 할러데이

 원래 미국 범죄사(史)에 남은 이야기로 따지자면 1850년생 팻 개럿과 1859년생 ‘빌리 더 키드’의 애증(?)의 기록이다. 1881년 7월 14일 밤에 보안관 팻 개럿은 추격 끝에 숨어있던 빌리 더 키드를 찾아내어 사살한다. 이 두 사람의 살벌한 이야기는 샘 페킨퍼 감독의 걸작 웨스턴 <관계의 종말>(Pat Garrett & Billy The Kid,1973)에도 나온다. ‘빌리 더 키드’는 조금은 낭만적 분위기를 자아내는 닉 네임이다. 하지만 이놈도 악당은 악당이다. 그런데 팻 개럿도 보안관으로 전직(?)하기 전에는 악당이었다. 당시 서부의 법률은 개과천선하고, 총 잘 쏘면 마을 사람들에게 의해 ‘보안관’으로 발탁되기도 했다. 팻 개럿은 1880년 11월, 뉴멕시코 링컨 카운티의 보안관(세리프)이 된다. 빌리와 함께 노략질을 한 적이 있기에 빌리를 잡는데 이점이 있다고 본 것이다. (빌리 더 키드는 헨리 맥카티, 윌리엄 보니 등 몇 가지 다른 이름을 갖고 있다) 당시 뉴멕시코 주지사는 루 월레스이다. (남북전쟁 영웅이며, 그 유명한 <벤허>의 원작자이다!) 루 월레스 주지사는 21명을 총으로 쏘아죽인 혐의로 빌리 더 키드의 목에 500달러의 현상금을 걸어놓은 상태였다. 팻 개럿은 추격전을 펼친 끝에 그 해가 가기 전에 빌리 일당을 사살 또는 생포하는데 성공한다. 하지만 1881년 4월, 빌리는 또다시 사람을 죽이고 감옥을 탈출한다. 팻 개럿은 또 다시 빌리를 찾아 나서고 마침내 빌리를 쏘아죽인 것이다. 그런데 한밤에 몰래 무기도 없는, 빌리를 불시에 쏘아죽인 비겁한 보안관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이상한 시대의 낭만적 정의관을 볼 수 있는 해석임)

그럼 독 할러데이는 누군가. 이름은 존 헨리 할러데이인데 의학공부를 좀 했기에  ‘Doc'라는 별명이 붙은 것이다. 독 할러데이는 올드 웨스트 시절에 활약한 치과의사이자, 도박가이자, 총잡이이다. 보안관 와이어트 어프의 친구로 유명하다. 이들은 1881년 10월 26일, 아리조나 툼스톤에서 벌어진 O.K.목장의 결투로 유명한 총잡이들이다. 빌리 더 키드와 팻 개럿의 사정권에는 없는 인물이다. 그런데 좀 찾아보니 조슈아 고든 스커락(Josiah Gordon "Doc" Scurlock)이란 인물도 ’독‘ 네임을 갖고 있다. 이 사람은 팻 개럿이 보안관이 되기 전에 ’deputy sheriff‘로 뉴멕시코 링컨 카운티에서 활약했었단다. 빌리를 잡기도 했었단다.

하워드 휴즈판 무법자

링컨 카운틴의 팻 개럿 보안관 사무실. 방금 마을에 닥 할러데이가 도착했다고 부관이 소식을 전한다. 팻 개럿은 기쁜 마음에 옛 친구 닥 할러데이의 숙소를 찾아간다. 닥 할러데이는 최근 그의 애마(愛馬) 레드를 도난당해서 찾고 있었다. 패럿은 보안관 뱃지를 보여주며 이 동네에서 말썽을 피우지 말라고 일러둔다. 닥의 말은 윌리엄 바니(빌리 더 키드)가 타고 있었고 그도 이 마을에 머물고 있었다. 팻 개럿은 두 사람에게 하루 빨리 이 마을을 떠나라며  말을 듣지 않으면 가두겠다고 으른다. 결국 총질이 있고 빌리는 부상을 입는다. 독은 빌리를 데리고 마을을 떠나 (닥의 애인인) 리오의 집에 머문다. 이곳에서 리오는 자기 오빠를 쏘아죽인 원수 빌리에게 반한다. 이 때문에 닥과 빌리는 또 반목하다. 말 때문에, 여자 때문에. 그런데 빌리는 한차례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독에게 호의를 느낀다. ‘말 하나면 괜찮아. 여잔 필요없어..“라며 떠난다. 팻의 추격은 계속되고, 한때는 모두 악당이었던 세 남자와 애인도 아닌 기이한 한 여자의 이상한 드라마가 계속된다. 결국, 팻과 닥이 총을 뽑아든다. 닥이 먼저 총을 뽑아들지만 팻이 먼저 쏜다. 팻은 닥을 땅에 묻은 뒤 빌리에게 이상한 말을 건넨다. 빌리에게 ‘닥’의 총을 건네주며 자신의 총을 건네달라고 한다. “내가 (이 총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며) 널 죽였다고 말하지. 그럼 넌 이제 쫓겨다닐 필요가 없어. 어딘가에서 평화롭게 정착하고 살아..”라고 말한다. (팻은 닥의 총에서 방아쇠를 제거한 뒤 총을 건네준다) 그리고는 비겁하게도 빌리에게 총을 겨누지만. 이번엔 자기 총이 말을 듣지 않는다. 그사이, 빌리가 다른 총을 뽑아든다. 비참한 팻. 빌리는 팻을 기둥에 묶어두고,, 자신을 지긋이 바라보는 리오를 태우고는 석양 속으로 함께 사라진다. <1881년 7월 13일, 팻 개럿에 사살된 빌리 더 키드 여기 누워있다>라는 팻말을 한번 보여주고.  (그 무덤 속 주인공은 빌리 더 키드가 아니고, 닥 할러데이이다. 물론 실제로는 닥 헐러데이는 그 해 10월 26일  아리조나 O.K.목장에서 죽는다)

영화 뒷이야기


이 영화가 제때에 개봉되지 못한 것은 제인 러셀 때문이다. 엄청난 글래머 여배우였던 제인 러셀은 이 영화에서 엄청난 바스트(38D란다)를 스크린에 들이(?)댄다. 이 영화에서 제인 러셀의 가슴과 관련한 재미난 이야기가 있다. 항공기 설계사이자 사장이자, 감독인 하워드 휴즈는 제인 러셀을 위해 자기 회사 항공기설계사에게 특수 브래지어 제작을 주문한다. 패션의 역사, 브래지어의 발달사에 있어 획기적인 ‘cantilevered bra’ 혹은 ‘steel underwire push-up bra’가 만들어진 것이다. 제인 러셀은 자기를 위해 만든 이 브래지어를 싫어했다고 한다. 여하튼 제인 러셀의 가슴은 이 영화에서 엄청난 효과를 본다. 침대에서 슬리브 차림의 여자가 비슴듬히 누워 카메라를 응시하는 ‘숨막히는 포즈’는 바로 제인 러셀이 이 영화에서 처음으로 보여주었다. “우와. 숨막혀라~” (당시 관객들 반응) 당시 검열조항에서는 제인 러셀도 문제였지만 정의가 정의롭지 못하고, 불의가 제대로 처단되지 못하는 영화내용도 문제가 되었다. 악당 닥 할러데이와 빌리 더 키드는 여유가 있고, 유머가 있는 반면, 보안관 팻 개럿은 신경질적이며 음모나 꾸미는 못난 사내로 등장한다. 악당출신이라는 과거에 짓눌러 산다는 관점에서 보자면 팻 개럿 역을 맡은 토머스 미쳇은 일생일대의 명연기를 해낸 셈이다. 제인 러셀은 가슴 연기와 부담 가는 얼굴 연기가 당시엔 꽤난 혹평을 받았지만 그 이유 때문에 오늘날까지 이 영화 속 연기는 널리, 오랫동안 회자된다. (제인 러셀은 올해 89살 할머니이다.) 빌리 더 키드 역을 맡은 배우는 잭 부어텔(잭 부텔)이다. 제인 러셀과 함께 <아웃로>에서 신인캐스팅된 행운의 사나이이다. 영화에서 여자도, 사랑도, 정의도, 법도 우습게 보이지만, 때로는 쿨하게 여자도 사랑할 줄 아는 ‘시대를 앞서가는’ 남자 캐릭터 역할을 해낸다. 정말 여유 있는 악당 닥 할러데이 연기를 한 배우는 월터 휴스턴이다. 아들이 존 휴스턴 감독이고, 손녀가 여배우 안젤리카 휴스턴이다.

관계의 정립: 70년 후에 보는 <아웃로>

 하워드 휴즈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흥미로워 찾아본 영화이다. <아웃로>는 무법자란 뜻이다. 여기서 무법자는 당연히 살인을 밥 먹던 하고 쫓겨 다니는 빌리 더 키드일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에선 빌리 더 키드를 그렇게 못된 사람으로 묘사하진 않는다. 그 때는 뛰어난 총솜씨를 가진 자만이 살아남는 법이요, 그런 존재가 있어야 마을에 총소리가 나지 않는다는 나름의 룰이 통하던 시절이었다. 이 영화에서는 제인 러셀이라는 뜨거운 여배우를 내세웠지만 정작 남자들은 말과 총, 그리고 우정에 더 기댄다. 그래서 <브로크백 마운틴>에 버금가는 남자들의 우정을 바닥에 깐다. 그들이 담뱃갑을 꺼내어 입술로 한번 침을 묻히고는 불을 붙이는 장면 하나하나가 우아한 제스처인 셈이다. 하워드 휴즈가 영 엉터리가 아니란 것, 아니 꽤나 장르 특성을 잘 살린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나저나 이전엔 TV주말의 명화시간에 서부극 많이 보여주었는데 요즘은 아예 멸종해 버렸다. 웨스턴은 로맨틱한 판타지 무비임에 분명하다. (박재환 2010.3.22)

 


그리고 하워드 휴즈  (Howard Hughes, 1905~197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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