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트 로커] 이 군인, 미쳤다!

2010. 4. 29. 11:15미국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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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트 로커]는 작년 리뷰가 있음 (▶여기) 지난 주말 극장에서 다시 보고, 다시 한번 쿨하게 써 보았음. ^^

최근 들어 미국 아카데미가 변했다. 그동안 아카데미는 할리우드 스타들의 이미지 홍보와  영화 제작사들의 마케팅을 위한 화려한 동네잔치판 정도로 치부되기도 했지만 근년 들어서는 저예산영화, 비주류 영화들에 대한 헌상과 찬사가 계속된다. 지난 4월 열린 8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우수작품상은 <아바타>가 아니라 <허트 로커>에 돌아갔다. 기술적인 경이, 예술적인 성취, 또는 작가주의 양심 등 다양한 기준에서 보아, (대부분 미국 배우, 감독, 스태프 등으로 이루어진) 아카데미 회원들은 3D 볼거리보다는 이라크의 미군들에 대해 냉철한 동정표를 던진 셈이다. 어떤 영화일까. 이 영화가 지난 주 한국에서 개봉되었다.

폭발물 제거팀, 이라크에 가다

 영화가 시작되면 이라크 바그다드에 주둔 중인 폭탄제거반(EOD) 브라보 중대의 일상 업무-위험천만한 폭발물 해체작업을 보여준다. 연락을 받고 달려가니 도로 한 가운데 세워진 자동차. 그 자동차에는 어느 정도의 위력을 가진 얼마만한 폭탄이 숨겨져 있는지 모른다. 그리고 무엇보다 언제 폭발할지 모른다. EOD의 베테랑 요원은 육중한 방호복을 입고 손에는 뺀지(니퍼)를 들고 선을 하나씩 절단하며 해체작업을 시도한다. EOD요원들은 긴장감에 사로잡히지만 멀찍이 이라크 사람들은 무슨 구경거리 난 것처럼 모여들어 지켜본다. 그중에는 핸드폰을 들고 만지작거리는 사람도 있다. 아마 “모하메드, 여기 좀 봐. 양키 놈들이 여기서 폭탄이라도 찾았나 봐.”라고 통화할 수도 있고, 아니면 미군 베테랑이 자동차에 접근했을 때, 아니면 구경꾼들이 떼로 몰려들 때 핸드폰으로 원격조종하여 폭발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 그런 일이 많다. EOD 분대장이 해체작업을 할 동안, 또 다른 요원들은 주위를 경계한다. 이라크 구경꾼 중에는 비디오촬영을 하는 사람도 있다. 여기서 신경이 곤두선 미군이 그 ‘놈’을 로드니 킹처럼 만들어버린다면 그 장면은 고스란히 유튜브에 ‘미군의 만행’이라는 제목으로 뜰 것이다. 사원 첨탑에서는 테러리스트일지도 모른 사람들이 뭔가를 지시하는 것도 같다. 이 상황에서 어떤 장치인지는 몰라도 그 폭탄을 작동되고 만다. 두터운 방호벽을 입었던 해체요원은 급하게 뒤돌아서 달아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 지상의 소음이 완전히 사라진 듯 한 공백의 순간에 버섯구름의 핵폭발 장면보다 더 우아한 폭발의 비극이 발생한다. 엄청난 폭발은 결국 EOD 분대장 한 사람만 희생된다. 그리고 그 빈자리엔 또 다른 미군  폭발물해체전문가가 보충된다. 이번에 새로 보충된 사람은 윌리엄 제임스 중사(제레미 레너). 폭발물 해체만 800여 차례 성공시킨 베테랑 중의 베테랑이다. 그런데 이 사람은 폭탄의 위험을 희롱하는, 그런 특이한 모습을 보여준다. 과연 그가 이라크 바그라드의 모든 폭발물을 해체할 수 있을까. 아니, 살아남을 수나 있을까. 그의 바그다드에 있을 동안 말이다.

그가 이라크에 있는 이유는?
 
영화는 이라크 바그라드에 주둔하고 있는 폭탄해체반의 일상을 담고 있다. 이들 EOD팀은 (그리고 아마도 이라크 주둔 미군들은) 미군의 전 지구적 파견 시스템에 따라 1년간 바그라드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래서 EOD팀이 작전에 출동할 때는 항상 [로테이션 며칠 전]이라는 자막이 나온다. <플래툰>에서 베트남 파견 미군들이 제대일(귀국일)을 학수고대하듯이 말이다. 이 지긋지긋한 지옥을 벗어나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 윌리엄 중사는 그런 죽음의 유희를 은근히 즐기는 것이다.

전쟁영화의 진화, 전쟁명분의 진화

이라크가 생지옥(그것이 생지옥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면)이 된 것은 911테러와 부시 미국대통령의 전격적인 이라크 침공의 후폭풍일 것이다. 이라크에서 후세인은 제거되었지만 이라크는 여전히 초특급 위험지역이다. 미국과 이라크(지금 이라크의 정치체제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는 여전히 이 지역의 안정을 위해 더 많은 총을 쏟아 붓고, 더 많은 피를 요구하고 있다. 그 전쟁터 한복판에 미군이 총을 들고 서 있다.

일반적인 전쟁영화는 애국심과 전우애에 초점을 맞춘다. 이데올로기, 혹은 국가의 이익을 위해 일방의 영웅주의와 일방의 죄악을 강조한다. 그 과정에서 빗발치듯 쏟아지는 총알을 무릅쓰고 쓰러진 동료를 구해오는 감동이 더해지는 것이다. 물론, 그런 허망한 죽음과 비이성적 상관의 명령에 대한 영화도 많다. 이른바 반전영화로 분류된다. 그럼 <허트 로커>는 무엇인가. <허트 로커>는 성조기에 대한 열정도, 미국에 대한 충성심도, 이라크에 대한 동정도 없다. EOD요원의 일상이란 것은 오늘 기어코 살아남아, 내일 또다시 폭탄을 만지고, 장비를 수습하고, 막사도 돌아와서 술 마시고 곯아떨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날짜를 채우면 “지긋지긋한 이라크여, 아듀~”하며 고국으로 돌아가면 되는 것이다. EOD를 타깃으로 하는 저격병도 없고, 막사에 떨어지는 로켓공격도 없다. 그러나, 전쟁터는 언제 폭탄이 떨어지고 언제 옆에서 총알이 날아올지 모를 일이다.

이 영화를 만든 감독은 캐스린 비글로이다. <아바타>의 제임스 카메론의 전처로 더 유명한 영화감독이다. 캐스린 비글로 감독의 전작들(폭풍 속으로, 스트레인지 데이즈, K-19)을 보았다면 그녀의 작품세계를 짐작할 것이다. 우선은 폭발적인 흥행성공은 없다. 아니 거의 실패에 가깝다. 하지만 묘한 매력이 있다. 마치 <허트 로커>가 기존의 전쟁영화와 다른 스릴러로 흡입력을 보여주듯이 말이다. 캐스린 비글로는 이라크에 대한 미국정부의 제국주의적 주둔을 나무라지도, 군인들의 애국심 결여를 탓하지도, 이라크인들의 무책임성도 따지지 않는다. 단지 그 시간에, 그 곳에는 무슨 이유인지 모르지만 폭탄이 설치되어 있고, 누군가가 무슨 이유인지 목숨을 아끼지 않고 해체작업을 한다는 것이다. 만약, 그 군인이 죽으면, 그리고 현장에 기자가 있었다면 그 군인은 애국적 영웅으로 미화되든지, 개죽음으로 비아냥거림의 대상으로 전락해버릴 것이다. 어떤 경우든 군인은 죽고 사건은 뉴스거리로 박제가 되는 것이다. 그리곤 잊혀질 것이다. 다음 날엔 또 다른 해체팀 대원이 투입되어 달력날짜를 계산하고 있을 것이다.

허트 로커, 극장에서도 한번 보시라

아카데미가 변했다고 하지만 그 대가 역시 ‘산업적’이다. 미국 내에서도 아카데미 시상식 TV시청률은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고, 수상작, 혹은 후보작이라고 해서 이전처럼 흥행에 절대적인 플러스가 되는 것도 아니다. 그냥 많은 상 중의 하나가 된 셈이다. 아카데미를 믿을 것은 없지만, 아카데미 이름으로 극장으로 가서 볼만하다. 이 영화는 이미 개봉 전에 불법 동영상이 꽤 유포된 상태이지만, 극장에서 볼만하다. 특히 초고속 팬텀카메라로 잡아내었다는 폭발의 순간 말이다.

천안함에서 산화한 46명의 젊은 대한민국 군인들에게 다시 한 번 명복을 빈다.  (박재환 201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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