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사메무쵸] 낙지와 1억 원의 유혹 (전윤수 감독 Kiss Me Much, 2001)

2008. 2. 18. 21:17한국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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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환 2001/8/19) IMF는 우리 국민에게 엄청난 문화충격을 주었고 사회의 제반 현상에 대한 시각교정을 강요했다. 얼마 전 TV의 한 시사프로그램에서는 우리나라 주부가 매춘전선에 뛰어들었다는 내용을 보도한 적이 있다. 치솟는 사교육비, 남편의 실직, 여성취업의 한계 등으로 젊은 주부들이 갈 수 있는 곳은 노래방과 전화방, 그리고 은밀한 매춘업이라는 것이었다. 그리곤 이 리포터는 그러한 주부들을 모자이크 처리하고선 한다는 말이 “손쉽게 돈을 벌려는 여성주부가 많은 것이 안타깝다”였다. 아마도 그 프로를 본 사람들 중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시각에 불만을 나타내었을 것이다. 세상에 행복한 가정을 꾸려나가던 우리나라 표준 주부 중에 누가 ‘외간 남자와의 섹스’가 좋아서, ‘돈’에 환장하여 밤거리로 나선단 말인가.

<베사메무쵸>는 그러한 시대적 사회상을 그대로 담고 있다. 전광렬과 이미숙 부부는 네 명의 아이들과 작은 아파트에서이지만 오손도손 부대끼며 ‘IMF’한파 속에서도 행복하게 살아간다. 증권회사 직원 전광렬은, 어느 날 상사의 ‘작전’지시를 거부했다는 이유로 해고당한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친구의 보증을 잘못 섰다가 어렵게 장만한 그들의 보금자리인 18평 아파트까지 압류 당하게 된다. 한 달 내에 1억 2천여만원의 보증금을 변제해야 아파트에서 그나마 행복을 영유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우선, 적금과 통장을 깬다. 하지만 1억 원이라는 돈은 표준시민이라면, 그리고, 증권회사에서 정직한 생활만하다 쫓겨난 가장에게는 한 달 내에 구할 수 없는 거액이란 것을 실감할 뿐이다.

세 명의 친자식과 죽은 형님의 아들, 이렇게 네 명의 자식을 키우던 이들 중년 부부가 1억 원을 어떻게 장만하느냐가 이 영화의 핵심관건이다. IMF한파 이후, 그리고 보증 잘못 섰던 많은 가장들때문에 한국의 많은 ‘가족’단위가 자신들의 집에서 쫓겨나서 지하단칸방에서 하향된 삶을 살게된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은 가족해체의 불행을 겪게 되고 말이다. 여기서 이들 가족은 죽어도 그 아파트를 떠나기 싫어하면서 이야기는 거칠어진다. 이미숙은 남편에게 절규한다. “이 집에서 못 나간다. 어떻게 얻은 집인데. 우리 첫째가 단칸방에서 죽어갈 때, 그 애가 폐결핵인줄도 모르고 먼지 풀풀 날리며 재봉틀을 돌렸단 말이다.” 사실, 딸 아이 하나는 연신 쿨룩댄다. 그 딸애가 갑자기 입원하자 이미숙이 생각해낸 유일한 방도는 자신의 신장을 팔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내 사기단에 검사비 명목으로 돈을 날리고 만다. 그 돈은 마지막까지 지키려고 했던 아이들의 교육보험을 만기 한 달을 앞두고 깨어버렸는데 말이다.

기한은 다가오고 이들 부부는 각자 위험한 도박에 빠져든다. 가장은 옛 동료에게 매달리다시피하여 정보를 얻어 ‘작전’에 나선다. 그러다가 고객 아내의 육탄공세를 받아야한다. 자신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 그는 몸을 팔아야할 정도가 된 것이다. 아내는 어느 날 ‘장학금 3억원 기부’라는 기사를 보고 벤처업계에서 큰 성공을 거둔 그 선배를 찾아가고, 그 선배는 친절하게도 돈 봉투를 내밀며 “나 3년이나 널 쫓아다녔어.”하며 하룻밤 같이 보내줄 것을 요구한다.

남편과 아내는 서로에게 입을 다물고 있지만 관객들은 이들의 선택에 대해 복잡하고도 착잡한 생각을 갖게 된다. 단 하룻밤, 남편이 아닌 남자와, 아내가 아닌 여자와 동침을 하여, ‘가족’이 계속 행복해할 아파트를 건질 수 있다면 우리는 그들의 ‘선택’을 눈감아 줄것인가. 회사에서 쫓겨날만큼 정직하던 남편이 하루아침에 바뀐 것도, 선배의 유혹에 두 번씩이나 갈등을 겪어야하는 아내도 결국 2001년 한국경제의 우울한 자화상인 셈이다.

아내가 어느 날 아직 어린 아들을 붙잡고 흐느끼며 자신의 과거를 이야기한다. “어릴 때 엄마를 무척 좋아했지.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시장에서 엄마를 봤어. 달려갈까 하다가 이내 숨어버렸어. 엄마는 그때 낙지를 훔치고 있었던 거야. 그날 밤 밥상에는 낙지가 올라왔었어. 난 그 낙지를 먹지 않았어. 이제 그 엄마를 이해할 것 같아.” 이미숙은 가난이라는 굴레를 너무나 잘 알고, 아파트에서 단칸방으로 떨어지는 사회의 신분 하락의 종말을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되냐고? 남편과 아내가 서로의 노력이라는 과정을 알게 된다면? 그리고, 그들이 아파트에서 계속 살 수 있게 되었을 때 상대방에 대해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될지는 관객은 모두 알고 있다. 남편은 냉면집에서 아내와 마주앉아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무덤에 갈 때까지 비밀로 했어야지….”

이 영화의 감독 전윤수는 뜻밖에도 31살의 신인감독이다. 정말 뛰어난 연기자라는 것을 실감하게 되는 이미숙은 올해 이미 41살이다. 여배우 조로현상을 보이는 충무로에서 이미숙의 존재가 유별난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그녀가 자기의 집을 지키기 위해 내리는 선택이 결코 도덕적이지 못하지만 그녀에게 결코 돌멩이를 던질 수 없는 것은 현실이 그만큼 비참하기 때문일 것이다. MBC-TV <허준>으로 스타 대열에 올라선 전광렬의 연기는 그 고급 양복 모델같은 이미지 때문에 때로는 영화가 아니라 ‘TV스페셜 드라마’라는 느낌을 들게 할 때도 있지만 오랜만에 신선한 배우를 만나게된 것 같다. 또한 이 영화에서 아역배우 네 명의 연기도 훌륭했다.

영화가 전체적으로 평이하고 소재의 파격성에 비해 관객에게 그다지 심각한 메시지를 전달해주지 못했다는 평이다. 널리 알려진 ‘1억 원의 유혹’같은 선정적인 요인에 대한 캐릭터의 갈등이 너무나 안이하다는 것이다. 현실은 훨씬 냉정하며, 냉혹하며, 비관적일텐데 말이다. 이 영화에선 단지 ‘1억 원’의 고통에 쉽게 무릎 꿇고, 너무 쉽게 평안을 찾는다는 그러한 TV드라마적 수준이라는 것이다. 참, 이미숙의 86년작 <뽕>을 어제 비디오로 다시 보았다. 그 영화에서 이미숙은 팔도방방곡곡을 나돌아 다니는 남편 둔 덕분에 쌀 두 말에, 뽕잎 한 가마에, 몸을 파는 여인네 연기를 기막히게 해내었다. 사실, <뽕>이 더 재미있다.


감독: 전윤수 출연: 이미숙, 전광렬,한명구,홍승희,백성현,조원희, 한국개봉: 200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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