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곽경택 감독의 동년왕사 (곽경택 감독,2001)

2008. 2. 18. 22:09한국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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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환 2001/3/18) 대만의 후샤오시엔(侯孝賢) 감독이 만든 일련의 영화나 양덕창 감독의 <고령가 소년살인사건>을 보면, 대만사회의 밑바닥 인생, 암흑가 똘마니들의 이야기를 볼 수 있다. 그들 청소년들이 겪게 되는 학내와 가정의 문제들과 범죄집단으로 흘러가는 과정을 지켜보노라면 결국 대만현대사의 불행한 과거가 은연중에 깔려있음을 느끼게 된다. ‘민주수호’라는 미명 하에 가해지는 공산세력, 반정부세력에 대한 탄압인 ‘백색테러’와 집단 이데올로기 속에 억압받는 청춘들이 일탈하여 나락으로 떨어지는 모습에서는 동화할 수 없지만 공감하게 되는 모티브와 감동을 받게 되는 것이다. 곽경택 감독의 새 영화 <친구>를 보면서 줄곧 이들 영화를 떠올리게 되는 것은 바로 주인공들의 일탈에 대한 원인과 그 결과에 대한 이성적이며 논리적인 집착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부산출신의 곽경택 감독은 자신의 학창시절을 기억해내며 쓴 시나리오로 정말 오랜만에 보는 짙은 필체의 영화를 만들어내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네 친구는 모두 어릴 때부터 바닷가에서 죽마고우로 자라오던 오랜 지기들이었다. 일본에 가까운 항구도시에서 자라한 그들에게는 일본으로부터 보따리장수 혹은 밀매업을 하는 부모가 있는 친구가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시아의 물개 소리를 듣던 수영선수 조오련이라는 사람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베타방식의 비디오로 포르노테이프를 누구보다도 빨리 접할 수 있는 환경에 놓여있던 아이들이었다. 그들은 자라나면서 이런저런 세상사에 대해 자신들만의 시각으로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그들이 자라서 학교에 가서는 불량학생이 되고, 문제소년이 되고, 결국은 퇴학 맞는 친구도 있게 되는 것이다. 그 모든 과정은 적어도 내가 보아왔던 중고등학교의 어두운 한 면인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선생은 비인격적으로 학생을 때리고, 모욕하며서도 그것이 사도의 길 인줄 알고 있으며, 학생들은 롤러스케이트장에서 어떻게 하면 여학생을 꼬셔 볼까하고 시간을 보내는 참으로 암담하지만 나름대로의 스릴이 있던 시절인 것이다.

곽경택 감독은 전반부에서 주인공들의 기억들, 추억들을 나열하는데 공력을 집중시킨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마치 상복 같은 교복을 입은 그들은 목적 없이 학교에 다니고, 주어진 삶을 맹목적으로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멋있어 보이려고 하는 행동들은 그들 나이에 걸맞은 유치함으로 인식되고, 점점 학교에서 멀어지고 조직에 가까워지는 모습을 보인다. 학교의 짱은, 조직의 똘마니로 시작하여 중간보스, 그리고 오야붕이 되는 것이다. 친구는 적이 되고, 적은 서로에게 칼부리를 겨누고, 마침내 거친 삶의 종말을 향해 뛰어가는 것이다.

영화의 전반부는 1976년부터 보여주는 과거의 기억들이다. 그것은 질풍노도라고 말해야하는 격정과 흥분과 유치함이 숨어있는 열정의 순간들이다. 그리고, 이들 기억과 완벽한 단절을 보이며 어느새 훌쩍 자라서 암흑가의 핵심세력이 되어버린 그 ‘친구’들을 보여준다. 유오성과 장동건의 카리스마의 부딪힘은 이 영화의 종말에 관심을 갖게 한다. 둘이 손잡고 암흑가를 평정하든지, 아니면 믿지 못하겠지만 서로가 칼부림으로 자멸하든지 말이다. 이 모든 영화의 관점은 상택이라는 친구의 눈을 통해서보여주고 들려준다.

나는 곽경택 감독의 장편 데뷔작 <억수탕>을 ‘억수로’ 좋아한다. 대중목욕탕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은 결국 영화의 힘이란 것은 ‘드라마’를 얼마나 갖고 있느냐하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도 그는 과거의 기억들로 놀라운 회한의 드라마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 영화가 재미있는 또 하나의 이유는 살아서 펄떡이는 ‘부산말’의 씽씽함이다. ‘뻐떡하면 저란다’ ‘딸네미를 잡아무라’, ‘이기 니끼가’ ‘돌아삐겐네’…. 그리고, 히로뽕에 의지한 유오성이 미친 듯이 쏘아 부치던 비어들. 아마도 한국영화 가운데에서는 가장 토속적인 언어를 구사한 영화로 기록될 것 같다.

영화를 보면서 많은 공감의 순간을 찾아낼 수 있었다. 내 주위에도 저런 아이들이 있었다. 물론, 그 당시에는 아직 ‘사시미’ 칼을 들고 설치는 아이는 없었고, 선생의 권위는 있었지만 말이다. 하지만 영화에서 등장하는 ‘삼일극장’의 추억 같은 것은 아직도 내가 영화판(리뷰쓰는 일^^)에 있는 이상 계속 떠올릴 것 같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 박중훈에게 가려졌던 장동건이 이 영화에서는 이제 배우로 성장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비트>에서 너무 강한 인상을 남겼던 유오성은 생긴 만큼 지독한 연기력을 가졌다는 것을 증명해 보여주었다. 물론, 그들 친구의 또 한 편 서태화와 정운택의 연기도 영화의 힘이 되어 주었다.

부산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되었으면 딱 좋을 영화이다.


감독: 곽경택 주연: 유오성, 장동건, 서태화, 정운택 한국개봉: 200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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