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취인 불명] Les Miserables (김기덕 감독 2001)

2008. 2. 18. 21:00한국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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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환 2002.5.24.) 김기덕 감독을 몇 번 대면한 적이 있다. 키도 작고, 입고 있는 옷이 언제나 작업복 스타일이며, 중광스님 이후 가장 인상적인 모자를 언제나 눌러쓰고 있는 그런 사람이었다. 어떻게 보면 아직 얼굴에 동안이 남아있기도 하지만, 그의 작품을 몇 편 보고 그의 인생의 고난사를 건네 들었다면 사실 한 자리에 있기가 조금 무서운 것도 사실이다. (자신의 영화에 대한 리뷰에서 혹평을 했을 때 칼 들고 달려들며 “당신 왜 작품을 모욕하냐?”하고 할 감독이 있다면 아마도 김기덕 감독일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다행히 김기덕 감독은 나의 <섬> 리뷰를 잘 읽었다고 공치사해준 적이 있어 안심이 된다만.)

그가 ‘충무로의 이단아’나 별종 취급 당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그는 그런 평가에 전혀 개의치 않고 자신이 만들고 싶은 영화를 자기의 방법으로 순식간에 해치운다. 그리고는 어느새 또 다른 작품을 준비하거나, 이미 찍고 있는 것이다. 그의 다섯 번째 작품 <수취인 불명>도 <섬>의 충격이 채 가시기 전에 어디선가 만들고 있다는 소식이 들렸고, <섬>에 이어 베니스 영화제에 2년 연속 경쟁부문에 진출하는 위업을 달성하였다.

김기덕 영화는 <수취인 불명>까지 명확하게 작가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엽기적이며, 모멸 받는 인간들의 드라마이다. 그의 영화에는 언제나 보기에 섬뜩한 장면이 나타나고, 여성을 비하 내지 격하, 그것도 모자라서 파멸시키는 주제로 가득하다. 그 때문인지 그의 영화만큼 평론가들이 물어뜯고 싶고, 호사가들이 떠들기 좋은 영화는 드물다. 그의 영화가 초기에 오해받거나 오독된(과소평가되거나 과대포장된 것을 포함하여)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제대로 영화교육을 받지 않은 상태에서 그는 매번 영화를 만들어가며 정제된 작품을 내놓고 있는 것이다.

그의 영화가 보여주는 영상적 충격에 의해 그의 시나리오 솜씨가 가끔 빛을 잃지만, 적어도 <수취인불명>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글 솜씨 또한 이창동 버금가는 문학적 소양이 가득하다.

이 영화를 작년 처음 기자시사회에서 보았을 때 눈물을 흘린 장면이 있다. 아마, 김기덕 영화에 눈물을 흘리기까지…..라며 의아해할지 모른다. 그런데, ‘혼혈아’로 갖은 모욕을 받으며 자랐을 양동근이 어머니를 발가벗겨 씻기는 장면이나 그 다음 장면에서 절로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은 영화가 갖고 있는 문학적 내레이션의 풍성함 때문일 것이다.

김기덕 감독의 야생동물같은 라이프 스토리는 잠깐 소개하자면, <수취인불명> 개봉에 즈음하여 본 그의 이야기 중에 이런 것이 있었다. 1980년 5월 서울역 앞 시위와 관련된 기억이다. 만약, 1980년대에 대학생활을 한 사람이라면 이 당시 일을 기억 내지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광주 며칠 전에 서울에서 대규모 학생 시위가 있었다. 난 당시 자료화면을 대학교때 병영집체(요즘은 없어졌지만 全統때는 있었음) 가서 정신교육시간에 보았다. 서울역 앞 광장에서 학생들과 전경들이 대치하며 화염병 시위와 투석전이 격화되었다. 그때 시위대에 의해 전경 페퍼포그 차가 전복되고 전소되고, 시위대에 탈취된 버스가 전경들을 덮쳐 전경이 깔려 죽은 일도 있었다. 당연히. 그때 일은 북한간첩에 의한 공작, 폭도에 의한 자유사회 부정….. 어쩌고 하는 정권의 발표가 있었다. 지금은 누구나..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하겠지만…. 그때. 그 현장에서 그들의 행동이나 대의명분에 반하는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 있었을까? 놀랍게도 김기덕 감독이 그 때 바로 그 역사의 현장에 있었고, 다른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다음 인터뷰 기사는 <수취인불명> 개봉에 즈음하여 보도자료로 나온 김기덕 소책자에 포함된 내용이다)

“반(反)엘리트주의를 표방하는 다른 감독들에 대해 동질감을 느끼는가”에 대한 질문에 김기덕 감독은 “그 영화들의 화자는 모두 지식인이다. 장선우 감독의 <꽃잎>의 소재가 되는 광주 학살 때의 일이다. 그 며칠 전 서울역 앞에서 대규모 시위가 있었는데 그때 학생들이 전두환을 반대하는 피켓을 들고 나왔다. 나는 그때 전두환이라는 사람을 처음 알았다. 열 아홉 살이었는데 공장에 가는 길이었나? 아니 폐차장에 취직하러 가는 길이었을 것이다. 시위대 때문에 길이 꽉 막혀서 버스 안에 갇혀 있어야 했다. 나는 사람들이 왜 데모를 하는지 알 수 없었고 그저 내가 어딘가로 가야하는데 갈 수가 없어서 열 받아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저 “학생 놈들 다 때려죽어야 해”라고 할 때 나도 동의했다.”

김기덕이 사물을 보는 것은 우리와 다르다고 간단히 넘기기에는 너무 처절하고, 현실적이다. 그는 초등학교 밖에 나오지 않았고 어릴 때부터 인생의 극한을 경험하는 밑바닥 생활을 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수취인불명>에서 다루는 이야기는 너무나 많다. 어릴 적 눈을 다친 여고생의 이야기나, 625 참전용사 상이군인의 비참한 삶, 주한미군의 이야기, 혼혈아의 비참한 삶 등 하나하나가 묵직하고 어느 한 쪽 편의 주장에 손 들 수 없는 상황을 나열한다. 그리고 그들 이야기와 그들 인물들이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너무나 처연한 인상을 심어준다. 일반적으로 생각하기 쉬운 점령군인양 행세하는 주둔미군의 나약한 모습이나 절망적 행동은 여타영화에서 보기 힘든 김기덕만의 접근법일 것이다. 김기덕 감독은 일부 투사들이 주장하는 뻔한 주장을 내놓지 않는다. 대신 그들 캐릭터에 연민의 정과 깊은 애정을 갖게 만든다. 그들이 최악의 순간에 내놓는 절망적 선택들의 나열은 일반인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극단적이며 극한적이다. 그러나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그러한 선택과 결정, 생각들이 납득가능한 공간으로 스며든다. 김기덕 감독의 영화에서 볼 수 있는 비참하고, 억압받는, 소수의, 버림받은 자들의 이야기가 뭉클한 감동을 주는 것이다.

이 영화는 김기덕 영화가 갖는 캐릭터의 인상이 너무나 짙어 그 연기를 해낸 배우들에게 다시한 번 연민의 정과 애정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그의 페르소나 조재현은 개장수로 개 같은 최후를 맞게 된다. 그가 양동근과 함께 처음 눈초리를 맞댈 때의 치열함은 김기덕의 야성을 보는 것 같았다. 이제은 스타가 된 조재현 뿐만 아니라, 김기덕 영화에서 가장 감탄할 만한 것은 마이너 배우들을 통해 영화에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는다는 것이다. 그의 영화에 누가 나오든 그의 색깔은 변치 않을 듯하다. 장동건이 나오든, 명계남이 나오든 확실한 것은 그것이 김기덕 영화라는 사실이다. (박재환 2002.10.25.)


[수취인불명 2001] 감독: 김기덕 출연: 양동근,반민정,김영민,조재현,방은진,명계남,오정세 (2001년 6월 2일 개봉)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부문진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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