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천무]규화보전 vs.비천신기 (김영준 감독 飛天舞: Bichunmoo, 2000)

2008. 2. 18. 21:08한국영화리뷰

01234567891011

(박재환 2000.6.27.)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온전한 재미를 위해 마가렛 미첼의 원작소설을 다시 읽어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비천무> 시사회장에서 흘러나온 한숨과 안타까움을 이해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김혜린의 원작만화를 찾아봐야할 것 같다. 구영탄 만화 말고는 대중적 '인기'만화를 전혀 모르기에 원작만화 <비천무>가 조금은 과대포장된 찬사를 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원작만화는 김혜린이란 작가가 1986년 무렵부터 그리기 시작한 만화이다. 대원문화출판사에서 여섯 권짜리 단행본으로 묶여 재발행된 이 만화는 당시까지 한국에선 보기 드물었던 무협과 순정이 혼합된 형태의 만화이다. 물론 당시에는 홍콩영화의 전성기였고 신필(神筆)이라고 불리는 김용의 소설이 본격적으로 국내에 번역 소개되기 시작한 때였으니 만화계에서 그런 시류에 편승했음직하다. <북해의 별>의 김혜린이 굳이 중국 중세를 배경으로 만화를 이끈 것은 그러한 엑조티즘의 연장일 수가 있을 것이다. 

1300년대 몽고족이 세운 원나라가 무너지고 명()제국이 들어서는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비천무> 만화를 보면 '절강성', '하북성' 같은 현대식 행정지역명이 그냥 나온다. 우리 식으로 이야기하자면 김유신 장군 시대를 이야기하며 '경상남도' 어쩌구 하는 것 같은 시대착오적인 표현이 원작만화의 첫 페이지에서부터 나온다는 것이다. 만화이고, 김혜린이란 작가가 비전문가이니 그런 사소(?)한 것은 넘어가더라도 <비천무>는 전형적인 한국형 순정만화의 범주를 넘어서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은 복거일의 <비명의 찾아서>의 치밀한 역사재구성과 너무나 대조된다. 

칼이 춤추고, 집안의 복수가 그려지는 배경에 등장하는 생경한 단어 몇 개로 주원장이 이민족 지배를 박살내는 파란만장했던 역사의 정중앙에 있던 중국을 그려내기에는 내공이 딸리는 것이다. 그리고 두 사람의 순애보에 중점을 두다보니 만화의 주인공이 극히 만화적인 초인으로 그려진다. 그래서 전혀 그럴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은 때로는 슈퍼맨으로, 때로는 군사전략가로 그려진다. 그래서 오히려 검술의 달인으로서 갖추어야할 신비의 검술은 '초식', '철기십조' 같은 어설픈 무협소설 용어 몇 개로 어물쩍 넘어가 버린다. 나머지 원작의 공허함은 예쁜 나비 그림과 중국 고시가로 떼워 넣는 방식이다. 이러한 원작의 허술함은 김용의 소설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차이를 낳는다. 

김용의 소설 대부분은 홍콩이나 중국에서 영화화 TV드라마로 만들어졌다. 똑같은 작품이 여러가지 버전으로 다시 만들어지고 만화로도 옮겨질 만큼 인기가 있는 것은 그의 소설이 지니는 놀라운 문장력 때문이다. 구비구비 휘몰아치고 날렵하게 오르락내리락하는 문장은 소설 하나를 완전히 몰입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게다가 역사와 고전을 꿰뚫은 그의 지력은 독자들을 한순간에 항복하게 만드는 것이다. 

주원장이 몽고의 제국을 무너뜨리고 명나라를 세우는 과정이 <비천무>의 역사적인 배경이다. 김용 원작소설의 대부분의 형태가 역사적 사실을 깔고 있는 것과 유사하다. 하지만, <비천무>만화에서 보여주는 조잡한 역사지식과 표피적인 무협담은 멜로의 캐릭터에 주저앉고 말았다. <비천무>와 같은 허술한 무협 원작에서 건질 수 있는 것은 오히려 멜로적 요소뿐이었는지도 모른다. 이런 원작만화와 마찬가지로 영화 <비천무>는 확실히 많은 맹점과 단선적인 스토리텔링을 보여준다. 설리와 진하라는 중심인물이 펼치는 사랑의 이야기는 버전만 다를 뿐, 전형적인 한국형 멜로드라마인 셈이다. 

김영준 감독은 자신이 무술고단자이기도 하고 단편영화 감독시절부터 액션물에 경도해 있던 사람이다. 그가 홍콩 무협물이나 일본 사무라이와 영화와는 달리 한국적인 무사영화를 찍으러 했을 때는 분명 인간적인 감정이 살아나는 형이상적 존재를 생각했을 법도 하다. 

널리 알려진대로 <비천무>40억 원 이상을 들여 중국 현지에서 3개월간 올 로케이션된 영화이고, 제작사나 배급사나 무슨 생각이었는지 시사회에서 130분짜리 버전을 소개할 만큼 대작으로서의 기대와 자신감을 내보였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런 대작에 쏟아질만한 찬사와는 거리가 멀어도 한참이나 먼 작품이 되고 말았다. 

순정멜로물의 원작을 우아한 액션물로 옮기면서 감독은 몇 가지 고려를 해야 했을 것이다. 어쩌면 흥행이라는 위험부담을 낮추기 위해선 김희선이라는 예쁜 배우에 초점을 맞춘 멜로물에 치중하는 것이 나았을지 모른다. 그것은 <은행나무침대>의 황장군 신현준에겐 익숙한 이야기이기도 하니 말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영화에는 연기자들의 땀이 보일 뿐 혼이 보이지 않는 결점을 노정시켰다. 김희선을 비롯한 대부분의 연기자들이 TV브라운관에나 적합할 연기와 카리스마를 보여주고 있다. 예외가 있다면 신현준이 반사이익을 톡톡히 챙긴다고나 할까. 신현준은 마치 호랑이 없는 굴에 여우가 왕노릇 하듯 군계일학의 열연을 보여준다.

 그리고 굳이 로케장소로 중국을 택한 것은 광활한 대지의 수려한 풍경을 배경으로 펼치는 이국적 정취를 잡아내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천길 폭포와 무성한 숲만으로는 그러한 이국적 정취를 이끌어낼 수는 없는 것이다. 관객에게는 양수리에서 찍은 것이나 중국에서 찍은 것에서 무슨 차이가 있는지에 우선 의문을 품을 것이니 말이다. 

<비천무>만화는 '비천신기'라는 가문의 무술 비결서를 익힌 '진하'라는 인물이 최고의 경공술을 익혀 무림의 패권을 잡는 형식을 띄는데 김용 소설이 아니더라도 쉽게 볼 수 있고, 당연히 있어야할 무공득도의 과정이 너무나도 허술하게 그려진다. 그리고 그의 칼 솜씨도 몇 가지 형태로만 독자에게 '절대 초강자'임을 강요한다. 

영화는 원작만화를 거의 따른다. 신현준이 연기하는 순정파 무사와 김희선이 연기하는 '설리'라는 여인의 인생역정을 통해 거대한 민족과 복수의 화폭에 기다림과 애절한 사랑을 구구절절 파노라마같이 펼치는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무협 따로 멜로 따로'라는 최악의 화음을 보여줄 뿐이다. 신현준이 원화평으로부터 무술지도를 배웠다고 홍보자료에 나와 있다. 원화평은 성룡을 키웠고, <매트릭스>의 키에누 리브스의 우아한 바디 액션을 지도한 사람이 아닌가. 신현준도 보기 드문 우아한 액션동작을 선보인다. 그리고, 세계 최고를 자랑한다는 홍콩 무협영화의 정통 와이어 액션 - 피아노 줄을 몸에 묶어 하늘을 붕붕 나는 장면-은 사실 감탄을 자아낼 만 하다. 한 두 사람이 아니고 10여 명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것은 와이어의 정확한 터치가 생명일 만큼 어려운 기술이라고 한다. <비천무>에서 영화 시작 첫 장면에서 물 위를 나는 무사와 영화 곳곳에서 지붕으로 솟아오르는 칼잡이들을 멋들어지게 뽑아내고 있다. 아쉽게도 그러한 장면은 중국 측 무술감독팀의 개가라고 한다. 그럼, 김영준 감독은 뭐하고 있었을까? 이 영화는 40억원이라는 거액에, 김희선이라는 '언터처블' 톱 스타가 등장한다. 영화개봉 전에 스포츠신문 등에 연재된 이야기로 봐서는 김희선과 스탭 사이에 갈등 같은 것은 전혀 없었던 모양이다. 그럼? 김희선의 TV용 연기력 때문인가? 불행히도 영화는 우선 배우들의 연기에서 무협영화가 갖추어야할 캐릭터의 카리스마를 풍기지 못한다. 그리고 극진행이 마치 원작만화의 스토리텔링을 옮기기 급급하다는 느낌이 들만큼 지루했다. 어쩜 많은 부분을 드러내고, 액션씬에 치중하였음 그나마 미약한 캐릭터의 연기력을 보완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홍콩영화에서 <<규화보전>>을 건지기 위해선 지난 100년 동안 해마다 수십 편의 무협영화가 만들어졌다. 우리나라에선 이제서 강호에 발을 내디딘 셈이다. 우리 영화팬들은 가끔 그것을 망각하지만 말이다. 우리영화에 있어 가장 필요한 것이 다양한 장르이 개발이라면, 이 영화는 그러한 점에서 점수를 줄 만하다. 한국영화에 대한 조그마한 애정이라도 있는 사람에겐 올해 들어 유난히 죽을 쑤는 한국영화계를 안타까이 여겨 이 영화를 감히 내칠 수가 없는 것이다. 김영준 감독의 내공연마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