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러머] 대부의 아들, 북에 빠지다

2008. 2. 17. 19:02홍콩영화리뷰

(by 박재환 2008-01-08) 아마도 [쉬리]인 것 같다. 한국영화팬들이 한국영화를 재밌게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이 말이다. 그 후 10년 동안 어떤 이유에서였든지 한국영화는 초강세였고 다양한 미디어 매체들의 발달로 지상파TV에서 방송되는 영화는 점차 심야대로 밀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KBS에서는 다양한 영화선택과 새로운 상영방식이 시도되었다. 이른바 프리미어영화제이다. TV방송 전에 극장상영을 시도한 것이다. 조금 기이한 방식이다. 프리미어영화제를 통해 소개되는 영화는 흔히 보기 힘든 영화들임에는 분명하다. 지난 주말 방영된 작품 [드러머]도 그러하다.
[드러머]는 표면적으로는 대만 영화이지만 요즘 영화가 다 그러하듯이 다국적 영화이다. 대만과 홍콩, 그리고 독일 자본이 투입되었고 대부분의 배우들이 홍콩배우이다. 영화 자체도 ‘퓨전’ 스타일이다.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한 겁 없는 청년의 애정행각이 펼쳐진다. Sid(방조명)란 놈은 홍콩 흑사회(조폭) 보스인 아버지(양가휘)만 믿고, 아니면 그러한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으로 대담한 일을 벌인다. 또 다른 홍콩 흑사회 두목(증강)의 애인을 건드린 것이다. 당연히 보스는 노발대발하며 시드를 찾아 나선다. 아들놈 때문에 홍콩 흑사회가 체면과 질서를 위한 일대혈전이 벌어질 참이다. 증강은 양가휘에게 타협책을 내놓는다. 아들놈의 손목을 잘라 바치라는 것이다. 아버지, 일단 아들을 대만으로 빼돌린다.

대만 산골짜기를 처박힌 시드는 홍콩 흑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른 채 지루한 일상을 보내야한다. 어릴 적부터 계속되었던 아버지와의 불화, 그리고 자신을 유일하게 챙겨주던 누나. 조폭이 싫어도 이만저만 싫은 게 아니다. 그의 유일한 탈출구는 클럽에서 무아지경에 두들기던 드럼이었다.

어느 날 대만에서 숨죽이고 지내던 시드의 귀에 멀리서 들려오는 북소리. 시드가 찾아낸 것은 타이베이 인근 산에 기거하며 ‘북’치며 심신을 수련하는 일군의 무리들이었다. 시드는 단지 북(드럼)을 치고 싶다면 이들 무리에 합류한다. 마치 소림사에 입문한 것처럼 수행과정을 겪는다. 물도 긷고, 온갖 허드렛일을 하면서 그는 ‘북’과 ‘인생’과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이 영화의 감독은 필국지(畢國智,케네스 비)라는 인물이다. 필국지 감독의 데뷔작 [하이난 치킨라이스)(海南鷄飯)는 부산영화제를 통해 소개된 흥미로운 퀴어무비였다. 필국지는 캐나다에서 영화/무대연출 공부를 했고 몇 편의 무대극과 시나리오 작업을 했다. 그의 어머니는 능파(凌波)이다. 1960년대 대만 영화흥행사를 다시 썼던 이한상 감독의 [양산백과 축영대]에서 여장남자 양산백 역을 맡았던 여배우이다. [하이난 치킨라이스]처럼 [드러머]도 두 개의 서로 다른 이야기를 대비하듯이 이야기를 꾸려나간다. 하나는 어두운 야경이 주로 등장하는 살벌한 홍콩 흑사회 조폭의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무한풍광을 자랑하는 대만 산림에서 펼쳐지는 신선노름 같은 북치기이다.

이 영화에는 중화권의 유명 배우들이 다수 출연한다. 아버지에 대한 반발을 ‘북’에 해소하는 열혈청년 역을 맡은 배우는 방조명(제이시 천)이다. 그 유명한 액션 스타 성룡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임청하와 함께 한 시절을 풍미했던 대만의 미녀배우 임봉교이다. 아주 오랫동안 미국에서 비밀스럽게(?) 자란 뒤 홍콩으로 건너와서 아버지 어머니의 뒤를 이어 영화배우로 나섰다. (물론 음반도 발표한 가수이기도 하다) 조폭 보스로서의 카리스마와 자신을 멀리하는 아들딸에 대해 애처로운 부정을 동시에 지닌 아버지 역을 맡은 배우는 홍콩의 베테랑 배우 양가휘이다. 홍콩배우들이 다들 그러하듯이 양가휘는 저급코미디에서 하이 드라마에 이르기까지 10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한 배우이다. (인터넷에 보면 왕가위-양조위-양가휘 세 사람을 혼동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이다) 양가휘는 홍콩에서 가장 소문난 패밀리맨이다.

아들만큼 아버지에 대한 반항으로 뭉친 사려 깊은 수의사 딸 역으로 출연하는 여배우는 하초의이다. 역시 가수이기도 하다. 보스의 명을 받고 아들을 대만으로 빼돌리고 돌보는 배우는 장요양. 홍콩 조폭 보스로 등장하는 증강은 홍콩 느와르에서 자주 보아왔던 인물. 참, 시드가 대만에서 만나는 여자는 이심결이다. [디 아이] 같은 호러물로 국내 팬에게도 낯익은 ‘말레이시아’ 화교이다.

그리고 아마 영화 보면서 산 높고 물 맑은 곳에서 북치며 심신을 수양하는 사람들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만 할 것이다. 실제 대만에 있는 ‘우인신고’(優人神鼓)라는 단체이다. 홈페이지에 있는 사진을 보니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이다. 단체로 우정출연을 한 셈이다.

그리고 제목이 [드러머]인데 원제는 [戰,鼓]이다. 요즘 중화권에서 나오는 영화 제목이 조금 어렵다. [戰,鼓], [色,戒], [夜. 上海], [女人·本色], [不能說的·秘密]처럼 문장부호를 일부러 집어넣는다. ‘戰鼓’는 북과의 전쟁, 식으로 단선적 이해가 앞서겠지만 [戰,鼓]라고 표기해 놓으면 ‘전쟁, 그리고 북’ 이라며 생각의 여유를 준다. 아마도 조폭보스인 아버지와의 전쟁, 가족불화에 대한 전쟁, 화를 누르는 자신과의 고독한 싸움 등 다의적인 의미를 내 풍기는 모양이다. 조폭 보스의 아들이 아버지의 비즈니스에 반기를 들고, 가족의 복원을 꿈꾸지만 아버지가 살해된 뒤 그 뒤를 이을지 말지 고민하는 것도 하나의 전쟁이라면 전쟁일 것이다.

어쨌든 KBS프리미어 타임을 통해 만나본 흥미로운 대만 영화이다. (by 박재환 2008-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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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qnseksrmrqhr2009.04.26 17:56

    쉼,표를 집어 넣으면 그렇게 뜻이 변하다니 좋은 공부했습니다.....북치는 요령을 배워가는모습은 정말 일미였습니다...세상에 쉬움일은 없나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