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문의 결투] 칼로 새긴 중국사 (호금전(胡金銓) 감독 龍門客棧 Dragon Gate Inn 1967)

2008. 2. 17. 18:58홍콩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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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환 2002/7/29) 제목은 유명한데 실제 본 사람이 얼마 없는 작품을 '클래식'이라고 한다면, 확실히 이 영화는 '클래식 중의 클래식'이다. 다분히 과대평가된 작품 중의 하나이기도하고 말이다. 국내 영화팬에게 호금전 감독이 정식으로 소개된 것은 작년(2001)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호금전 회고전'을 가지면서이다. 이때를 즈음하여 호금전 감독의 걸작 중의 걸작이라도 평가받은 <협녀>가 비디오로 출시되었다.

1931년 중국 북경에서 태어난 호금전은 나이 열여덟에 홍콩으로 건너와서 우연하게 영화판에 뛰어들게 된다. 미술 일을 하다가 '놀랍게도' 배우생활도 하게 된다. 그러다가 <대취협> 등을 홍콩에서 찍고 곧바로 대만으로 영화사를 옮기며 <용문객잔>(67)을 내놓는다. 이후 협녀(71), <영춘각의 풍파>(73), <충렬도>(75), <공산영우>(79) 등을 잇달아 내놓으며 '武俠宗師'라는 칭호를 듣게 되었다.

이런 작품들은 영화평론가 정성일이나 김홍준 같은 이들이 "나 어렸을 적에...", 라든가 여전히 홍콩영화의 황금기를 못 잊는 몇몇 매니아급 영화팬들이 "아무 것도 모르던 어린 시절 부모님 손잡고 갔던 극장에서..."라며 회고하는 작품들이다. 만약, 그런 명성과 소문을 익히 들어 우리나라에서, 아주 오래 전에, 굉장히 많이 잘려진 채 비디오로 출시된 <용문객잔>을 보게 된다면 실로 만감이 교차할 것이다. 비교적 최근작 <畵皮之陰陽法王>은 어떨까? 1993년에 만들어진 호금전 감독의 공식 유작이다. 우리나라에선 <무림객잔>이라는 다소 황당한 제목으로 출시되었다. 정소추와 왕조현, 우마, 홍금보, 임정영이라는 무협 팬으로서는 귀가 솔깃한 출연진 때문에 기꺼이 빌려보겠지만 굉장히 실망하고 말 작품 중의 하나일 것이다.

어쨌든 호금전에 대한 기대와 흥분을 가라앉히고 <용문객잔>을 관람하자. 이 영화는 <대취협>으로 무협영화의 새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은 후 67년에 개봉된 작품이다. <용문의 결투>라고 소개된 우리나라는 물론, 대만, 홍콩에서 당시 최고의 흥행기록을 세웠다. 일반 팬이라면 <용문의 결투>보다는 92년에 개봉된 이혜민 감독, 서극 제작, 장만옥-임청하-양가휘 주연의 <신용문객잔>에 더 익숙하리라. 나 개인적으론 <신용문객잔>을 더 재밌게 보았지만, 수준 있는 사람은 당연히 <용문객잔>을 상수 중의 상수로 칠 것이다. 그래서 먼저 <용문객잔>, <용문의 결투>를 리뷰 한다.

이른바 어려운 과정을 거치고 합격, 승진한 경우 '등용문'이라는 표현을 쓴다. 방송사 탤런트 공채시험을 '스타의 등용문'이라고 표현하는 것처럼. 인터넷의 두산세계대백과사전을 보면 '등용문'이 다음과 같이 소개되어 있다.

후한서(後漢書) <이응전(李膺傳)>을 보면 士有被其容接者 名爲登龍門(선비로서 그의 용접을 받는 사람을 이름하여 등용문이라 하였다).”고 적혀 있다. 여기에 나오는 등용문은, <이응전>의 주해(註解)에 따르면 황하(黃河) 상류에 용문이라는 계곡이 있는데, 그 근처에 흐름이 매우 빠른 폭포가 있어 그 밑으로 큰 고기들이 수없이 모여들었으나 오르지 못하였으며, 만일 오르기만 하면 용이 된다고 하였다. 그 후 이 말은 과거에 급제(及第)하는 것을 가리키게 되었고, 오늘날에는 어려운 관문을 통과하여 출세의 문턱에 서는 일을 말하게 되었다.

 

좀 더 중국지리부도를 찾아보면 용문이라는 지명은 사천성 장강 삼협에서 찾아볼 수 있다. 중국이 엄청난 돈을 쏟아 부으며 지도를 뒤바꿀 대역사를 하고 있는데, 바로 세 개의 큰 협곡을 막아 댐을 만드는 것이다. 이 대규모 댐 건설과 관련된 협곡은 다시 대삼협, 소삼협으로 나뉜다. 그 소삼협 중에 용문협이 있다. 아마 우리나라 충주호-단양팔경을 본 사람이라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차이가 있다면, 우리나라야 배 타고 한 시간이면 끝나는 절경이지만 중국의 삼협은 금강산 유람선 같은 것을 타고 1일짜리 코스에서 10일짜리 코스가 있을 만큼 그 규모가 어마어마하다는 것이다. 물론 나도 아직은 못 가봤다. --;

여하튼 이 동네는 절경 중의 절경이다. 영화 <촉산>의 배경인 아미산과 장예모의 최신작 <영웅>의 로케지 구채구가 바로 이 동네이다. 중국문학에 조예가 있다면 두보가 768년에 쓴 오언율시 <등 악양루>(登岳陽樓)를 기억할 것이다. 두보가 악양루에 올라 동정호를 바라보며 읊은 우국충정의 명시이다. 물론, 악양루와 동정호도 이 동네이다.

그럼, 이 정도 사전설명이면 <용문객잔>은 중국의 엄청난 풍광을 보여주며 절정의 무예기교를 선사할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화는 시작과 더불어 황량한 중국 풍광과 미동조차 용납못할 분위기이다. () 하나에 집중시킨, 즉 너무 무술 고단자들이라서 크게 몸놀림이 필요 없는-따라서 액션 매니아에겐 다소 하품 나는 결투 씬을 선사한다.

 

우리나라에선 이 영화를 호금전 중심으로, 미학 중심으로 평가하여 그 내용을 건너뛰는 면이 있었다. 이 영화는 중국 명나라 때의 토목지변(土木之變)과 그 뒤의 이야기 <탈문지변>(奪門之變)의 역사를 담고 있다. 중국사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영화팬을 위해 잠깐 설명하자면...

 

漢族 주원장이 원 세력을 몰아내고 명나라를 세운 것이 1368년경이다. 건국초기가 항상 그렇듯 북방의 오랑캐 민족과 끊임없이 전쟁을 치렀다. 그런데 명나라 내부에선 대를 거듭할수록 왕조 특유의 부정적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바로 환관세력의 득세. 14359살짜리 주기진(朱祈鎭)이 황제자리에 오른다. 어릴 적 황태자 주기진의 교육을 맡았던 환관 왕진(王振)이 자연스레 권력을 휘어잡는다. 正統 13년에 북쪽의 오이라트의 '也先'이 조공문제를 빌미로 국경을 침범한다. 왕진은 正統帝(英宗,주기진)에게 친정(임금이 직접 나서서 군사지휘를 함)을 강권한다. 이에 당시 병부시랑(국방부 차관)이었던 우겸(于謙)이 적극 반대한다. 물론 왕진의 권위를 누가 꺽으랴. 결국 우매한 정통제와 건방진 왕진 때문에 중국사에 희대의 사건이 발생한다. 하북의 '토목'이란 동네에서 정통제가 오랑캐 부족에게 붙들리고 만다. 포로가 된 것이다. 그리곤 '살아있는 대중국의 황제'가 오랑캐 나라로 끌려간다. 명나라 조정에선 황제가 죽지도 않았는데 다른 황제가 옹립된다. 바로 정통제의 이복동생 주기옥(朱祈玉)景泰帝로 등극한다. 정신을 차린 명나라는 왕진 무리를 박살내고 군민이 합심하여 也先을 국경 밖으로 몰아낸다. 也先는 정통제를 붙잡고 인질극을 벌인 셈이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결국 황제를 돌려보낸다. 돌아온 정통제는 황위로 복귀하지 못하고 자금성 남궁에 연금된다. 하지만 곧 몇몇 장군들이 쿠테타를 일으킨다. 남궁문을 부수고 연금상태의 영종(돌아온 정통제)을 옹립 복위시킨다.(奪門之變) 죽다가 살아돌아온 정통제는 수습책을 마련해보지만 상황파악을 잘못하여 강직한 '우겸'을 경태제를 옹립했다는 죄목으로 저자거리에서 처형한다.

<용문객잔>은 여기서 시작한다. 우겸은 환관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것으로 나온다. 환관들은 우겸의 유족들을 저멀리 유배보낸다. 유배보내 놓고도 안심이 안된다. 왜냐하면 중국사에 보면 유족들이 하나쯤을 살아남아 장성한 후 복수극을 펼치는 것은 흔한 일이니. 환관은 부하를 보내 우겸의 유족을 죽이라고 밀명을 내린다. 유족은 저 멀리 유배된다. (다른 이야기를 하자면, 중국사 소설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내용인데 유배가는 사람은 날짜를 엄수해야한다. 이들이 목에 칼을 차고 형부사람에 이끌려 물 건너 산 넘고 수천 리 길을 걸어걸어 유배지까지 간다. 만약, 정해진 시한 내에 그 곳에 도착하지 못하면 끌고간 관리나 이들은 죽임을 당한다. 물론, 환관무리는 도착 전에 이들을 죽이겠지만)

이들이 유배 코스로 가는 도중에 '용문'에서 하루를 묶을 예정이다. 환관은 용문의 한 숙박업소, 즉 용문객잔에 미리 진을 치고 있다가 이들을 몽땅 죽여버릴 예정이었다. 일종의 황제직속 비밀정보기구였던 동창의 태감 조소흠은 졸개 피소당과 모종헌을 용문에 보내어 우겸 유족을 주살할 예정. 그런데 중간에 정의의 칼잡이가 끼어든다. 이전에 우겸을 모시던 주씨 자매(여동생역은 상관영봉이라는 당시 무협극의 여주인공)이 맡았다. 이들은 용문객잔을 중심으로 역사와 정의 앞에 한판대결을 펼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처음에 이 영화를 과대평가라고 했지만, 그래도 호락호락한 영화는 결코 아니다. 영화의 구조는 매우 정교하다. 이른바 중국철학적 '時地人'의 고도집중 방식이다. 모든 이야기 진행은 용문객잔으로 모여든다. 시간의 급박한 흐름, 그리고 병사의 배치, 등장인물의 전략 등이 황량한 대지 위의 조그만 흙담집 객잔을 중심으로 모여들고, 싸움이 벌어지면, 과 대립하는 구조이다.

물론, <용문객잔>의 무협씬은 <와호장룡>이나 서극 스타일의 무협물과는 판이하다. 초보적인 와이어 액션에도 못 미친다. 그렇다고 이소룡의 리얼액션과도 확실히 다르다. 무술적 기예를 모두 단전과 손끝에 집중시키는 초절정 고수들이지만 관객이 보기엔 확실히 영화적 재미가 떨어진다.

마지막 호금전에 대해 널리 알려진대로 정석대로 <용문객잔>을 소개하자면 이렇다. 북경 경극, 즉 베이징 오페라의 요소를 무협물에 가미시킨 것이다. 인물 대결구도에서는 중국 전통악기의 단조로운 음을 사용하여 팬들의 긴장도를 극대화 시킨다. 인물의 움직임은 물론 춤을 추듯 자연스럽다.

호금전 이야기 하나만 더. 호금전은 자신이 무협물을 잘 찍는다는 것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많은 사람이 내가 많은 무협물을 찍었다고 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나는 무술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 내가 찍은 동작은 완전히 중국 경극에서 차용해온 것이다. 나의 무술액션장면은 무용, 음악, 희극이 하나로 합쳐진 것이다. 나는 경극의 동작을 하나하나 분석하여 그것을 어떻게 영화에 옮겨 사람을 놀라게 할까, 그 효과를 연구한 것이다."

물론, 호금전의 <용문의 결투>는 볼만한 영화임에는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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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호금전(胡金銓출연: 상관영봉(上官靈鳳), 서풍(徐楓), 석준(石雋), 백응(白鷹), 전붕(田鵬), 한영걸(韓英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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