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호문] 홍콩액션영화의 진화, 또는 그 한계

2008. 2. 17. 19:00홍콩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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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by 박재환  2007/5/18]  홍콩영화, 특히 액션영화는 한국극장에서 더 이상 대접받기는 어려워졌다. 이소룡은 이미 잊혀진 배우(전설!)가 되어버렸고, 성룡은 나이 드는 것이 팬들에겐 안타까운 지경(현실!)이 되어버렸다. 그렇다고 이연걸이나 견자단이 한국에서 확실하게 흥행배우 역할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 와중에 <옹박>같은 태국산 틈새영화나 할리우드나 뤽 베송의 익스트림 계열 영화까지 등장하니 홍콩 액션영화는 그 위상마저 위태롭다. 이럴 때 홍콩의 액션영화 한 편이 극장에서 개봉되었다. 바로 <용호문>이다. <용호문>은 홍콩액션영화의 계보를 조금이나마 기억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반가운 영화이다. 적어도 홍콩영화계가 그들만의 장기인 액션영화를 어떤 방향으로 살릴지 고민하면서 만들었다는 것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 관객에게는 2%가 아니라 98%가 부족하게 느껴질 영화이지만 말이다.

[용호문]은 만화가 원작이다
  영화 [용호문]의 역사는 우선 홍콩만화의 역사이다. [용호문]은 홍콩의 만화작가 황옥랑(黃玉郞)의 인기만화가 원작이다. 홍콩에선 베스트셀러이며 스테디셀러이다. 황옥랑은 열세 살에 ‘판매용’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고 18살에 [용호문]시리즈를 처음 내놓았다. 처음엔 [소유맹](小流氓)이라는 제목을 달고 세상에 나온 만화지만 현재까지 무려 35년 동안 1,000편 넘게 시리즈가 이어지고 있는 작품이다. 황옥랑은 자신이 직접 [용호문] 영화를 감독하기도 했다. 잘 나가던 시절 홍콩만화 시장의 80%가 황옥랑 작품이었다. 그의 만화를 기반으로 이런저런 연계사업을 펼치다가 한때는 감옥살이까지 했다. 최근 들어 중국과 교류가 본격화되고 중국의 대중문화가 산업의 규모를 가지면서 황옥랑은 다시 한 번 각광받는 크리에이티브가 된 것이다.

  [용호문]은 홍콩의 하류문화와 건강한 쿵푸정신을 담고 있다. 자칫하면 건달 조폭으로 빠져 버릴 청소년이 [용호문]이라는 체육관을 통해 쿵푸의 진수를 배우고 사회정의를 실천해간다는 내용이다. 물론 그 와중에 동양(중국)문화의 우수성을 깨우치게 되는 기능도 있고 말이다. 주인공은 용호문 관장일 테고 왕소호(사정봉), 왕소룡(견자단), 석흑룡(여문락) 등이 주요캐릭터이다. 영화 [용호문]은 만화의 내용을 단순화시킨다. 왕소호와 왕소룡은 배다른 형제이다. 왕소호는 용호문 제자로서 정의롭게 살고, 왕소룡은 비록 몸은 흑사회에 있지만 언젠가는 정의를 위해 싸울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세상의 모든 악을 관장하는 나찰문의 화운사신(火雲邪神)이 등장하여 온통 악의 소굴을 만들려고 한다. 형제는 함께 뜻을 모아 분연히 악에 맞선다.

[용호문]은 액션영화이다
  이 영화는 초반에 그 액션의 규모와 방식이 결정된다. 만화책 책장이 차르르 넘어가면서 실사로 연결되는 ‘마블’스타일의 나름 멋있는 오프닝 씬이 펼쳐진다. 반점에서 이루어지는 전광석화 같은 사정봉의 무예와 견자단의 맛보기 무술만으로도 그의 포스를 느끼게 된다. 그리고 일식집에서 펼쳐지는 ‘3:100’의 액션대결은 타란티노 [킬 빌]의 이른바 녹엽루(House of Blue Leaves) 대결 씬을 연상시키지만 공중에서 내려다보는 촬영 장면은 베스트로 손꼽힐만하다. 그리고 후반부 견자단과 화운사신과의 결투는 ‘홍콩액션 매니아’에게는 충분히 짜릿한 쾌감을 준다. 만화를 원작으로 만들었던 영화 [풍운]과 비교해서도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진화가 눈에 띤다. 물론 이 영화에 대한 평가는 ‘빛나는 액션, 창백한 스토리’가 정답이다. 그런데 액션도 견자단 같은 리얼액션 배우의 액션은 볼만하지만 사정봉이나 여문락의 액션은 보기에 민망할 때가 있다. 어쩔 수 없다. 이해하고 보자!

[용호문]은 홍콩액션영화의 노스탤지어를 자극한다
  견자단은 프로이다. 사정봉과 여문락은 액션 영화를 진짜 소화해 내기에는 무리이다. 대신 한 시절을 풍미했던 액션 배우들이 관록을 자랑한다. 쇼 브러더스 시절 장철 감독 영화에 출연했던 진관태와 주성치의 [소림축구]로 부활한 원화 등이 출연한다. 화운사신으로 등장하는 배우는 ‘석행우’(釋行宇 )이다. [소림축구]에도 출연한 석행우는 소림사 무승출신이다. 이연걸처럼 소림무술로 스크린에 우뚝 선 인물이다.

몰라도 영화 보는데 지장 없는 이야기
  원작자 황옥랑은 이 영화에서 백운사 고수로 잠깐 등장한다. 무슨 화려한 무술을 보여주지는 않는다. <매트릭스>의 전지전능한 ‘오라클’같은 역할이다. 이 영화에는 항룡십팔퇴(降龍十八腿)라는 초식이 등장한다. 물론 김용의 [의천도룡기]에 나오는 항룡십팔장(降龍十八掌)에서 유래되었다. 황옥랑의 자신의 작품세계에 있어 김용의 무협소설이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고 말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 무협 팬에겐 ‘降龍十八掌’이 논란거리이다. ‘降’은 ‘내릴 강(jiang)’과 ‘항복할 항(xiang)’ 두 가지로 쓰인다. 중국어도 마찬가지이다. 중국에서는 ‘항’룡십팔장이 일반화되었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강’룡십팔장과 백중지세이다. 강룡십팔장을 주장하는 사람의 논지는 <<주역>>의 괘를 들먹이며 ‘강룡’의 의미가 더 적합하다는 것이다. 여하튼 [용호문]을 보다가 이런 생각이 들 정도이다. 어쨌든 ‘홍콩정통액션영화매니아’(그런 게 있다면...)에겐 이 영화 필견이다.

  하나 더, 사정봉의 어색한 연기를 보충한 대역 배우는 석항소(釋恒少)라는 소림사 속가제자이다. 그의 하루 개런티는 200元(3만 원)이었다고 한다. 이 영화는 홍콩에서는 1,200만 위앤, 중국에선 4,700만 위앤을 벌어들였다. 큰 성공은 아닌 셈이다. 특히 홍콩에선 기대 이하의 성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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