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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봄] 밤은 길었고, 봄은 짧았다 (김성수 감독)
박정희 대통령이 자기가 한때 믿었던 심복의 총에 유명을 달리한 것은 1979년 10월 26일이다. 독재자의 갑작스런 퇴장은 권력의 공백을 불러왔고, 야심만만한 군인들은 “다음 차례는 나야!”라며 청와대로 줄을 세운다. 그 길목에 ‘1212 군사반란’이 자리하고 있다. 김성수 감독이 재현한 그날의 이야기가 영화 으로 완성된다. 영화는 궁정동 안가에서 대통령과 경호실장을 총으로 쏘아죽인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보안사로 끌려가 고초를 당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보안사령관이자 합수부장(1026사건합동수사본부장)이 된 전두환은 대한민국 최고의 권력기관인 중정과 청와대 경호실을 장악한다. 천생 문관이었던 최규하 국무총리가 대통령의 자리에 올랐지만 계엄사령관인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에 기대어야하는 상황이었다. 여기서 전두..
2023.11.24 -
[30일] “우리 이전에 사랑했던가요?”
“I am loving you.”가 문법적으로 맞는 말인가? 사랑엔 국경도, 남녀도, 시제도 없다고 한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 그대를 너무나 사랑하고 있다는 것 아니겠는가. 그렇게 철석같이 믿었으니 둘은 결혼은 한 것이리다. 주위의 반대나, 둘의 현격한 차이도 잠시 잊고서 말이다. 그런데, 이런 결혼은 눈꺼풀에서 콩깍지가 떨어지면 금세 파경에 이른다. 여기 정열(강하늘)과 나라(정소민)가 그런 잘못된 선택으로 잘못된 길을 가게 된다. '만년 백수' 정열은 변호사가 되기 위해 미친 듯이 공부한다. 사이키조명이 신나게 돌아가는 디스코텍에서도 말이다. 그곳에서 운명의 여인 나라(정소민)를 만난다. 로코 드라마의 정석대로 둘은 주위의 극심한 반대를 이겨내고 결혼에 이른다. 그리고 온달과 평강처럼 산다..
2023.11.24 -
[거미집] “놀라운 걸작을 보여줄 거야!” (김지운 감독,2023)
영화잡지 과 의 편집장을 지냈던 이연호 기자가 2007년에 쓴 (한국영상자료원)에는 , , , , , 등 ‘지금 보아도 놀라운’ 작품을 남긴 고(故) 김기영 감독(1919~1998)의 온갖 기담이 담겨있다. 이연호 기자는 김기영 감독이 비극적인 화재사고 죽기 바로 전날 통화를 했단다. 그날 김 감독은 자신의 차기작인 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곧 놀라운 걸작을 보여줄 것이다”고 장담했었단다. 그리고, 2023년, 김지운 감독의 새 영화 에서는 송강호가 연기하는 김열 감독을 통해 ‘온갖 장애물과 훼방꾼이 가득한 영화판’에서 자기만의 걸작을 내놓으려고 발버둥치는 한 영화감독을 만나보게 된다. 1970년대, 서울 외곽의 커다란 촬영장 건물. 가건물 같이 보이지만 엄연한 당시 충무로 영화사의 스튜디오이다...
2023.11.24 -
[1947년 보스톤] “Venni, Vidi, Vinsi!“ (강제규 감독,2023)
손기정 선수가 일장기를 가슴에 달고 올림픽 금메달을 땄던 것은 1936년 독일 베를린 올림픽 때였다. 아돌프 히틀러가 한껏 게르만 민족의 우월함을 만방에 과시하기 위해 ‘우쭈주’하던 시절이었다. 손기정은 올림픽 금메달을 땄지만 그의 조국은 ‘일본’이었고, 그의 국기는 ‘일장기’였으면, 시상대에 오를 때 울려 퍼진 국가는 ‘기미가요’였다. 손기정 선수는 좌절하고, 분노가 치밀었고, 억울하고, 원통했을 것이다. 그리고 해방이 되었지만 한반도는 남과 북으로 갈라졌다. 바로 그 시점의 우리나라 스포츠 사(史)이다. 외세에 맞서 오랫동안 독립운동을 펼쳤지만 국제적으로 ‘대한민국’이 공인되기 전까지, 그러니까 국제적으로는 ‘남은 미국이, 북은 소련이’ 군정을 펼칠 때의 이야기이다. 손기정 선수는 해방된 한국에서 ..
2023.11.24 -
[천박사 퇴마연구소] "뭔가 이상한 일이 생기면, 누굴 부르지?.. 강동원!"
멀쩡하던 사람이 어느 순간 시름시름 앓더니 마치 다른 사람이 된 듯이 무서운 말들을 쏟아내고, 이해할 수 없는 몸짓을 보이고, 어떨 때는 인간이라고 할 수 없는 과잉행동을 할 경우, 그것이 단순한 육체적 질병, 정신적 결함에서 기인한 경우가 아닐 경우 어쩔 수 없이 ‘귀신이 들렸다’고 한다. 종교적인 색채를 가미하자면 ‘악령이 씌었다’고 하면 될 것이다. 이제, 인간계의 정신적 치료도, 가족애로도 극복 못할 지경에 이르면 필요한 것은? 고스트버스터나 엑소시스트가 필요할 때이다. 추석 연휴에 개봉된 영화 (감독:김성식)에 그런 존재가 등장한다. 강동원이다. 강동원은 이제 귀신을 쫓아내야 한다. 그로서는 처음 하는 일은 아니다. '전우치'에서도, '검은 사제들'에서도 해본 일이다. 이제달인에 이르렀을 그의 ..
2023.11.24 -
[오펜하이머]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오펜하이머(Julius Robert Oppenheimer) 같은 과학자, 트루먼 같은 정치인, 그리고 여기에 히틀러 같은 적(敵)이 있을 경우, 지구는 굉장히 불안정할 것이다. (원자핵처럼 말이다) 지난 달, 광복절에 개봉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는 다양한 레이어의 감상을 안겨준다. 놀란 감독은 ‘지구인의 평화와 안정’을 위협할 여러 요인 중에 ‘핵문제’를 내놓았고, 그 이야기를 ‘핵폭탄의 아버지’라는 오펜하이머를 통해 불안정한 세계촌을 그린다. 이제 “칼을 휘두른 사람을 단죄해야지, 칼을 만든 사람을 단죄할 수 없다”는 이야기에서 한걸음 나아가 후쿠시마 앞 바다의 삼중수소에까지 이어질 원죄론을 살펴보자. 오펜하이머는 미국으로 건너온 유태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런데 유태인으로서의 자부심이나, 정체..
2023.11.24 -
[잔고: 분노의 적자] 백승기 No.5
어떤 저예산독립영화를 보면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저 감독에게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급 제작비를 안겨준다면, 어떤 작품을 만들 수 있을까?”라고. 이건 피터 잭슨 감독의 , 그러니까 (1987)가 떠올라 하는 말이다. 넘치는 끼, 샘솟는 아이디어, 그리고 영원불멸의 예술혼에 걸맞은 제작비가 주어진다면 어떤 결과물을 내놓을지 궁금해진다. 그 대상에는 백승기 감독이 있다. 백승기 감독 스타일로 말하자면 “세상엔 백승기 작품을 본 사람과 안 본 사람으로 나뉜다” 일지도 모르고, “끝까지 본 사람과 중간에 나온 사람으로 나뉜다”일지 모른다. 백승기 감독의 (12), (16), (19), (2020)를 (만약) 본 사람이라면 다음 작품을 기다리고 있었는지 모른다. 작년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되었고..
2023.11.24 -
[볼코노고프 대위 탈출하다] 1938년, 용서와 구원의 스탈린 앞잡이
‘나타샤’, ‘아나스타샤’ 같은 낭만적 이야기가 넘칠 것 같은 러시아 제국은 20세기 들어서면서 레닌과 볼세비키, 공산주의 같은 무서운 얼굴로 바뀐다. 결국 왕정국가는 무너지고 1922년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이 들어선다. 그리곤 1991년 고르바초프를 마지막으로 그 제국이 무너질 때까지 미국에 맞서는 초강대국가로 존재했다. 어떻게? ‘공산주의’라는 숭고한 이데올로기로? 시계추는 1938년으로 돌아간다. 레닌의 뒤를 이어 1922년 소련공산당 서기장을 맡은 스탈린은 죽을 때까지 30년 동안 소련과 세상의 절반을 ‘공산주의’로 장악했다. 물론 마르크스 사상만으로 인민을 무장시킨 것은 아니다. 영화 는 스탈린 치하의 한 시기를 극적으로 보여준다. 물론, 트로츠키도, 미제(!)와의 전쟁도, 카레스키의 강제이..
2023.11.24 -
[잠] 정유미의 美친 연기, 이선균의 필사의 연기.. “불 위의 곰국” (유재선 감독)
봉준호 감독의 의 연출부 출신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개봉 전에 큰 주목을 받은 유재선 감독의 데뷔작 이 지난 6일 개봉되었다. 봉준호 감독은 영화 개봉 전부터 과 유재선 감독에 대한 칭찬을 쏟아내어 영화팬들의 관심과 기대를 불러 일으켰다. 과연 은 어떤 영화일까. 영화는 제대로, 편안히 잠들지 못하는 한 남자와, 그로 인해 불안에 떨게 되는 여자의 이야기이다. 둘은 부부이다. ‘몽유병’이 부부생활에 미치는 영향을 영화에서 잡아낸다. 영화가 시작되면 현수(이선규)의 나지막하게 코 고는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에 잠을 깬 수진(정유미)은 남편이 침대에 앉아서 “누가 들어왔어..”라는 잠꼬대를 듣는다. 현수의 수면장애는 시간이 갈수록 증세가 심해진다. 자기 뺨을 마구 긁고, 한밤에 깨어 냉장고를 열어 생..
2023.09.08 -
[달짝지근해:7510] 유해진-김희선, 궁극의 배합비율 (이한 감독,2023)
이전에 TV에서 식품업체 연구소에서 일하는 달인을 보여준 적이 있다. 끓인 라면을 한 입 맛보면서 그게 ‘무슨 라면인가’가 아니라, 어떤 물로 끓였는지를 알아맞히는 것이다. ‘생수’, ‘하루 전 받아놓은 수돗물’ 식으로. 정말 타고난 미각, 혹은 후각을 가진 사람은 그 재능을 십분 발휘하게 된다. 여기 그런 인물이 있다. 유해진은 제과업체 연구원이다. 최고의 맛을 알아내는, 그래서 그런 과자를 만들어 빅히트를 친 인물이다. 이 사람, 연애는 제대로 할까? 상대는 무려, 김희선이다! 치호(유해진)은 정해진 시간에 딱 일어나서, 출근해서는 종일 과자 맛만 본다. 점심도 연구실에서 혼자 과자만 먹는다. 현실감각은 제로이다. 그런 세상의 한편에는 일영(김희선)이 있다. 어릴 때 낳은 딸 진주(정다은)와 단 둘..
2023.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