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강홍: 사라진 밀서] "배고프면 오랑캐의 살로 배를 채우며,목마르면 흉노의 피를 마시리라" (장예모 감독)

2023. 11. 24. 11:26중국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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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강홍: 사라진 밀서

 지난 주 막을 내린 아시안게임은 중국 쩌장(浙江)성 항저우(杭州)에서 열렸다. 항저우의 서호(西湖) 인근에 악왕묘(岳王廟)가 있다. 우리나라로 친다면 ‘이순신’급 민족영웅으로 떠받드는 중화민족의 영웅 악비(岳飛) 장군의 묘이다. 중국 인구는 14억 정도이고, 다민족국가이다. 물론 한(漢)족이 90%이상을 차지한다. 중국도 오랜 역사를 거쳐 이민족의 침략을 받았다. 12세기경에는 북방민족이었던 여진족이 요나라를 멸망시키고 금(金)을 세운 뒤 남쪽의 송(宋)을 정벌하려 남하한다. ‘금’의 군사공세에 젊은 악비(岳飛)는 의용군에 입대하여 혁혁한 군사적 승리를 이끈다. 악비의 군대가 고군분투했지만, 송은 연전연패하더니 1126년 ‘정강의 변’이라는 일컬어지는 변고가 생긴다. 결국 송은 금나라에 패하고, 화북을 잃어버린 것이다. 당시 수도였던 개봉(카이펑)에서 송의 황제 휘종과 흠종이 금나라에 잡혀간다. 물론 황후와 모친들 그리고 후궁들도 금나라로 끌려갔고, 기방으로 보내진다. 휘종의 아홉 번째 아들인 조구가 임안(지금의 항저우)으로 가서 '남송'을 이끈다. 악비는 남송 제일의 명장이 되어 금을 토벌하고 영토를 수복하려고 하지만, 주화파(主和派)인 재상 진회와 대립하게 된다. 결국, 악비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임을 당한다. 이후 ‘악비’는 외세에 맞선 민족영웅으로 오랫동안 추앙받는다. 여기까지가 ‘악비’의 이야기이다. 금과 화친을 도모한 재상 ‘진회’는 ‘이완용’급 빌런으로 취급 받는다. 항저우 악왕묘에 가면, 입구 한 편에 무릎 꿇은 동상이 있다. 진회와 그의 패거리이다. 이곳을 찾는 중국인들이 이곳에 침을 뱉는 것은 오래된 전통이다.

장예모 감독의 영화 <만강홍: 사라진 밀서>는 악비가 죽고, 진회가 남송 정부를 좌지우지하던 때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죽은 악비가 산 진회를 죽이는’ 중국식, 장예모 스타일의 역사사극을 이제 만나보게 되는 것이다. 

만강홍: 사라진 밀서

영화는 ‘악비가 죽은 뒤’ 4년이 흐른 시점에서 시작된다. 금나라에 사신이 도착하고, 진회는 군사를 이끌고 금과의 회담을 준비하고 있었다. 회담 전날 밤 금나라 사신이 살해된 채 발견된다. 안 그래도 금과의 우호를 유지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진회로서는 이 사태를 어떻게든 해결해야한다. 그런데 전날 보초를 선 병사들을 취조하는 중 새로운 사실이 드러난다. 금나라 사신이 갖고 온 친서가 사라진 것이다. 그 안에 어떤 내용이 쓰여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엄청난 폭발력을 지닌 밀서임에 분명해 보인다. 진회는 소병 장대(선텅)와 통령 손균(이양천이)에게 한 시진(時辰)의 말미를 주고 밀서를 찾아내라는 엄명을 내린다. 목숨이 달린 둘은 사신 살해범을 알아내는 동시에 사라진 밀서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된다. 도대체 그 밀서에는 무슨 내용이 쓰여 있을까. 그리고, 누가 왜, 금나라 사신을 죽였을까.

장예모 감독은 <영웅>에서 <황후화>, <인생>, <5일의 마중> 등 중국의 파란만장한 역사 속에서 살려고 발버둥치는 인간의 이야기를 드라마틱하게 잡아낸다. 때로는 거대한 역사의 현장, 전장의 피울음을 전하고 때로는 그 역사의 바퀴에서 짓밟히는 민초를 극적으로 잡아낸다. 이번 <만강홍-사라진 밀서>에서는 외세의 침략을 받은 남송의 역사에서, 민족영웅으로 자리 잡은 악비 장군을 우국충정을 영화적으로 보여준다. 

만강홍: 사라진 밀서


‘진회’는 나라를 팔아먹은 막고의 역적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으며, 지금 황제보다 더한 권력가로 군림하고 있지만 자신의 안위를 누구보다 더 걱정하고 있다. 만약 그 밀서에 ‘금나라가 진회에게 전하는 어떤 은밀한 거래’라도 쓰여 있다면, 그리고 그 밀서가 유출된다면 이제 ‘진회’는 정말로 회복불능의 매국노가 되는 것이다.

진회의 엄명을 받은 통령과 소병은 그날 밤 숙소에 근무했던 병사와, 시중을 든 무희 등을 잡아들이고, 고문하기 시작한다. 조그만 실마리라도 발견하면 쫓아가서 확인한다. 그 과정에서 이번 살인사건에는 엄청난 음모, 천지개벽한 작전이 숨어있음을 알게 된다. 결국 사신 살해범이 잡히고, 음모의 주동자가 잡힌다. 그러면서 이야기는 ‘진회’를 향한다. 

사마천의 역사서 <<사기>>에는 ‘자객열전’(刺客列傳)이 포함되어 있다. 중국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자객(킬러)중에는 진시황을 암살하려던 형가의 이야기도 있다. 진시황을 다룬 영화를 보면 자객들이 황제 근처에 접근할 수도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구중궁궐에 들어갈 수도, 삼엄한 경비를 뚫을 수도 없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상상력이 보태져서 수많은 자객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진회’ 또한 마찬가지이다. 진회를 아무리 미워하고, 증오하고, 죽이고 싶어도 근처에 접근할 수도 없는 것이다. 만약 악비를 추종하는 세력이 진회를 죽여 원수를 갚으려고 한다면 어떤 방법을 사용할까? 이 영화는 바로 그 ‘신의 한 수’를 만들어가는 과정이 그려져 있다. 

만강홍: 사라진 밀서


<만강홍-사라진 밀서>는 중국의 역사를 알면 더 재밌지만 사실, 몰라도 상관없다. 하나의 탄탄한 스릴러이다. 칼이 난무하고 기이한 무공이 지배하는 액션물은 아니다. 시종일관 ‘범인을 찾아나가는 긴장감이 꽉 채워진 드라마이다. 

영화에서 악비의 부하 등에 ’정충보국‘(精忠報國)이라는 문신을 새겨진 것을 보여준다. 악비가 처음 금과 싸우기 위해 집을 나설 때 악비의 어머니가 아들의 등에 ’정충보국‘을 새겨주었다고 한다. 이후 악비를 따르는 군(악비군)의 모든 병사는 등에 저런 문신을 새겼다고 한다. (전해 오는 이야기에서 악비의 등에는 새긴 ’國‘에서 점(획)이 하나 빠졌단다. 금을 몰아내고, 이기고 돌아오면 마지막 점을 찍어주겠다고 했단다)

악비는 죽어서도 추앙받고, 진회는 죽어서도 침 세례를 받는다. 물론, 요즘 와서 역사적 평가는 달라지고 있다. 마치 <삼국지> 속 조조에 대한 평가처럼. 나라자체가 사라지는 판국에 외세와 타협하려는 외교주의자 진회를 너무 악당으로 만들어놓았다는 것이다. 마치 <남한산성>에서의 ’최명길-김상헌‘ 스탠스일 것이다. 여하튼 지금 중국 정부는 한족뿐만 아니라 소수민족도 끌어안아야하는 입장이라 여진-금나라를 예전같이 오랑캐로만 치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만강홍: 사라진 밀서


만강홍은 우리나라 중국집 이름으로 많이 사용되지만 엄청난 의미를 지닌 것이다. 악비가 썼다는 시(詞)의 제목이다. 마치 이순신 장군이 <한산도> 시조를 지었듯이, 전장에서 비분강개하는 기개가 절절히 녹아있는 명시이다. 이 영화에서 병사들이 큰 소리로 ’만강홍‘을 읊는 장면이 나온다. 아마도, 중국관객들은 그 순간 격정적으로 반응했으리라. 이 영화가 개봉된 뒤 ’악왕묘‘ 같은 곳에서는 ’만강홍‘을 외는 사람은 무료입장 시켜주는 이벤트도 펼쳤다고 한다. ('만강홍'의 작자에 대해서는 설이 많다. 하지만, 민족영웅 악비와는 떼어놓을 수 없는 우국충정의 시사(詩詞)이다.

일개 사병 장대를 연기한 배우는 선텅(沈騰)이다. 조석의 웹툰 ’문유‘를 원작으로 중국에서 만든 영화 <문맨>(獨行月球)에서 주인공을 했던 배우이다. 그리고 진회의 병영을 총지휘하는 통령이 되는 손균 역은 이양천새(易烊千玺/이양첸시)가 맡았다. 인기 아이돌 가수이자, <소년시절의 너> 등의 영화에 출연하여 국내에서도 인기가 많다. 요즘 여러 이유로 중국영화를 극장에서 만나보기 어려운데, 장예모 감독의 <만강홍-사라진 밀서>는 볼만한 역사물이다. 물론, 사전 배경지식이 있으면 더 좋을 듯하다.

 참, <만강홍>은 올 2월 중국에서 개봉되어 45억 4천만 위앤의 흥행수익을 올리며 중국 역대 6위의 흥행기록을 세웠다. 관객수로는 9180만 명이란다. 애국애족의 영화임에 분명해 보인다. <붉은 수수밭>,<원 세컨드>,<삼국-무영자> 등 화려한 필모그라피를 자랑하는 장예모 감독은 올해 73살이다. 

 

[리뷰] 만강홍: 사라진 밀서, "배고프면 오랑캐의 살로 배를 채우며,목마르면 흉노의 피를 마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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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강홍:사라진 밀서 ▶원제: 满江红/ Full River Red ▶감독: 장예모(장이머우) ▶출연: 이양천이(이양첸시), 심등(선텅), 뇌가음, 장역, 악운봉, 왕가이 ▶2023년 10월11일 개봉/15세이상관람가/1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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