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룡팔부:교봉전] 김용이 쓰고, 견자단이 보여준 ‘항룡이십팔장’

2023. 7. 22. 10:00중국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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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룡팔부 교봉전


신필(神筆)이었던 고(故) 김용(金庸/진융) 작가는 살아생전 모두 15편의 무협소설을 내놓았다. 홍콩 무협영화 전성기에는 그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와 드라마가 수도 없이 재생산되었다. 오랜만에 그의 소설을 영화로 옮기 작품이 극장에 내걸렸다. (그리고, 원작소설 챙겨보는 동안 이미 IPTV로 넘어갔다!) 지난 1월 25일 개봉되었던 <천룡팔부:교봉전>은 김용 작가가 1963년부터 홍콩의 <<명보>>(明報)에 연재하던 무협소설이다. 반세기 전에 나온 소설이지만 
지금 봐도 스케일과 캐릭터, 전해주는 정서가 가히 우주 급이다. 

● 김용과 무협소설

김용은 소설가이면서 언론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역사전문가이다. 그는 유장한 중국역사를 배경으로 수많은 인물이 얽히고설킨 사랑과 열정의 드라마를 유려하게 소설로 써내려갔다. 그의 소설은 읽으면 읽을수록 감탄하고 빠져들게 된다. (그러니 함부로 발을 들여놓지 말기를!) 중국어 표현에 ‘낙양의 지가(紙價)를 높였다’는 말이 있는데, 실로 김용은 자신의 소설로 ‘명보의 지가’를 올리는데 혁혁한 공을 쌓았다. 신문잡지의 연재소설의 힘(효용성)에 대해서는 아마도 100년 뒤 ‘언론학자’들이 연구해 볼 가치가 있을 것이다. 김용은 <서검은구록>부터 시작하여 <월녀검>에 이르기까지 모든 작품을 신문과 잡지 등을 통해 발표했다. 우리가 많이 아는 ‘사조영웅전’, ‘신조협려’, ‘의천도룡기’, ‘소오강호’, ‘녹정기’ 등이 모두 그의 작품이다. (동방불패, 동사서독, 독구구패 등은 다 김용의 원작소설에서 나온 것들이다)

 김용은 1955년에서 1969년까지 15년 동안 엄청난 스케일의 소설을 쏟아내고는 일순간 ‘무협소설’ 절필을 선언했다. 그리고는 언론인과 정치평론가의 삶을 산다. 그러면서 꾸준히 자신의 작품에 대한 수정작업을 진행했다. 주로, 인명과 역사적 배경에서 소소한 수정과 가필 작업을 한다. ‘천룡팔부’에서의 수정작업은 ‘중화사상’에 대한 그의 정치관이다. 한(漢) 중심의 세계관의 변화이다. 이는 정치적/역사적 맥락을 이해해야하는데 김용은 점차 확장된 역사관을 수용한 셈이다. 

● 천룡팔부(天龍八部)와 중국사

소설 <천룡팔부>는 북송(北宋) 연간의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당나라가 멸망하고 오대십국의 시대를 거쳐 세워진 송나라) 서기 1092년 전후이다. 당시 중국의 판도를 보면 수많은 왕조가 명멸하면서 결국 송이 중원을 차지하였고, 그 북쪽에 거란, 서쪽에 대리국이 있었다. 조금 시대를 올라가면 연(淵)이라는 왕조도 있었다. 많은 민족이, 왕조가 사라져갔지만 여전히 전란이 이어졌고, 망한 왕조의 후손들이 맹렬히 수복을 꿈꾸던 시절이었다. 특히 북쪽 국경을 맞댄 거란과 송은 원수지간이었다. 서로 죽고 죽이는, 불구대천의 관계였다. 그 국경지역 안문관에서 비극이 잉태한 것이다. 

 영화는 한 객잔에서 술을 마시던 교봉(견자단)이 한 무술고수 승려와 마주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영화는 이렇게 간단하게 처리되지만 김용의 소설에서는 훨씬 많은 이야기가 있다. <천룡팔부>는 기본적으로 세 남자 교봉, 단예, 허죽의 이야기이다. 이들이 서로 교류하며 유장한 이야기를 펼치게 된다. 소설을 읽은 독자는 작중 최고의 무술고수가 누구인가로 곧잘 입씨름을 펼친다. ‘북교봉남모용’(북쪽에는 교봉, 남쪽에는 모용박)이라는 말도 있고, ‘구마지-소원산’이라는 것도 있다. 수많은 등장인물 중 각자의 픽이 있을 것이다. 첫 장면에서 구마지가 저 정도 실력 밖에 안 되느냐고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하튼 구마지는 불의 장풍(화염도)을 선사하고, 교봉은 항룡이십팔장을 구사한다. 이렇게 일전을 펼친 뒤 교봉은 잡혀있는 공자(단예)를 풀어준다. 소설에서는 피가 끓고 가슴이 뛰는 장면이지만 영화로는 ‘CG가 거들 뿐’이다. 

천룡팔부 교봉전


 그리고, 영화는 <천룡팔부>의 메인 플롯으로 직진한다. 교봉은 개방(丐帮)의 방주 신분이다. ‘동사서독’의 홍칠공(장학우) 같은 인물이다. 중국역사에서 이런 존재, 무리, 문파가 있었느냐고 물어보지는 말길. 여하튼 거지 집단이지만 그들의 조국은 ‘송’이다. 거란은 불구대천의 원수이다. 그런데, 어제까지 대장으로 모시던 교봉이 알고 봤더니 거란 사람이었단다. 어찌된 일인가?

비극은 수십 년 전 안문관에서 시작된 것이다. 어느 날 송나라 각 문파에 긴급 서안이 전달된다. 거란의 무술고수가 소림사를 습격, 소림사의 무술비결을 훔쳐갈 것이란다. 안 그래도 극강의 무술인이 있다는 거란이 소림비급까지 익히면 송은 큰일 날 것이다. 그래서 각 문파들이 서둘러 안문관으로 달려가 막기로 한다. 그때 그 곳에 나타난 인물은 거란의 ‘소원산’이었다. 소원산은 아내와 갓 태어나 아이와 함께 고개를 넘고 있었다. 10여 명의 송나라 무술고수들은 잔뜩 긴장하여 기습전을 펼친다. 아내가 죽고, 갓난아기도 땅에 떨어진다. 소원산은 미친 듯이 10여 명의 절대고수들을 엄청난 공력으로 순식간에 해치운다. 그러더니. 아내의 주검을 끌어안고 통곡하더니 죽은 아이를 껴안고는 천 길 낭떠러지로 뛰어내리는 것이다. 앗! 그런데 죽은 줄 알았던 아이가 살아있었다. 추락하는 순간에 절대무공으로 그 아이만을 사뿐하게 공중으로 던져 무사히 착지시킨다.  안문관에서 살아남은 무술고수들은 그제서야 자신들이 사람을 잘못보고, 생사람을 죽인 것을 알게 된다. (거란과 송을 이간질 시키려는 누군가의 음모였다!) 그때 일을 일절 비밀로 부치기도 한다. 그 아이는 소림사 절 밖에 ‘교삼괴’라는 노부부의 손에 맡겨진다. 아이는 소봉이 아니라 교봉으로 자란다. 교봉은 소림사에서 절대 무공을 익히고, 무공과 인품으로 개방의 방주 자리에 까지 오른 것이었다. 

천룡팔부 교봉전


영화 <천룡팔부 교봉전>은 김용의 대하무협소설에 나오는 수많은 인물 중 ‘교봉’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다. 자신을 당연히 송나라 사람인줄 알았고, 그렇게 성장하고 절대무공을 익혔지만, 어느 날 자신의 출생의 숨겨진 비밀을 알게 되고는 절망하게 되는 인물이다. 그런데 교봉(소봉)의 이후 행로가 독자의 심금을 울리게 된다. 장대한 땅에서, 유장한 역사에서 인간의 길이, 무인의 삶이, 정인(情人)의 선택이 어떠함을 몸소 보여준다. 교봉만큼 그의 친부 소원산의 행적도 흥미롭다. 물론, ‘아주’와 ‘아자’라는 캐릭터도 이 영화를 지탱하는 힘이다. 


 원작소설에는 철가면 유탄지가 등장한다. 이 영화에서 ‘아주’(진옥기)가 악인의 얼굴에 독극물을 뿌리는 이야기가 나온다. 소설에서 유탄지 이야기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리고, 후반부에 아자가 자신의 친부(단정순)를 두고 교봉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장면이 있다. 이 때 교봉이 단정순의 거실 벽에 붙어 있는 액자 속 글자를 보면서 뭔가를 깨닫게 된다. (교봉이 방주에서 쫓겨날 때 편지 속 필체와 다르다!) 김용의 소설은 길고, 영화도 많이 만들어지다 보니 이제 어떤 캐릭터가 어떤 이야기를 펼쳐야하는지 알 것도 같다. 

 결국, <천룡팔부>는 애국애족의 칼부림 속에서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한 순정남과 그를 사모하는 여인의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격정 멜로물인 셈이다. 아자(阿紫)의 친모 완성죽 역을 맡은 배우는 혜영홍이다. 

▶천룡팔부교봉전(天龍八部之喬峰傳) ▶총감독:견자단 ▶제작:왕정 ▶출연: 견자단(교봉) 진옥기(아주), 류아슬(아자) 완성죽(혜영홍) 오월(모용복) 장조휘(단정순) 왕군형(마부인) 두옥명(백세경) 여량위(모용박) 소소명(구마지) ▶2023년1월25일 개봉/1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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