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명선언] Roots

2008. 2. 15. 22:48다큐멘터리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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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by 박재환 1998/10/30]
   일요일 저녁 8시 KBS 1TV에는 <일요 스페셜>이란 프로그램이 방영되는데 가끔가다가 놀랄만큼 괜찮은 다큐멘타리를 보여준다. 최근 보여준 것은 <본명선언>이라는 작품이었다. 얼마 전 (1998년) 3회 부산국제영화제 와일드 앵글부문에서 상영된 영화이다.  
 
(며칠 전 이 영화의 표절시비가 일면서 전혀 뜻밖의 이유로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지만 말이다.)

   이 다큐멘타리의 내용은 일본에 사는 우리 교포-특히 조국의 혜택은 거의 받지 못한 채, 그것이 그들의 굴레가 된 3세, 4세-들의 한글이름 쓰기에 관한 이야기이다. 사실 이러한 내용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담담하게 다큐멘타리로 만들어 보여주니 조금 다른 맛이 난다. 실제로 일본에서 사는 우리 교포의 90%는 현재 일본이름을 사용한다고 한다.

   한번 보고 그냥 "아..이런 다큐멘타리구나.."라고 지나갔는데 뜻밖에도 이 영화의 작품성과는 상관없이 "표절이네 아니네"부터 시작하여, "무책임한 언론 어쩌구" 하는 말까지 나오는 등 전혀 다른 이유로 거론되기에 오늘 아침 일찍 녹화한 것을 한번 더 보게 되었다. 사실 이 다큐멘타리는 <낮은 목소리>와 같은 '프로페셔널'한 느낌은 없다. 다큐멘타리의 힘은 예술성도, 가식성도, 첨단성도 아니다. 단지, 카메라 렌즈의 차가운 응시와 연출자의 뜨거운 가슴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진실되게, 힘차게 내용을 전하느냐가 관건인 셈이다. 요즘와서 케이블T.V.의 <Q채널>이랑 <CTN>을 자주 시청하게 된 나로서는 다큐멘타리의 묘미는 어떤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과 재미, 그리고 강압하지 않는 잔잔한 즐거움에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이 영화 또한 그런 의미에서 가슴에 와닿는 잔잔함과 감동을 안겨준다.

  이전에 (학교 다닐 때) <<중국현대사특강>> 이라는 과목을 백영서 교수님(현재 연세대 재직 중)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그분의 강의중 아직도 기억에 남는 것은 "역사란 무엇인가..." 라는 내용이었다. 천안문사태도, 중일전쟁도,.. 모든 것을 거시적으로 엄청난 것으로 보는 것보다, 우리 주위의 잔잔한 이야기들, 살아있는 이야기들..그런 것들이 오히려 역사적인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하시면서, 연구도 좋지만 비디오카메라 들고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할아버지 할머니의 육성을 채록하는 것 또한 역사학도의 진정한 임무일 수 있다고 하셨다. 그러고 보니, 일전에 TV를 보니, 광주 지역의 한 영상집단이 광주항쟁의 기록물을 꾸준히 비디오로 채록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수백 개의 비디오 테이프에 실린 살아있는 광주사람의 말들이 언젠가는 <쇼아>같이 나오겠지... 이처럼 역사를 기록하는 마음으로 렌즈를 갖다대는 정신이 살아있는 작품이 바로 이 작품 <본명선언>이었다.

  일제시대 강제징용으로 끌려갔다가, 일본의 패망후에도 귀국하지 못한 채, 이국 땅 일본에 남아서 자리잡고 사는 우리 교포는 수십만에 이른다. 그리고, 그들의 2세, 3세가 이미 일본속에서 일본인으로, 여전히 한국인의 피를 가진 채, 일본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들은 좋아서 그 땅에 떨어진 것도 아니요, 좋아서 일본이름으로 불리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데는 사실 관심도 없었다. 가끔 텔레비전에 교포랍시고 한국말 더듬거리면 (조치훈이 바둑으로 그렇게 명성을 떨치는 것을 보며 감개무량해하면서도 한국말을 웅얼거리면 그야말로 분노의 지경에 이른다!) 저놈의 개자식, 한국놈이란 자식이 한국말도 제대로 못하냐.. 는 식으로... 좋은 우리 이름 놓아두고 왜 일본이름 갖다 붙이냐..이 후렛 자식..이런 식으로... 아주 단세포적으로 판단하고 있었다.

  오사카의 한 고등학교에서는 해마다 한번씩 전교생이 모인 가운데 어떤 총회가 열린다. 한국동포회가 주축이 되어 지원자에 한해서 자신은 "한국인이며, 자신의 한국이름이 이러이러하므로 앞으로 이렇게 불려달라.."는 선포식 <본명선언>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 본명선언을 준비하는 몇 주 전부터 어린 교포학생은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된다. 많은 한국인들이 왜 모두들 본명선언을 하지 않는지, 왜 이런 행사를 통해 한해 한두명 만이 겨우 본명선언을 하게 되는지.. 우리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올해는 불행히도 한 학생도 본명선언에 지원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막판에 이준치의 본명선언이 유일하게 있었다......

  그런데, 사실을 알고 나면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90% 이상이 우리 이름보다는 일본이름을 사용한다고 한다. 이른바 이준치(李俊治)라는 본명보다는 슈운지라는 통명으로 불리는 게 현실이다. 왜 그럴까. 한국인임을 숨기고 사는 것이 그들에겐 낫기 때문이다. 조금의 덕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일생의 전체를 좌우하는 엄청난 조건이 되는 셈이다. 이 다큐멘타리에서는 학교의 어린 학생들에게 촛점을 맞추어 조금 산만하고 (진짜 다큐멘타리같은) 소박함이 넘쳐난다. 만약 그들의 아버지의 이야기를 필름에 한 컷트라도 담았다면 더욱 가슴에 와 닿는 작품이 되었을 것이다. 이 작품에서는 단지 학생들의 대화에서 그들의 아버지 세대의 반응이 나온다. "아버지는 반대하셨어요.."라는 식으로.. 이 지나가는 대사속에는, 사실 우리가 짐작할수 있는 수십 년의 차별대우의 눈물어린 사연이 스려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우리의 어린 학생이 그러한 사회와 인종의 차별에 분연히 맞서 본명선언을 하는 것이다. 그 많은 한국 학생들중에서 단지 한 학생만이 말이다. 작년에도 본명선언을 한 학생이 있었고, 그 전에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 중에는 이제 본명쓰기를 포기한 사람들도 있고, 여전히 한국이름을 쓰는 사람이 있다. 이름은 자신이 한국인임을 알리는 동시에 이제 일본사회에 편입될 수 없는 자기선언이 되는 셈이다.

  이 다큐멘타리에서 초반에 보여준 교포 자녀들의 운동회 장면... 줄다리기, 달려가서 칠판에 한글이름 을 쓰고, 김치 하나 집어먹고 골인점으로 달려가는 어린이들의 장면에서 어떤 동질감을 느끼며 가슴이 뭉클해짐을 느꼈을 것이다. 어떤 아이는 손바닥에 써놓은 자기의 한글이름을 보며, 진짜 "한글"을 그리기도 하고, 어떤 아이는 김치를 물에 씻어서 먹기도 한다. 그리고, 인터뷰에서 자기의 "한글이름"을 자신있게 말하는 아이도 있었고, 일본 이름이 더 낫다고 말하는 아이도 있었다. 그들은 이제 좀더 자라나서 심각하게 자신이 한국인인지 일본인인지를 결단 내려야 할때가 될 것이다.

  연변에 사는 사람들 대부분은 우리 민족이다. 핏줄의 정체성으로 보자면 말이다. 하지만 그들의 사고방식은 이미 중국적이며, 그들은 핏줄보다는 국적을 상위개념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짙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그러한 국적과 민족의 정체성이 언제나 억압과 배신, 진실된 용기, 혹은 비굴함 등으로 왜곡되어 나타난다. 장훈 같은 야구선수는 차별을 이기기 위해 더욱 전투적으로 자신을 학대했을 것이고, 많은 유능한 인재들이 자신의 한국핏줄을 끝없이 숨기려고 한다. (<러브레터>의 남자주인공이 한국 핏줄임을 굳이 숨기려 했다는 이와이 슈운지 감독의 인터뷰기사를 보고 한편 놀라면서 한편 이해가 갔다....)

  불행히도 우리는 그러한 일본내의 차별에 대해 솔직히 자신있게 손가락질할 수 있는 형편이 못된다. 우리나라에도 일본에서의 일본인이 갖고 있는 그러한 외국인 차별에 버금가는 지독한 자국중심적 우월감과 배타감이 철철 흘려넘치기 때문이다. 실제 우리나라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제노포비아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이다. 그리고 그 이중성.. 미국같은 선진국가에 대한 끝없는 외경심과 따라하기, 그리고 그와 동일하게 파키스탄 등 제 3세계국가 노동자에 대한 착취와 폭력을 생각해 보라. 우리네는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는 우리만의 선진문명국인 셈이다.

<라이언 일병구하기>에서 또 다시 미국의 힘을 느낀 것은 그들은 결코 미국인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요즘도 미군당국은 북한에서 625때 행불된 미군을 찾아 헤매고 있다. 첨단 과학장비를 동원하여 뼈조각이라도 찾아 그들의 땅으로 데려가는 것이다. 같은 동포인 북한은 그런 미국당국으로부터, 시체 한 구당 얼마씩 받고 말이다....... 우리는 일본에 있는 동포에 대해선 애당초 관심도 감정도 없다. 있다면 선거권을 주어야 하니 말아야 하니 하는 지극히 정치적인 관심사항 뿐이다. 그것은 아마도 우리민족 특유의 지독한 우물안 습성 때문일 것이다.

  한편, 그렇게 난관을 뚫고 싸워온 많은 우리의 동포가 조치훈처럼, 장훈선수처럼 우뚝 설 수 있는 것이다. 수백만 중에 겨우 몇 명만이....

  이 작품에서 시간의 경과, 장면 전환에서 자주 사용된 롱샷은 담담하게 아름다왔다. 철길. 길목. 도로. 일출. 일몰. 도시전경...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의 준치의 바이올린 소리가 BGM으로 연결되며, 이어진 자막처리도 인상적이었다.

1998.9.5일자 한겨레신문

"조선인은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

  최근 북한이 대포동 미사일을 발사했다는 보도 이후, 재일동포 사회는 긴장감에 쌓여 있다..(중략) 어린학생들은 입고 있던 치마저고리를 찢기고 칼로 협박을 당하기도 했다...(중략)

  학교 관계자는 이렇게 당부하고 있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선 한국 말로 크게 떠들지 말라"

  그리고, 내가 이 영화의 원본(?)- 모티브가 된 <흔들리는 마음>을 보지 못해서 뭐라고 말은 못하겠지만, 짐작은 간다. 같은 소재를 다루는 한국인의 시선은 같을 수 밖에 없으리라. 차라리 양영희 씨의 제목이 훨씬 교포들의 심리상태를 직설적으로 표현한 것일 수도 있다. 영화를 보면 작품을 보고 논해야 한다. 표절일 수도, 도용일 수도, 창작일 수도 있는 이 모든 상황에서 왜 모두들 본질은 잊고 있을까.

 작품으로 보자면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그 창작정신과 애써 외면하려는 사실에 대해 알리려는 그 마음을 높이 평가한다. 일본을 욕하기에 앞서 우리의 닫힌 마음을 여는 계기가 되었음 한다.

Reclaiming Our Names (1998)
연출: 홍형숙
제작규격: DV
프로듀서: 강석필
음악: 마도원
편집: 홍형기
나레이터: 방은진

다큐멘터리제작집단 서울영상집단 <본명선언>
홍형숙 글 (신동아 98년 11월호)
재일교포 그들은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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