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 호크 다운] 두 가지 시각의 전쟁영화

2008. 2. 24. 15:04미국영화리뷰




[Reviewed by 박재환 2002-1-31]

  자, 여기 <룰스 오브 인게이지먼트>가 있다. 북부 아프리카 예멘의 미 대사관앞에서 일단의 예맨인들이 모여 돌발적 반미시위를 벌이기 시작한다. 참가하는 사람은 점점 늘어 수백명이 되었고, 처음엔 돌멩이를 던지던 시위대 무리 중간중간에 무장한 민병대들이 나타나서 총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미대사관을 보호하던 미 해병대는 총격이 쏟아지자 즉각 응사한다. 물론,막강한 미군의 화기에 총을 든, 조금이라도 군사훈련을 받은 민병대는 다 도망가고 죽어 널부러진 사람은 대부분 아녀자, 민간인일 수 밖에 없다. 6.25와 노근리 사태를 기억하는 우리 민족으로서는 미국의 이러한 행동이 당연히 만행이고 성조기 하나 나부끼면 전부 '미국 만세'를 외치는 미국이 아니꼬울 수 밖에 없으리라. 그런데, 그 동안 미국에선 9·11테러가 일어나 월드트레이드센터 쌍둥이 빌딩이 폭싹 무너지고 미군은 아프가니스탄을 초토화시켜 버렸다. 그리곤 한껏 고조된 미국인의 애국심은 <블랙호크 다운>이라는 새로운 전쟁영화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이 영화를 어떻게 봐야 하는가.

  영화는 소말리아의 군벌을 잡기 위한 미군 특수부대의 활약상을 그린다. 물론, 그 작전은 성공하지도 않았고 미국이 이긴 전투라고도 할 수 없다. 하룻밤의 전투는 미군 19명 사망에 소말리아인 1,000명 사망이라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당연히 <룰스 오브 인게이지먼트>의 시각이  따른다. 미군이 무고한 양민을 대량학살했다고. 과연 그런가? 

  소말리아는 아프리카 동북부에 위치한 인구 700만 정도의 나라이다. 90년 대초 계속되는 기근과 종족분쟁, 쿠테타 등으로 100만 명이 죽어나간 곳이기도 하다. 아프리카 대부분의 국가들이 그렇듯이 이곳에는 서구에서 군사교육을 받은 몇몇 군장성들이 정권을 장악하고 철권통치 군벌정치를 펴는 것이다. 소말리아도 마찬가지이다. 이탈리아의 식민지 국가였던 소말리아에서도 몇차례 쿠테타가 거듭되고 정권을 잡은 자, 아니 정확히는 소말리아의 가장 많은 지역을 군림하게 된 자는 모하메드 파라 아이디드 (Mohammed Farrah Aidid)이다. 소말리아에서 수백 만명이 기근에 죽어가자 정의의 UN, 평화유지군과 너무나 인간적인 서구의 평화단체는 벌떼처럼 일어나 구호 활동을 펼치기 시작한다. 유엔 소말리아평화유지군(UNOSOMⅡ)에는 우리나라 유엔 평화유지활동(PKO) 공병부대 등이 포함되어 있다. 미군만 가 있는 것이 아니고 파키스탄 등 모두 28개 국이 평화의 이름으로, 그리고 소말리아 평화성립 이후의 과실을 따먹기 위해 나가있다. (우리나라만 평화를 위해 나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참으로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사고방식이다!) 이 영화 첫 장면에서는 아주 간단하게 소말리아의 현실이 '인상적으로' 묘사된다. 미군 헬기가 공중에서 엄호하고 있는 가운데 유엔 식량구호 트럭이 소말리아 민중들에게 쌀을 실어나른다. 수백 명이 트럭에 몰려들고 쌀을 배급/혹은 강탈하러하자, 갑자기 일단의 무장한 트럭이 나타나 민간인에게 총탄을 퍼붓기 시작한다. "이 식량은 아이디드 사령관님 것이다."라고 선포한다. 공중에서 헬리콥터도 이 상황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는 미군의 대화. "맙소사. 저놈들이 민간인을 학살하고 있어!" 사령부와 무전으로 통화한다. 하지만 사령부의 명령은 간단하다. "우리가 총격받았어? 총격받지 않은 이상 절대 쏘지 마라!"

  미군은 처음부터 소말리아에 들어가고 싶지도 않았다. 그 몇해 전부터 계속되던 유럽의 화약고 보스니아 내전에서 미국은 어설픈 개입이 얼마나 큰 화를 불러오는지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 아프리카에 위치한 작은 나라, 지독히도 못 사는 나라에서 저것끼리 치고박고 싸우는 것이 미국 땅에는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도 소말리아가 어느 구석에 붙었는지 모르는데 말이다) 하지만, 언젠나 음모론자는 있기 마련이다. 공산주의/이슬람/흑인 천지인 아프리카에 친미 국가를 세워 둬야 장기적으로 미국의 국익에 이로울 것이고, 소말리아에 석유가 있으니 당연히 미국이 소말리아를 접수/혹은 친미 정권을 수립해야한다고 주장 때문에 미군은 반드시 진주할 것이란 분석이다.

  미국 의회와 각종 민간단체의 압력에 의해 미국 정부는 소말리아에서 적극적으로 개입하기도, 그렇다고 완전히 손을 털고 나오리고 뭐한 어정쩡한 입장이 되고 말았다. 이때 <블랙호크 다운>이라는 비극적인 사건인 생긴 것이다. 1993년 10월 3일 오후 3시부터 15시간 정도 일어난 군사작전이다.

  미국의 뿌락치(그게 CIA 하수인이든, 미군의 똘마니든은 중요치 않다)가 입수한 정보에 의하면 소말리아의 수도 모가디슈의 복잡한 시장골목의 한 건물에서 아이디드의 각료급 모임이 있다는 것이다. 미국 행정부-국방부의 압력으로 하루라도 빨리 소말리아 사태를 해결하고 싶었기에 이날 아이디드 체포작전이 펼쳐지게 되는 것이다. 작전은 전광석화처럼 이루어져야한다. 레인저부대, 델타 포스 등이 무장 헬기의 엄호 속에 건물주위를 봉쇄하고 신속하게 침투, 목표물을 체포, 험비(장갑차같이 생긴 장갑이동차량)에 싣고 미군 주둔지역으로 빠져나오면 작전 끝이다. 30분에서 1시간이면 모든 작전은 종료될 것이다.

  하지만, 민병대의 화력을 과소평가했고, 시가전의 특성을 무시한 결과는 참혹했다. 블랙호크 헬기가 잇달아 추락하고 조종사를 구하기 위해 전투병이 투입되고 모가디슈의 시내에서 포위되어 하루 밤동안 치열한 전투를 치르게 되는 것이다.

  이 영화가 묘사하는 부분은 100%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단다.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의 마이크 보우덴 기자가 당시 참전 군인을 인터뷰하고 소말리아 현지취재결과 내놓은 <블랙호크 다운:현대전쟁에 관한 이야기>를 기반으로 시나리오가 작성되었다.

  CNN에서는 9·11테러이후 아프가니스탄 전이 전개되기 전에 당시 소말리아 전투에 참여했던 레인저 부대원의 인터뷰를 실은 적이 있다. "그때까지 우리는 수적으로 10대 1 정도 열세였다. 전투가 끝났을 때 부상자가 76명, 사망자가 18명이었다. 사망자 중 여섯 명은 우리 동료였다. 델타 포스의 희생자는 서너 명 정도였다. 나머지는 모두 헬리콥터 승무원들이었다. 나중에 적십자사로부터 소말리아군의 사상자는 1천명이 넘는다고 들었다. 우리가 지상전투에서 사망한 10명을 포함, 모두 18명만을 잃은 것은 고도로 훈련됐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정말이지 대단히 훌륭했다."고 회고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보면 미군의 월등한 화력을 충분히 짐작할 것이다. 하지만, 이날 전투는 도심 한가운데에서 벌어지는 시가지였기에 대량살상 무기는 사용할 수도 없었고, 1시간만에 끝내는 전투라 생각했기에 그다지 중무장하지도 않았다. (대낮에 잠깐 끝날 것이라 생각하여 야간투시경도 부대에 두고 전투에 참여한다!)

  골목골목마다 수백 명의 소말리아 인들이 총과 로켓포를 들고 미군을 압박해온다. (우리나라 사람은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지만 미국인들이 가장 환호성을 보낼만한 장면은 밤 12시가 넘어 벌어지는 전투에서 미군 코브라 헬기가 건물 위에서 미군에서 조준사격을 하는 수백 명의 소말리아 민병대에게 무차별 기총사격을 하는 장면일 것이다.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호쾌한 싹쓸이 스타일의 총격전이다.)

  이 영화의 제작자는 <진주만>의 제리 부룩하이머이고, 감독은 <G.I.제인>, <글래디에이터>, <한니발>,그리고 <블레이드 러너>의 리들리 스콧이다. 리들이 스콧 감독은 어설프게 이 영화에서 휴머니즘이나 국제정세의 복잡함을 설파하지 않는다. 남성영화 전문가답게 그는 마치 다큐멘타리를 찍던 전투의 진행을 정공법적으로 묘사해 간다. 영화에서 감독혹은 작자의 의견은 몇 차례 등장인물의 대사를 통해 피력된다. "미군이 아이디드를 처단하면 여기에 평화가 온다고? 웃기지 마. 그 자리에 또다른 놈이 들어설 뿐이야." 라는 대사는 시니컬한 현실인식의 일단이다.

  <라이언 일병구하기>가 초반 15분의 장대한 화력으로 나머지 시간을 유지했다면, 이 영화는 초반 15분만 조용하고 나머지는 치열한 총격전으로 장식되어 있다. 밀리타리 액션팬, 전쟁영화 애호가라면 이 영화 꼭 볼 것을 권한다. 어제 시사회에서 이 영화를 봤는데 우리 집사람은 눈앞에서 피가 튀고 사람이 죽어나가는데 "지루하다"며 졸더다. 여성 편에겐 다소 지루한 면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현역병장-상황병(행정병인 셈^^)출신의 필자는 정말 시간가는 줄 모르고 몰입하며 이 영화를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