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5. 2. 10:55ㆍ한국영화리뷰
디즈니플러스에서 공개된 8부작 드라마 <하이퍼나이프>(감독:김정현)는 메디컬드라마의 외피를 두른 심리스릴러이다. 주인공은 ‘뇌’수술에 관해서는 탁월한 실력을 가진 두 명의 외과의사이다. 한 사람은 의학도라면 누구나 닮고 싶어하는 화타의 실력을 가진 의대 교수 최덕희(설경구)이다. 어느 해인가 그의 수술실에 영민한 학생, 정세옥(박은빈)이 들어온다. 세옥은 스승이 가진 모든 의술을 흡수하여 제 것으로 만들고 싶어 안달이 나있다. 스승은 그런 열정적 제자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하다. 그런데, 청출어람(靑出於藍), 후생가외(後生可畏)이다.
제자의 실력은 분명 자신의 자신을 뛰어넘을 기세이다. 그런데 그 제자가 두렵다. 히포크라테스의 고귀한 선서는 어디 가고 제자는 오직 뇌수술, 인간의 뇌에만 관심이 있다. 메스를 들고, 머리를 파헤쳐 뇌를 헤집으며 골 사이의 악성 종양을 제거하여 인간의 병변을 정복하는 것에서 희열을 느낀다. 세옥에게는 그 희열만이 삶의 목적이며, 의사로서의 존재의의라고 생각한다.
<하이퍼나이프>는 기존의 메디컬 드라마와는 결을 달리 한다. 긴박한 종합병원 응급실에서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는 의학적 지식과 외과적 수술 실력을 과시하는 드라마도 아니고, 모든 게 어리숙한 입문자가 극한의 상황을 거치면서 인간적으로 성숙하는 성장드라마도 아니다. 그리고, 너무나 한국적이랄 수 있는 연애담론도 아니다. 마치 모차르트가 가진 천부의 재능을 질투하는 살리에리처럼, 탐나는 것은 모두 빼앗아 오롯이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유아적 집착과 승부욕만이 펼쳐진다. 그런데 그 주인공이 스승과 제자이다.
예전에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던 이은성 작가의 <소설 동의보감>에서는 천하의 명의 허준이 스승 유의태에게서 마지막으로 의술을 배우는 장면이 감동적으로 묘사된다. 허준은 밀양 얼음골의 냉랭한 동굴 안에서 스승의 시신을 해부한다. 스승의 육신을 대상으로 인체 장기의 기능을 하나씩 확인하는 것이다. 스승은 마지막으로 아끼는 제자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몸을 내어주며 ‘의술’을 전수하는 것이었다. 아마도 최덕희 교수는 자신의 뇌를 제자에게 직접 제공하고 싶은지 모른다. 성공하면 성공하는 대로, 실패하면 실패하는 대로 제자는 더 큰 깨우침을 얻는 구조이다.
김정현 감독은 범죄 스릴러로 문을 연다. ‘랑종’에나 나올 것 같은 폐(廢)사찰에서 이뤄지는 조폭보스의 뇌수술을 보여주더니, 수술의 성공에 이어 곧바로 살인을 마다하지 않는 잔혹한 면을 보여준다. 회가 거듭하면서 정상궤도에서 한참이나 벗어난 듯한 세옥의 모습을 보여주는 한 편 최덕희 교수와의 오래된 악연을 조금씩 집어넣는다. .
분노에서 시작되는 세옥의 광기와 덕희의 알 수 없는 행동이 이어지더니, 마침내 <하이퍼나이프>는 메디컬드라마도, 범죄물도, 멜로물도 아닌 기묘한 결승전에 도달한다. 최고의 경지에 도달한, 최고의 실력자만이 공감하게 되는 환희의 순간을. 그것은 무도(武道)도, 바둑도 아닌 뇌수술 현장에서 ‘물아일체’된 스승과 제자만이 만족할 절정의 순간인 것이다. 그리고, 그 때서야 'Dis-moi, je t'aime'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하이퍼나이프 ▶감독:김정현 ▶각본:김선희 ▶출연: 박은빈 설경구 윤찬영 박병은 유승목 ▶공개:디즈니플러스 2025.3.19~4.9 (총 8부)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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