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에서나 만나볼 수 있던 중국영화가 조금씩 국내극장에서도 소개되고 있다. 9일 개봉되는 [내가 날 부를 때](원제:我的姐姐)는 올 4월 중국에서 개봉되어 8억 5천만 RMB(1533억 원)의 흥행수익을 올린 흥행작품이다. 중국의 스타급 감독의 작품도 아니고, 흥행 대배우가 출연하는 영화도 아니며, 중국공산당 창당100주년에 즈음하여 최근 몇 년간 극장가를 호령한 중국현대사 관련 영화도 아닌데 이렇게 높은 흥행수익을 올린 것은 특별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는 현재의 중국 여성의 지위를 엿볼 수 있다. 중국에서의 여성 지위라니? 우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자유롭고, 자의식 강하고, 존중받을 것 같은데 말이다.
영화는 중국 사천성 성도(成都 청뚜)를 배경으로 한다. 집을 떠나 간호사로 힘들게 일하며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고 있는 안란(장쯔펑)에게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전해진다. 아버지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것이다. 서둘러 장례식장에 달려왔는데 몇 번 본적도 없는 어린 남동생 쯔헝(김요원)이 있다. 고모도, 외삼촌이 안란에게 그런다. “이제부터 쯔헝이는 네가 키워야한다.” 안란의 생각은 다르다. 동생에겐 특별한 정도 없고, 자기는 자신의 삶이 있다고. “쯔헝이가 불쌍하면 직접 키우시든지. 아니면 입양 보내겠다.”고 모질게 말한다. 안란이 하나뿐인 혈육을 왜 그렇게 모질게 대하는지, 그리고 자신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는 점차 밝혀진다.
영화 [내가 날 부를 때]가 중국에서 흥행성공을 거둔 것은 ‘공감’의 문제일 것이다. 중국관객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친누나’가 어찌 그럴 수 있느냐는 시선으로 영화를 보게 될 것이다. 물론, 영화는 그런 결말을 보여주지 않는다. 티격태격 대며 부대낀다. 우여곡절 끝에 누나는 동생을 거두어들인다. 중간에 중국 문인 조식(曹植)의 '칠보시'(七步詩)가 나온다. 물론, 그런 결말에 대해 또 다른 논란이 인다. 결국 그런 결말을 위해 그런 소동을 펼친 것이냐고.
중국은 오랫동안 ‘한 자녀 정책’(獨生子女政策)을 펼쳤다. 인구가 너무 많다보니, 인구문제가 국가적 존망의 문제였던 것이다. 1980년대 초 중국은 ‘한 자녀 정책’을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산아제한정책에 따른 각종 부작용이 속출했다. 호적에 올리지 못하는 아이가 1억이 넘는다는 통계, 그리고 여자아이가 태어났을 경우 버리거나 죽인다는 이야기까지. 전통적 남아선호사상의 동양문화권에서는 심각한 문제이다. 영화 [내가 날 부를 때]의 안란은 열여섯 살 터울의 동생을 갑자기 맡게 될 때 혼란을 겪게 된다. 안란은 부모님이 남긴 물건 중에 옛날 편지 한 통을 보게 된다. 기관에 보내는 탄원서이다. “우리 딸애가 다리 장애가 있으니, 둘째를 낳을 수 있도록 허가를 요청드린다.”는 내용이다. 안란은 어릴 적 한 순간을 떠올린다. 집에서 무용 연습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공무원이 불시방문을 한다. “아니, 아이가 멀쩡하잖아요.” 그날 안란은 아버지에게 심하게 맞는다.
영화에서는 중국에서 여자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부조리하고 불공평한지 거듭 보여준다. 그런 부당한 대우를 고스란히 받으며 자란 ‘고모’의 반응을 보자. 잘못된 관행, 문화를 바꾸려는 의지를 보일까? 산부인과에서 목격하는 끔찍한 모습과 겹친다. (어쩌면 'DP'의 주제와 마찬가지인지 모른다. ‘뭐라도 해야 바뀔 것’이라고.)
‘안란’은 그런 중국사회의 변화를 요구하는, 몸소 실천하려는 인물이다. 물론, 그러기엔 남동생이 눈에 밟힐 것이다. 한국 관객은 여주인공의 과장된 ‘인연 끊기’. ‘홀로 서기’의 모습이 불편할 수도 있을 것이다.
주인공 안란을 연기한 장쯔펑을 오래 전 펑샤오강 감독의 재난영화 ‘대지진’(2010)에 출연했었다. 이 영화는 1976년 7월 28일 발생한 중국 당산대지진을 배경으로 한다. 27만 명이 희생당한 중국 현대사 최악의 재난이다. 영화에서 지진이 발생하고 무너진 건물 잔해 속에 쌍둥이가 매몰된다. 엄마는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한 쌍둥이 중 한 명만을 구해야 하는 운명의 선택 앞에 놓인다. 남자냐 여자냐. 그때 그 여자아이를 연기한 배우가 장쯔펑이다. 이번 [내가 날 부를 때]에서 남동생 연기를 훌륭하게 해 낸 김요원 아역배우는 아버지가 한국인, 어머니가 중국인(홍콩)이란다. 한 번 더 눈이 갈 것이다.
이 영화가 중국판 [82년생 김지영]이라고 하는 이유는 그런 이유 때문이다. 김지영은 김지영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그리고 김지영만이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중국영화 한 편 보시고, 고전적 문제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참, 중국은 2016년 1월 1일부터 '1자녀 정책'이 폐지되었다. 공식적으로 '2자녀'정책이다!
▶감독:인뤄신(殷若昕) 극본:요우샤오잉(游晓颖) 출연: 장즈펑(张子枫 안란), 김요원(金遥源,란쯔헝), 샤오양(肖央, 외삼촌), 쥬위앤위앤(朱媛媛 고모) ▶2021년 9월 9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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