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 청=세로상] 어린이의 눈으로 본 1997년 홍콩

2008. 2. 23. 08:58홍콩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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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ed by 박재환 2001-8-18]  홍콩영화계의 걸출한 독립영화인 프루트 챈 감독의 <메이드 인 홍콩>, <그해 불꽃놀이는 유난히 화려했다>, 그리고 <리틀 청> 세 편을 흔히 <<홍콩 3부작>>이라고 한다. 그의 다음 작품 <두리안 두리안>은 <리틀 청>의 속편이라고도 말한다. 이들 영화는 홍콩인들의 '九七回歸'에 대한 태도, 생각들을 담고 있다. '구칠회귀'는 홍콩을 백여 년간 차지하고 있던 영국이 물려나고, 중국이 다시 그 종주권을 차지하는 것을 말한다. <리틀 청>의 원제는 <細路祥>이다. '세로'는 광동어로 어린 소년, 꼬마애를 뜻한다.

  홍콩의 액션스타 이소룡은 우리가 흔히 아는 <정무문> 같은 쿵후영화에 나오기 훨씬 전에 아역배우였다. 그것도 열살이 되기 전에 출연했던 몇몇 작품은 아직도 홍콩걸작으로 손꼽힌다. 그가 아역배우로 출연했던 작품 중에 <세로상>이라는 영화가 있다. 프루트 챈의 이 영화에서 할머니가 보던 TV에서 방영하는 옛날 홍콩영화 <세로상>의 아역배우 이소룡을 직접 볼 수 있다.

▶어린이의 눈으로 본 1997년 홍콩

  여섯 살난 리틀 청(阿祥 혹은 祥仔)은 식당을 경영하는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할머니와 함께 행복하게 산다. 아버지는 술을 좋아하시지만 가족을 끔찍히 사랑하고 하루하루를 성실히 산다. 어머니는 친구들과 함께 마작에 빠져 지내지만 아청은 누구보다도 끔찍히 사랑한다. 경극배우였던 할머니는 TV에 빠져 옛 추억에 빠져산다. 아청을 돌보는 것은 성실하고 부지런한 필리핀 가정부(菲傭用)이다. 아청의 일과는 아버지를 도와 음식 배달을 하는 것이다. 그는 매일 비좁고 더러운 홍콩 거리를 뛰어다니며 도시락과 차를 날라주고는 심부름 값을 받는 것이다. 그의 유일한 낙이라면 돈을 모아 '다마고치'를 사는 것이다. 어느날, 식당에 한 소녀가 찾아와서 일자리를 구한다. 아버지는 너무 어리라고 쫓아내지만 아청은 몰래 소녀의 뒤를 쫓는다. 소녀는 중국에서 몰래 홍콩으로 넘어온 불법 체류자(小人蛇)였다. 아청은 이내 이 소녀 아펀(阿芬)에게 호감을 느끼고 동업을 제의한다. 자신의 심부름을 같이 하면서 수익(심부름 값 혹은 삥땅)의 일부를 떼어주기로 하는 것이다. 아청과 아펀은 매일 자전거를 끌고 동네를 돌아다니며 어른들의 사랑을 받으며 푼돈을 모은다. 이 꼬마 연인들의 또다른 즐거움은 악당을 골탕먹이는 것이다. 식당의 보호비를 뜯어내려는 데이비드가 레몬차를 시키면 언제나 오줌을 조금 갈겨 갖다 주는 것이다. 데이비드는 언제나 그 차가 가장 맛있다고 그런다. 그런데 어느날 학교에서부터 일제단속이 시작되고 아펀도 경찰에 끌려간다. 불법체류자는 모두 압송되는 것이었다. 아청은 커다란 어른용 자전거를 타고는 경찰차를 뒤쫓는다.

▶홍콩의 모습

 프루트 챈 감독은 자신의 <홍콩 3부작>을 통해 중국으로 반환되는 홍콩의 운명을 바라보는 홍콩인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메이드 인 홍콩>은 불량청소년이 대표하는 청년의 눈으로 본 홍콩의 운명이었고, <그해 불꽃놀이는 유난히 화려했다>는 퇴역군인들로 대표하는 장년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홍콩이 주제였다. 당연히 <리틀 청>은 다마코지와 우정을 걱정하는 어린이는 눈에 비친 홍콩의 운명인 것이다.

  이 영화는 홍콩의 사회상에 조금만이라도 관심이 있으면 상당히 흥미로운 영화이다. 이미 중국에 넘어간 홍콩이지만 그 당시 홍콩인의 심정을 어느정도 짐작할 수 있으니 말이다. 사실, 1997년이 오기 훨씬 전에 홍콩의 미래를 의심하는, 혹은 자본주의 홍콩에 진저리를 느끼던 많은 사람들이 캐나다로, 혹은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거의 대다수의 남은 홍콩인들은 1997년 이후의 홍콩이 그다지 바뀌지 않을 것이라며, 담담히 국가의 운명을 받아들였다. 식당을 경영하는 아청의 아버지가 그때 걱정하는 것은 공산주의 중국이 자본주의 홍콩을 접수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가족의 행복을 지키느냐는 것이다. 이들 가족에게는 숨겨진 과거가 있었다. 아청이 아주 어렸을 적에 형이 있었는데 아버지와 매일 다투더니 집을 나가버린 것이다. 아청은 할머니의 앨범에서 낡은 형의 사진을 발견하게 되고 아버지 몰래 형을 수소문하고 다닌다. 형은 이제 홍콩의 흑사회의 조직원이 되었다는 사실을 전해듣고는 한숨 돌린다. 아청의 가족에게도 흑사회조직이 있고, 데이비드가 대표하듯이 홍콩의 모든 가게에는 그와 유착된 '주먹'이 있었다. 할머니 생일잔치에도 이런 관계와 주먹이 중시되는 것이 홍콩의 한 모습인 것이다.

  아청이 어느날 함께 동업을 제의하면서 유일한 친구가된 아펀은 일종의 불법체류자이다. 이들을 일컫어 현지에서는 무증아동(無證兒童), 혹은 작은 뱀(小人蛇)이라고 한다. 요즘 우리나라에까지 심심찮게 밀항하는 연변조선족과는 조금 다른 의미이다. 이미 오래 전부터 홍콩의 많은 사업가, 관광객들이 중국을 자유로이 입국했었다. 그들은 그들의 고향마을에 투자를 하였을 뿐만 아니라 현지처를 거느렸다. 지금도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중혼죄와 이들 사생아의 법적 지위 문제였다. 현재 백 만명 이상으로 추산되는 이들 홍콩아버지(혹은 홍콩 어머니)가 중국에서 낳은 아이들은 무작정 홍콩으로 건너오고 있다. 아펀도 그러한 경우이다. 인권차원에서는 당연히 핏붙이를 받아들여야하지만, 좁은 홍콩의 교육제도, 사회보장제도의 유지를 위협할 정도의 '무증아동'문제는 아직도 홍콩당국의 골치거리이다.

  <첨밀밀>에서는 홍콩인, 그리고 전세계 중국인(중화민족)이 자신의 정체성을 느끼는 것을 등려군의 노래를 함께 향유하는 것에서 찾았었다. 실제로 중국인들은 그녀의 노래를 좋아했고 그녀의 사망에 함께 슬퍼했다. 이 영화에서는 등려군 대신 신마사증(新馬師曾)이란 배우가 등장한다. 본명이 증영상(曾永祥)인 이 배우는 광동극 배우 출신으로 오랫동안 홍콩인의 사랑을 독차지하였었다. 그가 출연한 광동어영화는 홍콩영화의 가장 찬란했던 시절의 명작들이었다. 극중에서 아청의 할머니는 이 배우와 함께 공연한 것을 자랑을로 삼고 있다. 이 신마사증의 닉 네임이 바로 '청 꺼(祥哥)'이다. '리틀 청'과 묘한 대조를 이루는 것이다. 프루트 챈 감독이 <리틀 청>을 찍을 당시 홍콩을 들끓게 했던 사회적 관심사는 위에서 언급한 '무증아동'문제와 바로 이 '신마사증'의 사망과 유산을 둘러싼 유족들의 분규였다.

  프루트 챈 감독은 <그해 불꽃놀이는 유난히 화려했다>를 촬영하면서 이미 <리틀 청>의 시나리오를 탈고시켰다. <메이드 인 홍콩>에서 하루아침에 스타가 된 '이찬삼'처럼 철저히 비전문직업배우를 캐스팅하려는 감독은 몇 달씩이나 홍콩의 초등학교를 돌아다니게 만들었다. 결국 아청과 아펀으로 찾아낸 어린이는 요월명(姚月明)과 맥혜분(麥惠芬)이었다. 극중에서는 아청이 홍콩 토박이이고, 아펀은 중국출신이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이다. 요월명은 중국에서 홍콩으로 넘어온지 3년밖에 안된 소년이었고, 맥혜분은 진짜 홍콩인이었다.

  혹시, 4회(99년) 부산 영화제때 상영된 <그해 불꽃놀이는 유난히 화려했다>를 본 관객이라면 그 영화에 나오던 배우와 <메이드 인 홍콩>의 이찬삼이 <리틀 청>에서 잠깐 스쳐지나가는 것을 볼 수 있다. 아청리 자전거를 타고 아펀이 탄 경찰차를 뒤쫓을 때 횡당보도를 건너거나 트럭을 몰고 있는 배우들이 바로 그들이다. (박재환 2001/8/18)
 
 細路祥 (1999)  Little Cheung Xilu xiang
감독: 진과 (프루트 챈)
주연: 요월명, 맥혜분, 이찬삼
한국개봉: 200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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