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쿵푸 허슬] 이소룡의 기억, 막대사탕의 순정 (주성치 감독 功夫, Kung Fu Hustle, 2004)

2008. 2. 23. 08:32홍콩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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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재환 2005.1.12.) 홍콩 최고 흥행작품은 2001년 여름에 개봉된 주성치의 [소림축구]이다. 이 영화는 홍콩에서 모두 6천만 HK$의 수익을 올렸다. 오늘(2005.1.12) 현재 주성치의 신작 [쿵푸 허슬]5,431HK$의 수익을 올리며 자신의 최고 기록 갱신을 준비 중이다. 물론, 이 영화는 중국에서만 이미 16천 만의 흥행수익을 올려 중국영화 역사상 가장 높은 흥행수익을 올린 중국어영화로 기록되게 되었다. 이연걸과 주윤발이 떠나버리고 성룡이 그다지 이름값을 못하고 있을 때 주성치는 자신의 '네임 벨류'를 엄청나게 증폭시키고 있다. [소림축구]는 기존의 주성치 영화세계뿐만 아니라 홍콩영화의 '넥스트 버전'이 어찌해야하는가를 명시적으로 보여준 일대 사건이었다. 홍콩이 자랑할 만한 중국문화 상징의 하나인 '쿵후'를 맛깔스러운 CG'기술'에 용해시켜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리고 3년의 공백 끝에 새로이 [쿵푸 허슬]을 내놓았다. 

[쿵푸 허슬]은 여전히 주성치 자신의 전략종목을 기반으로 삼고 있다. 기층 인민의 폭발적 중국문화사랑이 투영된 것이다. 그리고 아주 천연덕스럽게 기존 영화들을 패러디하고 있다. 

성치는 열 살 무렵에 어머니 손에 이끌러 허름한 극장에서 보았던 첫 번째 영화 관람의 충격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는 이소룡영화를 보았고 이소룡영화에 매료되었고, 이소룡같은 사람이 되는 게 자신의 미래라는 것을 가슴 깊이 새겼다고 한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주성치는 쿵푸를 제대로 배운 적은 없지만 영화만이 그런 자신을 '이소룡'같이 만들어 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영화의 최종목표는 '이소룡같이' 되는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쿵푸 허슬]은 주성치 영화의 최고봉에 해당한다. 영화의 주인공은 불쌍한 사람, 억압받는 민중을 도와주고 중화인민의 영웅이 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주성치 특유의 각종 영화 섞어 믹싱하기가 점철된다. 할리우드 영화 [시카고]의 군무나 [매트릭스]의 각종 장면과 대사, , 그러고 보니 [스파이더맨]에서의"큰 파워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같은 대사로 적절히 마구 쓰인다. 게다가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샤이닝]에서 복도에 넘쳐나는 피바다 장면도 쓰일 정도이다. 

이 영화 촬영 과정이 매끄럽지는 않았다. 전작 [소림축구]가 홍콩 흥행 1위의 신기원을 이루었지만 엄청난 제작비로 인해 제작자와 화끈한 상생의 성공 보수를 나누지는 못했다. 하지만 중국시장과 아시아 시장에서의 가능성을 간파한 콜롬비아 영화사의 적극적인 투자로 마침내 이 영화는 제작이 가능했다. 주성치는 감독과 각본과 주연, 그리고 절대적 결정권을 쥐게 되었다. 

무술감독을 맡았던 홍금보와는 영화 촬영 과정에서 의견 상충이 있었고 결국 홍금보가 얼굴이 벌개져서는 아웃되고 원화평이 긴급 투입되었다. 흘러나온 이야기로는 주성치의 인간적 결함이 지적되지만 결국 영화라는 것은 전권을 가진 자의 절대예술이 아닌가. 거의 사이코에 가까운 감독에 의해 완성도 높은 작품이 나오지 않는가. 특히 주성치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쿵푸 허슬]이 어떤 그림인지는 주성치 말고 그 누가 알 수가 있으리오. (홍금보의 아웃뿐만 아니라 주성치의 짝패 오맹달이 나오지 않는다는 점도 [쿵푸 허슬]의 휴머니즘에 깊은 우려를 갖게 했다) 

1930년대 중국 상하이. 이에 대한 전통적 시각은 제국주의 마수가 중국 전역을 장악하는 가운데 상하이는 서구열강의 조차지로 편입되어 순식간에 열정과 번영의 중심도시로 그려진다. 하지만 주성치의 [쿵푸 허슬]에서 묘사되는 이 시기, 이 지역은 부패한 중국 관료층과 넘치는 폭력조직, 그리고 그 압제하에 신음하는 기층 인민들이 살아가는 인간극장이다. 상하이에서 조금 떨어진 '돼지촌'. 실제 1930년대 가난한 평민들이 집단 거주하던 낡은 3~4층 복합 건물을 고스란히 재현한 이 동네는 '가난한' 세입자들과 매달 방세를 닦달하는 살벌한 집주인 부부의 일상화된 폭력과 과장된 반응으로 관객에게 다가온다. 

살벌한 집 주인 부부는 무척 오랜만에 영화에 등장하는 반가운 얼굴이다. 원화(元華)와 원추(元秋)이다. 특히 원추는 성룡과 홍금보 등과 함께 오늘날 홍콩 코믹액션 영화의 대들보가 된 '7소복' 출신이다. 집주인 밑에서 묵묵히 자신의 숨은 쿵후 실력을 감추고 조용히 살아가는 세입자로는 석행우(釋行宇), 동지화(董志華), 조지릉(趙志凌) 등이 출연하다. 당시 상하이를 주름잡는 도끼파 두목 진국곤(陳國坤)이 돼지촌 세력과 대결하면서 영화는 재미를 더하게 된다. 

이 영화는 어린 시절 조잡스런 '여래신장' 그림책 하나만을 믿고 불의에 맞서 싸우다가 처절하게 두들겨 맞은 주성치가 하류인생을 살다 마침내 영웅이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주성치가 어떻게 "the One"이 되는지 합리적인 설명이나 이해가 필요한가? 이건 주성치영화인데 말이다. 

영화에서 어린 시절의 괴로운 기억, 한편으로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는 막대사탕 장면은 아주 짧은 순간에 지나간다. 말이 필요 없는 과거, 막대사탕 하나면 모든 것이 이해되는 '단순함의 극치'이지만 그 사랑의 울림은 가히 폭발적으로 감동적이다. 

이번에 한국에서 개봉되는 [쿵푸 허슬]은 주성치의 영원한 북경어 입 석반유(石班瑜,스반위)가 더빙을 맡은 만다린 버전이다. 그리고 자막 번역에서 다음 두 가지 점은 미리 이해하고 들어가면 좋을 듯하다. 

절대무공을 자랑하는 화운사신((火雲邪神)역을 맡은 양소룡(梁小龍)이 도박장에서 원화와 원추를 만나는 장면에서 이런 대사가 나온다. ", 두 사람.. '신조협려'....." 물론 '양과''소용녀'이다. 그런데 자막은 '헬렌과 '파리스'라고 뜬다. 대부분의 영화관객이 김용의 [신조협려]의 이 두 주인공의 관계를 알 수 없을 것 같아서 최근 개봉된 [트로이]의 유명세를 이용하여 헬렌과 파리스라고 자막을 붙인 모양이다. (그런데, 주성치의 인터뷰 기사에 따르면 이 영화의 영문 자막버전에서도 '양과''소용녀'라 하지 않고 헬렌과 파리스로 하였다고 한다. 그러니, 한국 자막 번역가에게 일방적인 비난을 삼가시길.) 

또 하나. 어린 주성치가 의사나 변호사가 되어 출세하는 장래를 포기하고 세계평화를 지키기 위해 거지에게 <<신조협려>>비결서를 산다. 10이나 주고. 이런 엉터리 책을 돈 주고 샀냐고 애들이 마구 두들겨 팬다. 그때 그림책 뒷면에 나오는 책값은 겨우 0.2원이다. 주성치는 바가지를 쓴 것이다. 그 미세한 차이도 알아둘 것. 

주성치가 [샤이닝]이나 [매트릭스]만 활용한 것이 아니라 프레드 아스테어가 나온 올드 무비 [톱 햇]도 화면에 노출시키는 센스를 보여주었다. (박재환 2005/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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