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어] 별똥별이 아름다운 것은 순간이기에…. (장지량 감독 流星語,1999)

2008. 2. 22. 22:20홍콩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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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환.2001.3.22) 장지량 감독의 최근 작품으로는 두 여인의 우정을 그린 <자소>라는 영화가 있다. 그의 영화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특징은 ‘은은히 흐르는 정(情)’에 있다고 한다. 이번 영화 <유성어>도 그러하다. 인생의 대전환기를 겪은 한 중년과 꼬마아이와의 우정, 혹은 부성애가 이 영화가 대변하는 정이다.

장지량 감독은 홍콩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 영화의 제작하게 된 경위를 자신의 경험담에서 떠올렸다고 말했다. 어느 날 버스를 탔는데 한 임신한 여성이 버스에 외롭게 앉아있는 모습을 쳐다보다가 문득 현대사회의 고독감 같은 것을 떠올렸던 모양이다. 그는 창밖 사람들의 무표정한 얼굴 등에서 남다른 감회를 느꼈었다고 한다. 그리곤 찰리 채플린의 1921년 걸작 흑백영화 <키드>를 보고선 이내 이 영화를 만들기로 했다고 한다.

영화는 찰리 채플린의 <키드>를 바탕으로 현대판 홍콩드라마로 각색한 셈이다. 몇 년 전 아시아에 금융폭풍이 일어났을 때 홍콩의 잘 나가던 금융맨 장국영은 고객의 돈을 다 날리게 된다. 그는 자괴감에 빠진다. 그날 밤, 그의 호화 보트에 한 갓난 아기가 버려져 있었다. 한번 그 아이를 떼어두려고 했었지만 쏟아지는 비속에서 다시 그 아이를 거둬들인다. 그리곤 4년이 훌쩍 지나 장국영은 이 꼬마애와 함께 씩씩하게 홍콩의 빈민가에서 살아간다. 장국영은 이런저런 허드렛일을 하면서 옥탑방에서 꼬마애와 ‘마음’만은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꼬마애를 내다버렸던 사연 많은 엄마는 이제 돈 많은 자선사업가가 되어 자신의 아픈 과거를 치유 받으러한다. 이 영화는 이 귀엽기 그지없는 꼬마애가 결국 친생어머니에게 돌아가든지, 아니면 가난하지만 자기를 양육해준 ‘아버지’인 장국영에게 남든지 하는 휴먼드라마로 진행될 것이다.

장국영은 최근 들어 1년에 두어 편의 영화에 꼬박꼬박 출연하고 있다. 99년에는 이 영화와 함께 <성월동화>에 나왔었다. 장국영의 연기력이야 이미 오래 전부터 검증받은 실력파이다. 이 영화에서는 인생의 나락으로 떨어져서는 한 꼬마애에게 자신의 희망과 미래를 안고 사는 내면 깊은 연기를 해 내었다. 장지량 감독은 원래 이 영화의 주인공으로 양조위를 생각했었다고 한다. 가진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이 중년의 사내는 전혀 피붙이가 아닌 이 아이를 위해서는 무엇이든지 할 수가 있지만 마지막에 아이의 행복을 위해 결단을 내려야만 한다.

<유성어>의 최고의 볼거리가 되는 꼬마 ‘아밍’ 역에는 엽정람이라는 네살배기가 캐스팅되었다. 원래 장지량 감독은 일곱 살 아이와 이 꼬마애를 마지막까지 저울질 했었단다. 장국영이 네 살 아이를 선택했고 촬영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홍콩에는 수많은 ‘탤런트’들이 수많은 영화에 겹치기 출연을 하지만 아역들은 좀처럼 보기 어렵다. 프루트 챈의 <리틀 청>에 나왔던 꼬마애 말고는 생각하기도 어려울 만큼 말이다. 그리고 주윤발의 <우견아랑>의 꼬마애 정도? 이 눈망울 큰 엽정람의 역할은 1970년대와 80년대 초 한국영화에 자주 나오던 그런 신파극조의 아기이다. 두 집안 사이에서 양육권을 놓고 울고불고 하는 역할. 그래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관객을 눈물바다로 만들던 그런 아역배우이다. 물론 이 영화는 억지눈물을 쥐어짜는 타입은 아니다. 꼬마애의 연기는 충분히 공감이 가고 이 영화의 긴장감을 이끈다. 꼬마애가 평소 갖고 싶어 하던 커다란 모형배(프라모델)을 사주는 친생어머니와 밤새 조잡하게 손수 만든 장국영 사이에서(물론, 장국영은 그것을 감추지만) 아이의 선택이 이 영화의 결론이 되는 셈이다.

이 영화에서 가장 반가운 인물은 아마도 ‘적룡’일 듯하다. 장국영과는 <영웅본색>에서 물보다 진한 피의 감동을 선사했던 그가 이 영화에서는 가슴 따뜻한 순둥이 경찰로 나온다. 그가 최근에 한국관객에게 선보인 것은 아마도 <취권2>에서의 성룡의 아버지 역이었지 않았나 싶다. 이제는 머리가 조금 벗겨지고 완연한 장년의 아저씨가 된 적룡은 장국영이 얹혀사는 집의 주인 ‘오가려’에게 연정을 품고 있지만 ‘사랑한다’는 말조차 꺼내지 못하는 역할이다. 영화 후반부에서, 밤늦은 공원에서 ‘아밍’의 운명과 관련하여 장국영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가 되는 셈이다.

노인을 위한 복지시설을 운영하며 장국영과 아밍을 돌봐주는 병색이 완연한 란 소저 역의 오가려는 이런저런 홍콩영화 70여 편에 출연했던 전형적인 B급 홍콩스타이다. 아밍의 친모 ‘소군’역의 기기(琦琦)는 원래 모델 출신이었다.

작년에 한국에서 개봉된 홍콩 영화는 28편이나 되지만 최고 흥행 홍콩영화로 기록된 <화양연화>에 든 관객 수는 9만 명에 머문다. 작년 홍콩 최고의 흥행기록을 세웠던 유덕화, 정수문 주연의 <고남과녀(니딩 유)>는 우리나라에선 비디오시장에서조차 인기가 없다. 홍콩영화는 이제 정말 매니아만 보는 신세가 된 모양이다. 그래도 장국영 영화는 기본은 하고 있고, 멜로물이니 관객은 좀 들겠지. 이 영화를 수입한 사람은 탤런트 출신의 ‘금보라’라고 한다.

당연히, <유성어>는 아기를 ‘유기’(遺棄:내다 버림)하지 말자는 주제를 다룬 영화가 아니고, 별똥별이 아름다운 것은 떨어지는 그 짧은 순간 때문이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사람의 감정도 그러한 짧은 시간의 느낌일까? (박재환 2001/3/22)

[유성어|流星語] 감독:장지량 출연: 장국영, 엽정람, 적룡, 오가려, 기기 (The Kid,1999) 홍콩개봉: 1999/10/14 한국개봉: 2001/ 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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