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빈랑나무] 타이페이 러브 스토리 (임정성 감독 愛你愛我 Betelnut Beauty 2001)

2019. 8. 5. 09:15대만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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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환 2001/4/30) '빈랑'(Betelnut)나무는 아열대지방에서 자라는 다년생 식물로 얼핏 보면 야자수 같아 보인다. 이 나무의 열매는 토토리보다 조금 큰 데 입안에 넣고 씹으면 자극적인, 때로는 역겨운 알싸한 맛이 온 입안에 가득 돈다. 문제는 한번 씹으면 입안이 온통 벌겋게 된다는 것이고, 주기적으로 그 붉은 침을 뱉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빈랑을 씹는 사람 주위는 마치 코피라도 한 반가지 흘린 것처럼 온통 핏빛이다. 사실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이 열매가 환각성분의 중독성 식물이며 구강암의 직접적 원인이 된다고 알려진 것. 대만정부에서는 오래 전부터 빈랑규제대책을 세우고 있지만, 빈랑은 담배만큼이나 인기있는 기호식품으로 자리잡았다.

 

이 영화의 전주영화제 소개 제목은 <아름다운 빈랑나무>라고 했지만 사실 무리가 있는 제목인 듯하다. 결코 아름다울 수 없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고나 할까. 어쨌든 이러한 빈랑열매는 암흑가의 폭력배들이나 장거리 트럭운전사들, 그리고 격무에 시달리는 택시기사들이 주로 상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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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빈랑을 파는 가판대는 고속도로 진입로 입구나 야간업소 주위에 밀집해 있다. 빈랑판매 깃발과 함께 작은 부스 안에서 짧은 미니 스커트와 비키니 차림으로 호객활동을 하는 아가씨를 '빈랑미인'(영어제목 Betelnut Beauty)이라고 한다. 대만에서만 볼 수 있는 아주 특이한 사회풍속도이다. 이 영화는 그런 빈랑에 얽힌 슬픈 사랑이야기이며, 대만의 젊은이들이 겪고있는 방황을 전해준다.

 

아름다운 청춘, 방황하는 청춘 '비트'

 

분주한 도시 타이페이에는 젊은 영혼들이 정처 없이 떠돌고 있다. 영화가 시작되면 쏟아지는 빗속에서 허공에 소리지르는 한 여자를 만나게 된다. 그녀의 이름은 페이페이(리신지에). 가출을 시도했다가 어머니에게 붙잡힌 여자이다.

 

페이페이에게 흥미를 느낀 남자가 옆으로 달려와서 함께 소리를 지른다. (창천)이다. 펑은 지금 막 군에서 제대하여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해 타이페이로 올라왔다.

 

페이페이는 어머니가 자신의 비밀스런 일기를 읽고 있었다는데 화를 내며 자신의 인생을 개척하겠다며 또다시 가출한다. 그리고는 나이트클럽에 다니는 여자친구 일리와 함께 빈랑가게를 연다. 일리는 애인인 폭력조직원 '타이거'와 헤어지려고 빈랑가게들의 보호자격인 구앙에게 도움을 청한다.

 

군에 가기 전 빵을 굽던 펑은 더이상 빵 굽는 일에 인생을 소진하고 싶지 않아 한다. 그래서 페이페이의 빈랑 가게가 내려다보이는 허름한 아파트로 거처를 옮긴다. 의지할데 없는 영혼의 소유자들인 펑과 페이페이는 곧바로 사랑에 빠진다. 방안에서 그림을 그리며 소일하던 펑은 구앙에 의해 조금씩 범죄의 유혹에 빠져든다.

 

페이페이는 뮤직비디오 오디션을 보고 가수의 길로 나가게 된다. 하지만 펑의 운명은 나쁜 쪽으로만 흘러간다. 구앙의 부추김으로 타이거의 카드판을 습격하여 돈을 강탈하는 무모한 일을 벌이게 되고 타이거와 구앙의 복수전에 끼어들어 운명적인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영화의 마지막은 마치 김성수 감독의 <비트>처럼 오토바이를 탄 두 사람이 자신의 미래를 알수 없는 두 사람이 대만 시내를 질주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대만영화의 현주소

 

가진 것은 아무 것도 없고, 미래는 기약없는, 그래서 더욱더 서로에게 의지하며 사랑만을 믿는 청춘남녀의 모습은 동서고금을 막론하여 매력적인 영화의 소재가 되어왔다. <아름다운 빈랑나무>도 예외가 아니다.

 

펑과 페이페이의 사랑이야기는 대만의 현 정치상황이 어떻든, 언제나 존재하는 그런 부류의 청춘군상의 이야기이다. 그것은 정부가 해결할 수 있는 성질의 문제도 아니며, 이성적으로도 설명할 수 있는 것이 결코 될 수 없다. 질주하는 젊음 그 자체가 그들의 특권이니 말이다.

 

이 영화는 우리나라 <공동경비구역 JSA>와 함께 베를린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었고 '감독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한국관객들은 후샤오시엔(侯孝賢)이나 에드워드 양(楊德昌)이 아닌 '린쩡셩(林正盛)'이라는 거의 무명에 가까운 대만 감독이 '감독상'을 받았다는 사실에 놀란다.

 

린쩡셩은 이미 몇 편의 작품을 통해 해외영화제에서 다수 수상한 경력자이다. 그는 빵가게를 운영한 경험이 있고 그의 아내와 함께 대만에서 꾸준히 영화를 찍고 있다. 또한 이 영화에서 페이페이 역을 맡았던 말레이지아 출신의 가수 리신지에(李心潔)는 첫 출연영화로 베를린 '신인상'이라는 행운을 잡았다. 영화에서의 상큼한 매력은 마치 <중경삼림>에서의 왕페이가 재림한 것같은 인상을 받기에 충분하다.

 

이 영화는 대만의 유명 영화평론가이며 영화제작자인 페기 차오(焦雄屛)가 프로듀서를 맡은 영화로 더 유명하다. 페기 차오는 현대 중국 젊은이들의 방황하는 모습을 담은 세편의 연작물을 기획하였고, 그 중의 하나가 바로 대만 젊은이를 다룬 이 영화이다. 중국어 제목은 <아이니 아이워>이다. 또다른 대륙중국의 청년을 다룬 왕샤오슈아이 감독의 <북경자전거>이다. 베를린에서 대상을 받은 작품이다. 현재 그녀는 또다른 작품을 준비 중이다.

 

<아름다운 빈랑나무>는 잔잔하지만 느낌이 오래가는 슬픈 러브스토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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