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교:디텐션] 비정대만 非情臺灣 (쉬한치앙徐漢強 감독 返校 Detention 2019)

2020. 8. 18. 17:08대만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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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소개된 대만영화 <반교:디텐션>(返校, Detention)(감독: 쉬한치앙/徐漢強)이 지난 주 한국극장가에 정식 개봉되었다. 이 영화는 대만의 게임을 원작으로 한 영화로 소개되면서 작품이 전하고자 하는 대만현대사의 비극을 지나칠 수 있다. 실제 <반교>는 우리나라의 ‘택시운전사’와 ‘1987’을 섞어놓은 것만큼 큰 아픔과 생채기를 품고 있는 작품이다. 

 먼저, 오랫동안 대만현대사의 비극을 이야기할 때 후효현(허우샤오센) 감독의 <비정성시>를 많이 언급한다. 일본이 항복한 것은 1945년이었다. 한반도가 남북으로 쪼개질 때, 중국 대륙에서는 공산당과 국민당이 건곤일척의 싸움을 계속했고 장개석의 국민당군은 후퇴를 거듭하더니 결국 대만까지 내몰렸다. (국민당은 패색이 짙어지면서 대만을 수복의 전초기지로 준비했다) 오랫동안 ‘대만사람’만이 평화롭게 살던 대만 섬은 어느 날 패전한 국민당군이 몰려온 것이다. 그 어수선하고, 폭력적이던 시절에 이른바 2.28사건(1947년)이 일어났고, 그 때의 이야기가 바로 후효현 감독의 <비정성시>에 담긴다. 이후, 대만은 국민당이 접수하고, 오랫동안 계엄령(1949.5.19~1987.7.15)이 내려진 채 자유를 저당 잡힌다. 장개석의 국민당은 오직 대륙수복이 목표였다. 공산세력 침투를 막기 위해 언론자유를 봉쇄하고, 사상검열이 일상화되고, 민주인사는 투옥된다. 그 대상은 학생을 포함한 대만인 전체였다. 그런 상황에서 이 영화 <반교>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것이다. 

● 백색테러, 역사의 비극

 1949년 대만섬 전체에 계엄령이 선포된다. <반교>는 1962년의 이야기이다. 영화 초반, 학교 건물엔 큼지막하게 ‘엄금집당결사’(嚴禁集黨結社)라는 격문이 보인다. 1962년, 거리에는 온통 반공표어가 나붙었고, 국민당 정부는 시민들에게 간첩색출을 독려했으며 정당결성을 금지했다. 또한 언론과 사상을 관제하기 위해 많은 서적들이 금서로 지정되었다. 

 태풍이 불던 날 추이화고등학교(翠華中學)의 여학생 팡루이신(왕정)은 교실에서 눈을 뜬다. 그는 어두워진 학교에서 장밍후이 선생님(부맹백)을 찾다가 후배 웨이쭝팅(증경화)과 마주친다. 인적은 전혀 없고 학교는 폐허가 된 상태이다. 교실은 온통 봉쇄 표지로 뒤덮였고 누군가 죽기라도 한 듯이 ‘상중’(忌中) 종이가 덕지덕지 붙어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두 사람은 추이화고등학교에서 벌어진 비극적 사건의 중심으로 내던져진다.

 장 선생은 동료교사인 인추이한 선생(채사운)과 함께 학교 창고에 근거지를 마련한 뒤 몇몇 학생들을 불러 모아 몰래 독서클럽을 연다. 그곳에서 그들은 숨죽이며 ‘당국이 금지한’ 불온서적, 금서를 읽는 것이었다. 한편, 팡루이신은 그런 장 선생에게 연정을 품지만 인추이한 선생과의 관계를 오해하면서 비극으로 한 발 다가가게 된다. 독서클럽은 탄로 나고 선생과 학생들은 모두 헌병에게 끌려간다. 그들은 배후와 멤버를 밝히라는 혹독한 고문을 받고 총살당한다. 비밀 독서회를 누가 밀고한 것일까. 죽은 자는 누구이고 산자는 누구인가. 그리고 살아남은 자에게 남은 길은 무엇일까. 

● 번역은 반역이다?

  영화에서 당시 국민당정권에 의해 금서로 지정된 책들로 <타고르 시집>, <아버지와 아들>, <고민의 상징> 등이 등장한다. 조금 의아했다. <모택동선집>이나 <자본론>, 혹은 <전환기의 우상논리>같은 이념서적이 아닌 문학서이니 말이다. 아무리 보아도 장 선생이 학생에게 좌익사상을 주입시키는 것은 아닌 것 같은데 말이다. 

 이 장면에 대해 대만 인터넷을 찾아보니 조금 의문점이 풀린다. 일본이 패망하고 대만에서 물러간 그 당시 대만의 인문학적 수준은 제한적이었다. 다들 일본어로 교육을 받았었고, 번역서의 대부분은 중국본토에서 넘어온 것들이었다. 당시 식자층은 중국, 그것도 공산주의 사상을 공부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영화에 등장하는 <타고르 시집>, 투르게네프의 <아버지와 아들>, <고민의 상징> 책들이 좌익성향의 책이 문제가 아니라 그 책을 번역한 사람들이 공산주의자였던 것이다. <고민의 상징>은 일본 구리야가와 하쿠손(廚川白村)의 책인데, 영화 자막에는 루쉰을 작가로 잘못 번역했다. 루쉰(노신)은 이 책을 번역했었다. 타고르의 시를 중문으로 번역한 사람은 쩡전둬(鄭振鐸)이다. 중국 공산당에서 문화부장관까지 지낸 사람이니 그의 책이 대만에서 ‘금서’가 되었다는 것은 일견 이해가 되기도 한다. <아버지와 아들>은 바진(파금)이 번역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오랫동안 공안당국에 의한 불온서적(금서)이 있었다. 노태우 정권 들어서며 그런 야만적 조치가 해제되었고 한동안 대학가를 중심으로 금서 출판 붐이 일었다. 그중에는 <자본론> 같은 책부터 시작해서 해방신학 관련서적 등등, 백석, 임화, 박태준, 홍명희 등 월북작가들의 문학서적도 포함되어 있다. 

 영화에서 학생들이 비밀리에 독서회에 활동하는데 당시 그런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오랫동안 일본어를 배우고, 표준어(북경어)를 할 수 없었던 대만의 학생들이 그런 활동을 통해 ‘표준 중국어’를 배우는 것이 유행이었다고 한다. 그 틈새를 좌익분자들이 침투한 것도 사실이었고 말이다. 

 장개석 계엄당국의 야만스러움은 여러 곳에서 나타난다. 팡루이신이 장 선생에게 피아노곡 ‘우야화’(雨夜花)를 가르치는 장면이 있다. 인 선생 말로는 “그 노래가 곧 금지곡이 될 것”이란다. 이 곡은 대만의 일제강점기였던 1934년 덩위시엔(鄧雨賢)이 쓴 곡으로 우리의 <봉선화>같은 노래이다. 

 유튜브에서 대만 백색테러 당시 피해자의 증언을 찾아볼 수 있다. 이제는 할머니가 된 한 인권운동가는 “마르크스는 당연히 못 읽지. 루쉰 책도. 노래도 금지했어. ‘天黑黑 欲下雨’(날이 어두워지네 비가 내리려나~“ 이 노래(天黑黑/天烏烏라는 동요임)도 못 부르게 했어. ‘분홍색 어쩌구’ 하는 노래도 금지됐어. 홍색은 공산당을, 흑색은 부정적이라는 이유였지. 영화에서 보여주는 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야.”란다. 

 <반교>에서 여학생 팡루이신은 장밍후이 선생님에게 애틋한 감정을 가진 것으로 묘사된다. 중문 위키에는 이와 유사한 사례를 소개한다. 

대만 신쭈(신죽)의 여학생 부여지(傅如芝,푸르쯔)는 독서서클에 들었다가 체포된다. 그 학생이 가입했던 독서회를 이끈 선생은 여자송(黎子松)이라는 공산주의 사상을 가진 인물이었다. 여자송은 자기 때문에 제자가 불행을 겪었다는 것을 알고는 감옥에서 시를 하나 쓴다. <남방의 목면화>(南方的木棉花)라는 이 시는 감옥에서 유전되며 많은 사람의 심금을 울렸다고. 부여지는 처음 10년형을 받았지만 나중에 혐의가 추가되었고, 당시 정치범을 수용하던 녹도(綠島.화소도)로 이감된다. 이 여학생은 결국 1955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처형당일 간수장은 그녀에게 부친과 모친이 사무실에 면회 왔다고 속였다고 한다. 물론, 여자송 선생도 ‘사회주의청년대동맹’의 주범으로 사형 당한다. 

 대만계엄령 기간, 백색테러 시기에 정치범(사상범) 혐의로 몰린 사람은 14만 명, 체포된 인원은 3만 명에 이른단다. 38년의 암흑기에 총살당한 인원은 4500명으로 추산된다. 조사기관에 따라 수치가 다른데 저간의 사정을 짐작할 수 있는 것은 1960년, 한 해 동안 대만당국이 12만 여 명을 행적불명으로 이유로 제적시킨 일도 있었다고 한다. 

 한편, 대만당국이 공산당 척결, 간첩박멸에 이렇게 올 인한 이유가 무엇일까. 1949년, 공산당과 국민당의 막바지 패권전쟁 당시 중국은 1500여명의 특공(간첩 등 특수임무 인력)을 대만에 진입시켰다고 한다. 대만당국은 그중 1100여 명을 잡아냈다고 한다. 

 이런 대만현대사의 비극을 염두에 둔다면, 이 영화가 얼마나 무거운 영화인지 알 수 있을 듯. 실제 <루빙화>나 <비정성시> 뿐만 아니라 대만영화 곳곳에서는 그들 현대사의 비극이 생생히 남아있다. 영화로나마 그 역사를 기억하고, 진실을 대면하는 아픔을 공유하는 것이다. 어두운 과거와 가슴 아픈 사연을 다시 한 번 끄집어내는 것은 살아남은 사람의 책무인 것이다. 

참, 영화 제목 ‘반교: detention’의 ‘반교’(返校)는 학교로 돌아간다는 뜻이고, ‘디텐션’은 ‘방과 후에 (벌로) 남기, 구금’등의 뜻이다. (박재환 202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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