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환 2017-04-07] ‘이란 영화’란 어린이영화라는 인식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영화제 등을 통해 소개되는 이란영화는 하나같이 가난한 아이들이 주인공이고, 별것 아닌 사건으로 2시간 남짓 마냥 걷고, 뛰고, 이야기하면서 잔잔한 감동을 안겨준다. 그런데, 이란영화가 그렇게 가족친화적인 영화가 주류를 이룬데는 이유가 있다. 어느 해인가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이란영화를 다룬 다큐멘터리가 소개됐었다. 이란은 오랫동안 영화에 대해 끔찍할 정도의 검열을 실시했고 그 결과 살아남았거나, 해외영화제에 출품되는 영화는 어쩔 수 없이 해맑은 아이들의 감동스토리뿐이란 것이다.
그런 이란영화계에 모흐센 마흐말바프(Mohsen Makhmalbaf)의 존재는 대단하다. 해외영화제에 상을 받았다고 해서, 신작이 나올 때마다 해외영화평론가들이 상찬을 해서가 아니다. 오랫동안 이란에서 자신의 영화를 만들기 위해 정말로 피나는 투쟁을 했다는 점에서이다.
그의 2014년 작품 <어느 독재자>(영어제목은 The President)는 이란 작품은 아니다. 그는 이미 이란에서 작품을 만들 수 없는 인물이다. 이번 작품은 (한때 소련에 편입되었던, 지금은 자유주의국가인) 그루지아에서 찍은 작품이다. 물론, 그루지아가 배경은 아니다. ‘그냥 가상의 아랍권 독재국가’이다. 그 어느 독재국가의 늙은 독재자의 처참한 말로가 영화에 펼쳐진다.
영화가 시작되면 독재자(미하일 고미아쉬빌리)는 사형수들의 사형집행을 승인한다. 어린 정치범이 포함되었다는 보고에 대해서도 “그런 놈들이 크면 더 위험해”라며 인정사정없는 독재자의 면모를 보여준다. 이어서 어린 손자(다치 오르벨라쉬빌리)와의 ‘권력놀이’를 보여준다. 칭얼대는 손자를 달래기 위해 독재가가 선택한 것은 한심한 ‘권력놀음’이다. 독재자는 전화기를 들고 “불을 꺼라!” 명령을 내린다. 그럼, 전 도시의 불이 꺼지고 나라는 어둠에 싸인다. 이어 “불을 켜라”고 명령을 내리자 이내 불이 들어온다. 손자는 재밌다고 전화기를 받아들고 “꺼라”, “켜라”를 반복한다. (중국 주나라 때 ‘포사’의 이야기가 있다) 이런 나라에서 쿠테타가 일어난다. 늙은 독재자는 어린 손자를 안고는 필사의 탈주를 펼친다. 세상은 이미 독재자 일족에게 일말의 동정도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거액의 현상금이 걸린다. 생포하든, 죽이든. 독재자는 변장한다. 때로는 거리의 악사로, 때로는 성직자로. 그 과정을 거치면서 자신이 나라를, 인성을 얼마나 황폐화 시켰는지 뼈저리게 느낀다. 어린 손자도 마찬가지.
모흐센 마흐말바프는 중동 여러 나라들을 휩쓸었던 ‘아랍의 봄’ 당시 영화를 구상했다. 민주화투쟁으로 (독재)정권이 무너질 경우 독재자의 최후는 비참할 수밖에 없다. 무솔리니(이탈리아), 차우세스쿠(루마니아), 후세인(이라크)의 최후가 그러했다.
물론, 독재자가 타도되고, 민주적인 체제가 들어서면 다행이지만 대부분의 압제국가는 또 다른 형태의 독재정부를 형성한다. 이 영화에서 가장 충격적인 장면은 아마도 독재자가 내쫓긴 뒤 군인들이 펼치는 잔악무도한 행태일 것이다. 결혼식이 막 끝난 신부를 윤간한다! 독재자가 물러났다고 새 세상이 오지는 않았다. 풀려난 정치범들은 겨우 몸을 이끌고 고향으로 돌아간다. 불행하지만, 한 나라의 정치수준은 그 국민의 수준에 준한다는 말을 되새기게 한다.
모흐센 마흐말바프는 1951년 테헤란의 빈민가에서 태어났다. 15살에 '샤'(SHAH)를 무너뜨리기 위한 게릴라 스타일의 정치운동에 뛰어들었다. 17살에 경찰을 칼에 찔러 감옥에 들어간다. 1979년 샤(팔레비 정권)가 무너지면서 풀려난다. 모흐센은 이란의 유명한 정치범들과 5년을 감옥에서 보냈다. 이들 정치범/혁명가 중 몇몇은 나중에 정치적 리더가 되었고, 또 몇몇은 교수형을 당했단다. 풀려난 후 영화를 만들기 시작한 모흐센도 검열에 내몰리더니 2005년 런던으로 망명하기에 이른다.
대선을 앞둔 대한민국에서는 어쩔 수 없이 이 영화가 올바른 지도자와 제대로 된 민주적 리더쉽에 대한 반면교사의 역할을 할 것이다. 모흐센 마흐말바프 감독은 지난 2014년 8월, 한국을 찾았을 때 광화문광장의 세월호 유족을 만나 위로를 전하기도 했었다. 영화 <어느 독재자>는 그런 이란 감독이 만든 이런 영화이다. (박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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